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면
공포영화를 보지 않는다.
사람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하지만 그런 귀신 이야기는 꾸며놓은 얘기라고 생각하면 조금 오싹하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넘길 수 있다. 오히려 내가 정말로 무섭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상의 도시괴담이다.
결혼 전 혼자 살 때의 일이다.
퇴근 후 저녁을 먹은 이후이니 밤 아홉 시쯤이었던 것 같다. 어쩜 더 되었던 것도 같고.
누군가 벨을 눌렀다.
혼자 사는 집에 찾아올 사람도 없는데 누굴까 궁금했다. 낮이면 그냥 문을 열었겠지만 그래도 밤에 현관문을 벌컥 여는 건 아닌 것 같아서 문을 닫은 상태로 누군지 물어봤다.
“누구세요? “
“302호(옆집) 사는 분을 찾아왔는데 안 계시네요. 혹시 말씀 좀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
“(옆집 사람은 코빼기도 본 적이 없는데 뭔 소리야.) 무슨 일이신데요?”
“민방위 훈련을 안 나오셔서 직접 방문했는데 지금도 안 계시네요. 혹시 옆집에 사람이 잘 안 계신가요?”
“(누군지도 모른다. 이 사람아..) 잘 모르겠어요.”
“혹시 문 좀 열어주실 수 있나요? 서류 좀 전달 부탁드릴게요.”
“아뇨. 저는 옆집분을 잘 모르니 옆집 문에 끼워두고 가세요. 밤에는 들어오시는 거 같아요.”
“원래 늘 늦게 들어오시나요?”
“(아니.. 왜 자꾸 안 가고 귀찮게 하지)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사람은 있어요. 근데 원래 이 시간에도 방문을 하시나요?”
“네, 연락이 안 돼서 퇴근 이후 시간에 왔어요.”
“아~ 그러시구나. 서류는 문 앞에 두고 가시면 보실 테니 두고 가세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기억나는 건 대충 이런 대화이지만 실제로는 이것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 대화를 했다.
꽤 늦은 밤시간에 관공서에서 사람을 찾아오는 게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그래도 말하는 사람이 젊은 남자인데 말투가 불량하지 않고 착실한 듯 느껴져서 그냥 공익근무요원인가 생각했다.
그다음 날 출근하며 옆집 문을 보니 문틈에 서류봉투 같은 건 보이지 않았지만 그냥 옆집 사람이 밤늦게 가지고 들어갔나보다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 이후 그 당시 남자친구, 지금의 남편에게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다고 하니 민방위 훈련에 불참하면 흔하지는 않지만 연락이 안 될 때면 동장이 찾아가는 일이 있다고는 했다. 하지만 젊은 사람이 굳이 옆집 문을 두드리고 말을 한참이나 하고 간 것은 이상하다며 문을 열어주지 않은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라는 칭찬(?)을 해주었다.
사실 평소의 나 같으면 문을 벌컥 열고 뭔 일이냐고 했을 것 같다. 그날도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한참이나 말을 하는 것이 불편하기도 해서 살짝 문을 열어볼까도 싶었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늦었고 말을 너무 많이 시키는 게 좀 이상하기도 했다.
아마도 내가 너무 도시괴담을 많이 들어서 더 이상하게 생각을 한 것 같기도 하다.
보통 집에 도둑이 든다 하더라도 그 집을 오래 지켜보고 난 이후에 범행을 한다고 한다. 평소에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오싹하다.
역시나 이런 도시괴담 탓인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이런 일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빌라들이 밀집한 주택가에 살고 있었는데 평일 낮 한적한 시간에 어떤 남자가 골목길을 걷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그 남자는 앞을 보고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유독 집들의 창을 유심히 보면서 천천히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집들의 창, 베란다 쪽만 유심히 보는 것이 이상해서 눈에 띄긴 했지만 그냥 내 기분탓인가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우연인지 그 이후로 동네 아줌마들 카페에 도둑 든 집 이야기가 꽤 여러 번 올라왔다.
정말 그 사람은 도둑이었을까.
그리고 예전 그날 밤에 나를 찾아온 사람은 정말 동사무소 직원이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동장은 아닌 듯했다. 목소리가 너무나 젊었다.)
나에게는 귀신보다는 이런 내 주변의 일들이 더 공포스럽게 느껴진다.
오죽하면 제일 무서운 건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있을까.
혹시 모른다.
지금 내 주변에 나도 모르게 우리 집 주위를 서성거리는 사람이 있을지.
그저 이런 이야기가 진실이 아닌 괴담이기만 한다면 좋겠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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