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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님 Nov 17. 2022

아이가 수능을 보는 동안, 엄마는 무엇을 할까?

재수생 엄마가 남기는 수능일의 기록

오늘은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입니다. 한참 전부터 뉴스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수능이 며칠 남았다, 무엇을 준비해라, 날씨는 어떠할 것이다 등등 말이 많았으니 집에 수험생이 없어도 오늘이 수능일이라는 것 정도는 많이들 아시겠지요. 올해는 저의 딸이 재수를 하고 있는데, 덕분에 한동안 연락이 없던 친구, 친지들이 응원의 메시지와 선물을 보내 오셨습니다. 모두모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오늘 수능을 보는 학생이라면 어제 수험표를 받고 시험장에 가서 예비소집을 했을 거예요. 작년에 그랬듯이 올해도 코로나 때문에 학생들을 한 자리에 모아 유의사항을 알려주는 그런 예비소집은 하지 않고, 대신 수험표와 유의사항을 나누어 주는 예비소집을 하였습니다. 보통 재수생은 수능 원서 접수도, 수험표 수령도 모교에 가서 하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멀리 이사를 한 경우에는 살고 있는 지역의 교육지원청에서 원서를 접수하고, 수험표도 지정된 곳으로 가서 수령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지난 2월에 이사를 했기 때문에 모교로 가지 않고, 지정된 장소에서 수험표를 받았답니다.


어제도 오전에는 평소처럼 독서실에 나가서 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수험표를 받으러 어느 중학교로 향했습니다. 아직 이 지역이 낯선 아이를 위해 운전을 해서 데려다 주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목적지 근처에서 교통이 완전히 마비되어 버렸습니다. 하는 수 없이 아이가 차에서 내려 걸어가야 했습니다. 교문이 난 길은 좁은 일방통행로인데, 누군가 얌체 주차를 하는 바람에 차들이 오도가도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결국은 경찰이 그 차주를 불러내 차를 이동시키게 하는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되었어요.


한 가지 더 놀라운 사실은 수험표를 받으러 온 학생이 정말 많았다는 것입니다. 걸어서 먼저 도착한 딸이 놀라서 사진을 찍어 보냈더군요. 앞서 얘기했다시피 재수생은 보통은 모교에서 수험표를 받고, 고3들 역시 재학중인 학교 교실에서 수험표를 받기 때문에 그곳에 온 수험생들은 모두 우리처럼 졸업 후 멀리 이사를 한 재수생들입니다. 그런 사람이 도대체 몇 명이나 되는 걸까요? 수험생들을 안내하는 선생님께 여쭈어 보니, 무려 천 명 가까이 된다는군요.


수험표를 받아들고 배정된 시험장으로 향했습니다. 집에서 차로 12분 거리에 있는 오래된 여자고등학교였습니다. 다행히 길도 막히지 않고, 대로변에 위치하여 금방 찾아갔습니다. 주차는 운동장에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는데, 차가 한 대도 없는 것이 아마도 우리가 마지막으로 온 게지요. 시험을 볼 건물을 찾아가니 안내하는 선생님 두 분이 밖에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코로나 예방조치 때문에 건물 안에는 들어갈 수가 없고, 밖에서 시험장 위치만 확인했습니다. 혹시나 싶어 두 번 세 번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당장 내일이 수능이라고 생각하니 뭘 해야 좋을지 막막했는데, 다행히 택배로 도착한 선물들이 있습니다. 초콜렛은 하나 꺼내먹고, 커다란 거위 인형을 껴안고 뒹굴며 긴장을 풀어봅니다. 우리 집 반려견 클로이는 택배 상자에서 초콜릿을 쌌던 포장지를 꺼냈네요. 하필 ‘합격'이라고 쓴 포장지를 꺼내어 앞발로 척 누르니 마치, "언니 걱정 마. 합격이야!"라고 말해주는 것 같네요. 긴장도 풀 겸 내일도 준비할 겸 미리 온수 샤워를 하고 나온 딸에게 이제 잠깐이라도 암기할 것들을 다시 보라고 했습니다.


대충 정리해 둔 택배 상자를 뒤져서 합격 카드를 내미네요.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2023년도 수능에서는 한국사 교과과정이 바뀌었다네요. 그렇다고 한국의 역사가 바뀐 것은 아니지 않느냐 하겠지만, 그동안 소홀히 다루었던 현대사와 근대사, 즉 흥선대원군 집권 이후의 역사가 시험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6월 민주화 항쟁이 시험에 나온다니, 믿어지시나요? 그러니 선사시대와 삼국시대, 고려와 조선에 치중하여 한국사를 배운 재수생들은 마음이 좀 급할 수 밖에 없어요.


그렇지만 이럴 때 보라고 있는 것이 유튜브 아니겠습니까? 근현대사 10분 정리, 이 영상 하나면 1등급 쌉가능! 같은 썸네일이 붙은 영상들이 많습니다. 나름 유명한 강사분이니 그거라도 보면서 복습을 하네요. 1.2배속으로 보고, 1.5배속으로 다시 보고... 한국사는 대부분의 대학에서 4등급만 맞으면 되고, 또 절대 평가이기 때문에 쉽다고는 합니다. 그래서 마치 운전면허 필기시험 준비하듯이 이렇게라도 반복해서 보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믿어봅니다. 제~~~발~~~~.


마지막날 밤까지 이렇게 외워야 할 게 많으니 얼마나 불안할까요.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조용조용히 도시락을 준비했습니다.


드디어 잠자리에 들 시간. 긴장해서 잠이 안 올까 봐 마그네슘 보충제를 두 알 먹이고, 강아지 포함 전원 취침을 선언했습니다. 그동안 정말 열심히 했다는 거 아니까 걱정 말고 자라고 말해 주었어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추우나 더우나, 아침이면 일어나 독서실에 나가고 밤 10시까지 성실하게 자리를 지켰지 않느냐. 토요일도, 일요일도, 방학도 없이 그만큼 공부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장하고 대견하다. 말하면서 꼭 껴안아 주고 싶은데, 낮에 받은 커다란 거위 인형이 딸 아이의 품을 차지해 버렸네요. 10분쯤 지나니 뒤척이지도 않고 쌔근쌔근 숨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드디어 대망의 수능일 아침이 밝았습니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도시락을 싸고, 아이도 깨웠습니다. 어묵과 떡을 넣어 푸욱 끓인 물떡을 한 그릇 주고, 먹는 동안 보라고 한국사 유튜브도 틀어주었습니다. 날씨가 따뜻하여 너무 덥지 않은 옷을 입히고, 특히 바지는 어제 엄마가 입었던 적당히 무릎 나온 츄리닝 바지를 입혔습니다. 그러면서 엄마 바지와 함께 엄마의 총기도 가져가라는 싱거운 농담도 해주었습니다.


수험표와 신분증, 도시락과 음료수, 여러가지 상비약을 챙겨서 길을 나섰습니다. 시험장이 멀지는 않지만 오늘 같은 날은 좀 여유있게 나가야겠지요. 주차장에 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이중주차로 앞이 막혀있습니다. 주차 게임을 하듯이 남편 차를 옮기고 내 차를 빼고 하여 입실 시간을 40분 남기고 출발을 했습니다.


처음 잠깐은 금방 도착할 것처럼 쭉쭉 나가더니 갑자기 내비에서 예측하는 도착시간이 점점 늦어집니다. 신호가 바뀌어도 차들이 꼼짝 않는 상태로 시간이 가면서 마침내는 도착 예정 시간이 7:57까지 미루어집니다. 도로는 차들로 꽉 차 있어 옴짝달싹 할 수 없고, 브레이크에 발을 얹은 다리가 부들부들 떨립니다. 물론 딸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요. 내려서 걸어가려해도 아직 2킬로미터나 남았으니 걸어가도 지각인데요. 도대체 무슨 사연인지 시험장까지 경로가 온통 새빨간 색입니다.


신호가 몇 번이 바뀌도록 1미터도 나아가지 못하다가 드디어 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사고 차량이 있었던 걸까요? 마음 급한 수험생 한 명과 어머니가 차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우리가 걸어가는 사람보다는 빨랐습니다. 이제는 도착 예정시간이 조금씩 조금씩 당겨지더니 7:47로 당겨졌네요. 자전거를 타고 혼자 시험 보러 가는 기특한 여학생도 보입니다. 오르막이라 도저히 안 되겠는지 자전거에서 내려 밀면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차량 흐름은 점점 더 원활해져서 7:45에 교문 앞에 도착했습니다. 마음을 졸이던 딸은 인사는 대충하고 종종걸음을 치며 시험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제부터는 아이 혼자만의 싸움입니다. 시험장까지는 여차 하면 업고 뛸 각오도 되어 있었지만, 문제를 풀고 마킹을 하는 것은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해내야 하는 것이지요. 아이를 내려주고 돌아오는데, 갑자기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종교를 가진 이들은 성당에, 사찰에, 교회에 모여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종교가 없는 저는 막막한 마음으로 집에 들어왔습니다. 남편은 평소 구독하는 유튜브 채널을 보네요. 저는 수험생 엄마들에게 카톡을 보내어 응원과 격려와 덕담을 나눕니다.


작년에 대학에 간 아이 친구의 엄마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안부를 전하다 보니, 그 집 아이도 이번에 다시 수시 지원을 했는데 수능 최저가 없는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벌써 합격을 했다네요. 작년에 합격했던 학교보다 더 기쁜 마음으로 다닐 수 있는 학교입니다. 얼마나 좋은 소식인가요! 며칠 전 그 친구가 초콜렛 한 상자를 응원 선물로 보냈더니, 수능 전이라 합격 소식을 전하기는 조심스러웠나 봅니다. 오늘 저녁에 이 소식을 알려주면 딸이 얼마나 기뻐할까요.


수험생 엄마들과의 카톡이 하루 종일 이어질 수는 없겠지요. 다행히 어제 합격을 예언해 준 우리집 반려견이 산책을 나가자고 합니다. 기분 탓인지 동네가 조용하네요. 지난 번에 만난 적이 있는 살집 좋은 포메가 오늘도 많이 짖어댑니다. 이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은 여드름이 많은 젊은 남자인데, 학교 체육복처럼 보이는 옷을 입은 것이 일찌감치 수시로 대학에 합격한 고3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볼 때마다 듭니다. 물론 그런 질문을 할 수는 없었고, 그래서 팩트 체크도 하지 못했지요.


산책로 옆에 여자고등학교가 하나 있습니다. 여기서도 오늘 수능을 보는지, 현관 근처에 수험번호와 고사장을 안내하는 포스터가 붙어있네요. 우리 딸은 시험을 잘 보고 있을까요? 엄마의 총기가 가득한 무릎나온 츄리닝은 과연 도움이 되고 있을까요? 성당 앞을 지날 땐 아, 내가 성당에 가서 기도하는 엄마였으면 좋았을 것을. 교회 앞을 지날 때면, 지금이라도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해볼까. 불교 선원 앞을 지날 때는 저기라면 아무나 다 환영해 주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 보니 이 동네가 종교 화합의 현장이군요.


안 그래도 뒷다리가 후달리는 열세 살 노견을 데리고 한 시간이나 산책을 했네요. 이제는 들어가야 합니다. 집에 들어오니 다시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네요. 설거지도 했고, 세탁기에 빨래도 돌렸습니다. 이제 할 수 있는 것은 딱 하나 밖에 생각나지 않습니다. 어제와 오늘, 딸의 수능을 치르는 1박2일의 기록을 브런치에 남기는 것이요.


벌써 점심시간이 끝나고 이제는 영어 듣기 평가가 진행중이겠군요. 한국의 수능은 세계적으로 유명한데, 특히 듣기 평가를 하는 동안 비행기가 뜨고 내리지 못한다는 사실이 해외 언론의 주목을 받습니다. 대한민국 전체가 숨을 죽인다!는 드라마틱한 헤드라인이 가능하기 때문이지요. 미국 뉴스에 그런 기사가 나올 때면 대학 입시에 미친 나라로 조명되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는데, 오늘은 그런 배려를 받으며 시험을 보는 것이 참 고마운 일이다 싶네요. 수능이 뭐라고 공공기관의 출근시간도 한 시간 늦춰주고, 증권거래소도 한 시간 늦게 개장을 한답니까. 오늘 아침 아이를 제 시간에 시험장에 데려다주지 못 할까 봐 마음을 졸여 보니 모두가 필요한 조치로 느껴집니다.


수능 때문에 대한민국 전체가 숨을 죽인다고는 하지만, 세상이 아주 멈추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우리 아파트는 하필 오늘 엘리베이터 수리가 예정되어 있네요. 정기점검이 아닌 수리라서 9:30부터 4:30까지로 시간이 잡혀 있습니다. 아무리 수능일이라도 안전이 달린 엘리베이터 수리를 미룰 수는 없지요. 그나마 수능 보러 가는 길에 계단을 내려가지는 않아도 되도록 시간을 조율해 준 것에 감사합니다. 산책을 나갈 때는 8층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하는 운동까지 더해져 제법 운동다운 운동이 되기도 했고요.


늦었지만 이제는 엄마도 점심을 먹어야겠네요.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샤워를 한 다음 빨래를 접으면 아이를 데려갈 시간이 되겠습니다. 다른 수험생 어머니들은 오늘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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