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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윈플레임 Jul 06. 2023

내겐 너무 특별한 멸치볶음

멸치볶음이 아니고 멸치뭉치입니다.

매일 도시락을 싸가던 나의 학창 시절.

점심시간이 되면 오늘은 무슨 반찬이 들어있을까 두근두근 기대를 하며 반찬뚜껑을 열었다.

그럼 그렇지. 엄마가 뭔가 색다른 걸 넣었을 리가 없다. 매일 비슷한 반찬들로 돌려 막기이다. 깻잎김치, 어묵조림, 진미채볶음 어쩌다 계란말이. 간혹 콩나물 무침이나 시금치나물 정도가 추가되는 대부분 비슷한 반찬이다.


엄마도 매일 다른 반찬을 하기가 힘들겠지만 그래도 색다를 무언가를 기대했던 나는 살짝 김이 샜다. 

옆에 있는 친구의 도시락을 슬쩍 보니 오늘도 친구네 반찬은 때깔이 다르구나. 오늘은 동그랑땡이다. 그것도 집에서 직접 만든. 우리 엄마는 한 번도 집에서 동그랑땡을 만들어 준 적이 없는데 친구 엄마는 항상 직접 만든 예쁜 반찬을 넣어주신다. 반찬의 맛과 다양함은 말할 것도 없고 보기에도 예쁜 반찬들만 가지고 온다. 저런 도시락을 싸주는 엄마는 어떤 엄마일까. 나는 친구의 엄마가 어떤 분인지 궁금했다.


친구의 어머니는 전업주부로 두 명의 자녀가 있는 평범한 가정주부였는데 친구의 말을 통해 들은 어머니는 살림을 꽤 잘하는 분인 듯했다. 집은 반짝반짝 윤이 나고 저녁 반찬도 매일 새롭고 맛있는 걸로 해 주신다고 한다. 어머니는 요리가 취미여서 매일 아이들에게 어떤 맛있는 반찬을 해줄까 고민하신다고 한다.


'진짜 부럽다. 저런 여성잡지에나 나올 법한 집이 실제로 있다니. 저 지지배는 무슨 복을 타고났담.'

친구에게 말은 못 하고 혼자서만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 친구의 반찬 중에 한 가지 눈에 띄는 반찬이 있었다.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 만든 것 치고는 이상하게 멸치볶음이 서로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멸치볶음이라기보다는 멸치 덩어리라고 불러야 할 반찬을 꽤 자주 넣어주셨다.


"너 이거 왜 다 한 뭉치가 돼서 안 떨어지는 줄 알아?"

"그러게. 잘 모르지만 그냥 설탕을 좀 많이 넣으셨나?"

"이거 엄마가 일부러 이렇게 만드는 거야."

"왜???"

"내가 하도 키가 안 커서 멸치를 좀 먹이고 싶은데 그것도 잘 안 먹으니까 한번 먹을 때 어떻게든 많이 먹으라고 멸치를 뭉치로 만든 거지."


완전히 의도된 멸치볶음 아니 멸치뭉치였다.

키가 작은 편이었던 친구는 우유도 멸치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머니는 생각 끝에 멸치를 한 번에 여러 개 먹을 수밖에 없도록 덩어리 지게 만들어 주신 것이었다. 

몸에 좋은 음식을 어떻게든 더 먹이고 싶은 엄마의 마음.


사랑받는 딸로서 나의 부러움을 샀던 친구와는 그 뒤 서로 다른 반이 되면서 자연스레 사이가 멀어졌고 그렇게 나는 친구와 그 어머니를 잊었다. 몇 년 뒤 다시 친구가 나에게 연락을 하기 전까지는.




대학을 입학하고도 2년이 지나고 3학년이 될 무렵,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한 번도 연락을 한 적이 없던 친구가 전화를 했다. 사실 그동안 전혀 소식을 몰랐기에 그저 막연히 대학생이 되어 잘 지내고 있겠거니 생각했었다. 하지만 친구는 그동안 대학교에 진학했던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병간호를 했다고 한다.

어머니. 나에게는 덩어리 진 멸치볶음으로 기억되던 그 어머니. 


암이라고, 그것도 꽤 진행된 상태라고 한다. 다행히 최근 상태가 조금 호전되었고 어머니가 딸의 대학진학을 극구 주장하셔서 이렇게 조금 늦게 대학을 입학하게 되었노라고, 우연히도 나와 같은 학교에 오게 되어서 조언을 구하고 싶다며 졸업 후 처음으로 연락을 했다.


우리는 몇 년의 공백이 무색하게 편안하게 대화를 나눴고, 다시 만났고, 같은 하숙집에 살게 되었다. 그 이후로 매일 밤마다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음식을 나눠 먹고, 함께 라디오를 들었다.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해 주는 친구이기도 했지만 내 기억 속의 친구는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였다. 친구를 볼 때마다 친구 어머니의 사랑이 항상 느껴졌고 어떻게든 그 친구를 돕고 싶었다. 그저 어머니가 그렇게 사랑했던 이 친구를 위해 늘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다. 


친구는 다른 친구들이 모두 대학에 진학한 후 홀로 병실에서 어머니와 시간을 보냈고 그 시간을 겪고 나서 다시 만난 친구는 그 전과는 매우 달라져 있었다. 세상을 보는 시선이 조금은 차가워졌고 새로운 관계를 피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더 편안해했다. 나는 그런 친구를 웃게 해주고 싶었고 같이 우리의 일상을 나누고 싶었다. 여느 다른 20대 초반 여대생들처럼.

안타깝게도 어머니는 친구가 입학하고 나서 1년 정도 지난 후 세상을 떠나셨고, 친구는 그 후로 더 자기만의 세상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각자의 삶이 바빠졌다는 핑계로 다시금 멀어졌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지금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지금에 와서야 어렴풋이 친구 어머니의 마음을 이 해할 수 있게 되었다. 건강하고 밝은 아이로 키우기 위해 얼마나 최선을 다했을지. 아픈 본인을 돌보느라 대학진학이 늦어진 딸을 보며 얼마나 애가 탔을지. 아직도 어린아이들을 두고 떠나게 되어 마지막까지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지.


여전히 멸치볶음을 볼 때마다 친구와 친구의 어머니가 떠오른다. 좋은 것을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은 엄마의 마음. 윤기가 흐르고 멸치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멸치볶음을 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어떻게든 좋은 음식을 많이 먹이고 싶은 마음에 멸치 덩어리가 되도록 요리를 하셨던 그 마음이 점점 더 크게 나에게 다가온다.


비록 다른 이들보다 조금은 짧은 기간이지만 그 기간 동안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았기에 그 힘으로 친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얻기를. 친구의 삶에도 사랑이 가득하기를 늘 바랬고, 친구는 항상 내 마음속에 남아있었다. 


대학 졸업을 하고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늘 내 마음속에 있던 친구와 최근 다시 연락이 닿았다. 우리는 그동안의 공백이 무색하게 다시 20년 전의 그때처럼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 저녁은 멸치볶음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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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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