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글쓰기, 남을 위한 글쓰기
내가 브런치 작가 신청을 통과한 것은 3년 전이다. 연구년을 시작하면서 갑자기 시간이 넉넉해졌지만 같이 놀아줄 사람도 없고, 바쁜 사람 붙잡고 내 말 좀 들어보소 할 성격은 못 되는 지라 혼자 놀기의 가장 좋은 방법으로 글쓰기를 택했다.
분명 혼자 놀기 위한 글쓰기였지만, 좋아요를 눌러주는 사람이 있고 댓글을 달아주는 사람이 있으니 흥이 나는 것도 사실이었다. 나 역시 다른 작가들의 브런치 글들을 읽으면서 좋아요와 댓글을 남기고 다니는 재미가 있었다. 때로는 내가 좋아요 눌렀던 글의 작가나 나를 찾아와 좋아요를 눌러주고 가기도 했다. 내 글에 댓글을 남겨주는 고마운 분이 있으면 차라도 한 잔 대접하고 싶어졌다.
좋아요와 댓글에 연연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글쓰기는 독자들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너무 솔직하게 썼다가 내 신상이 드러났을 때 후회하면 어떡하지? 나도 모르게 개인 정보를 감추려고 하고, 정치 성향도 애매하게 포장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솔직하게 쓸 때는 글이 유치해서 마음에 안 들었는데, 자기 검열을 하며 쓸 때는 글이 매력이 없어서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러면서 갑자기 할 말도 쓸 말도 생각나지 않은 시기가 찾아왔다. 나는 이 증상을 실어증이라 명명한 후 자연스럽게 브런치 글쓰기를 그만두었다. 오프라인에서 건너 건너 아는 다른 브런치 작가님한테 어찌 된 일인가 안부를 묻는 연락이 온 적이 딱 한 번 있었을 뿐, 내가 더 이상 글을 안 쓴다고 애달파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유튜브 영상이 올라오듯, 브런치를 포함한 다양한 플랫폼에 수많은 글들이 올라온다. 더러는 많은 이의 관심을 끌고,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글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다른 활자들 속에 파묻힌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어서 실망할 것도 없었다.
이번 방학에 불쑥 다시 글이 쓰고 싶어졌다. 다행히 나에게는 브런치라는 플랫폼이 있어서 마치 어제까지도 늘 글을 썼던 사람처럼 내 생각을 풀어놓았고, 마음이 후련했다. 내가 방학이라고 같이 놀아줄 사람도 없는데, 혼자 놀기에 글쓰기 만한 게 없구나. 연구년 때 했던 그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이번 방학에는 열심히 Canva도 마스터하고, 크로스핏에도 매진하고 있기 때문에 글쓰기까지 더하니 아주 알차고 생기 넘치는 방학이 되고 있다.
내가 쓴 브런치 글은 보통 15개에서 20개 정도의 좋아요를 받는다. 그 고마운 분들은 내 글을 읽고 정말 좋아서 좋아요를 누르시는 걸까, 그냥 예의상 눌러 주시는 걸까, 그도 아니면 내가 좋아요를 눌렀으니 오셔서 내 글도 한 번 읽어주세요 하는 뜻으로 누르시는 걸까. 어쨌거나 좋아요가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고, 좋아요 눌러주신 분의 글을 찾아서 읽는 것은 하나의 습관이 되기도 했다.
만약에 좋아요가 전혀 오지 않으면 어떨까? 아마도 브런치 어플에 오류가 있나 의심할 것 같다. 그런 날들이 계속된다면 그래도 계속 브런치에 글을 쓸까? 아마도 그럴 것 같다. 학생들에게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해보라고 권유할 때 내가 빠뜨리지 않고 얘기해 주는 이유는 "브런치에 글을 쓰면 예쁘게 자동 편집이 돼. 사진도 쉽게 넣을 수 있고, 특별히 애쓰지 않아도 내 글이 멋져 보여!"라는 것이다. 만약 아무도 좋아요를 눌러주지 않는다 해도, 다른 곳보다는 브런치가 글을 남기기에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좋아요를 전혀 받지 못한 채 이런 신변잡기를 차곡차곡 써 올리더라도, 먼 훗날에 꼭 이 글들을 읽어줬으면 하는 사람이 하나 있다. 바로 내 딸이다. 유치하고 세속적인 욕심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세상이 다 나를 잊어도 내 자식은 나를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내가 죽어갈 때, 혹은 죽은 다음에, 더 이상 엄마라는 존재가 세상에 없을 때 내 자식이 "엄마가 있었다면 뭐라고 했을까?" 궁금하거나 "우리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나?" 궁금할 때 펼쳐 볼 무언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혹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라는 영화를 아는가? 메릴 스트립과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한 고품격 불륜 영화다. 혹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영화를 아는가? 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쳇이 주연한 판타지 명작이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바로 엄마가 남긴 일기장을 통해 자식들이 엄마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매디슨 카운티에서는 엄마가 죽은 후에, 벤자민 버튼에서는 엄마가 죽어갈 때 일기를 본다는 차이가 있지만 엄마의 일기가 없이는 이 두 영화가 성립되지 않는다.
물론 내 브런치에는 이 두 영화의 엄마들처럼 절절한 사랑 얘기는 적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므로, 누가 아는가? 언제 어떤 사랑 이야기가 불쑥 찾아와 이 공간을 채울지 말이다.
나는 이 브런치를 혼자 놀기 위해 쓴다. 그렇지만, 이 글을 읽어주고 좋아요를 눌러주는 모든 분들께 감사한다. 그리고, 내가 죽어갈 때 혹은 죽은 다음에 내 딸이 읽어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의 작은 소망들과 깨달음들과 비밀들도 차곡차곡 적어 여기에 묻어두려고 한다.
우리 동료 브런치 작가님들은 왜 브런치에 글을 쓰시나요? 실례가 안 된다면 묻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