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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윈플레임 Aug 02. 2023

내 이메일을 대신 써줄래?

ChatGPT로 인한 마음의 3단 변화

몇 달 전 ChatGPT로 세상이 떠들썩했었다.

남들이 모두 떠들길래 궁금해서 그 당시 나도 몇 번 질문을 했었다.


"다이어트 방법을 알려줘" - 모두가 아는 뻔한 답변을 받았다.

"에세이를 잘 쓰려면 어떻게 하지?" - 이것도 그저 그런 뻔한 답변.

"생일축하 메시지를 써줘." - 이건 꽤 도움이 되었다. 그저 그런 생일축하 메시지를 조금 다르게 쓸 수 있었다.

그리곤 이 채팅 파트너는 기억 속의 저편, 바쁜 일상 뒤에 묻혔다.




"마케팅 쪽 사무실 에어컨이 안된대요."

"회사의 '공식' 이메일을 좀 써주세요."

회사 건물에서 작동하는 에어컨 이외에 추가적으로 사용하는 개별 에어컨이 이 더운 날씨에 작동하지 않는단다. 아주 약한 냉기만 나오는 사무실에 출근하는 대신 탄력적인 재택근무를 종용하는 공지를 써야 한다.


그 순간 머릿속에 탁 스위치가 켜졌다.

뻔한 말로 이메일을 쓸 수는 있지만 아주 대단한 내용이 아니니 이 정도는 ChatGPT가 어떻게 작문을 하는지 한번 시험해 봐도 되지 않을까?


우선 대략적인 문구를 작성해서 ChatGPT에게 보내주면서 이메일을 다듬어달라고 요청했다.

(처음부터 ChatGPT에게 맡길 생각이어서 이메일은 대략 뜻만 통하게 간략하게 썼다. 실제로는 이보다 더 공을 들여 쓴다고 이 연사 힘주어 말하고 싶다.)


자, 이제 ChatGPT 너의 실력을 보여줘.


오, 얘 꽤 쓸만하구나!


내가 문장을 긁어 붙이고 엔터를 치자마자 좌르륵 문장을 뱉어내는 속도도 놀랍지만 예쁘게 문장을 다듬는 솜씨도 꽤 좋다.

물론 내 말투와 다른 조금 더 딱딱한 말투여서 실제로 이메일을 보낼 때는 여기에서 어색한 부분을 들어내고 좀 더 내 스타일로 다듬기는 했지만 그래도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중요한 이메일은 여전히 이 아이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겠지만 이런 정도 도움은 앞으로도 더 받아도 되지 않을까, 마음 한편에 믿는 구석이 생긴 느낌이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사람이 이렇게 AI의 도움을 받아 작문을 해도 될까 싶어 살짝 뜨끔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단순한 부분은 외주를 주고 나는 좀 더 내가 집중하고 싶은 부분에 집중하겠다는 핑계 같은 변명을 슬쩍 내놓아본다.


흠, 이러다가 내가 쓰는 에세이들을 모두 ChatGPT 보고 다듬어달라고 보내게 되는 날이 오진 않겠지?

신문에서 본 바로는 이 아이가 작문도 잘한다고 하던데.

이메일 하나 써달라고 했을 뿐인데 순간 AI가 장악하는 미래세계를 보고 온 듯한 느낌이 든다.


ChatGPT를 시험해보고 싶은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된 일이 인공지능이 더욱 발전할 미래에 대해 이렇게나 심각한 고민을 하게 만들다니. 순간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을 지켜보는 마음으로 ChatGPT를 바라보게 된다. 나는 이 아이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아직까지는 나를 도와주는 단순보조로 보고 있지만 곧 나보다 똑똑해질 것 같은 이 아이를 지켜보는 마음이 복잡하다.


ChatGPT야,

앞으로 편리하더라도 이메일은 내가 쓰고 너에게는 생일카드 작성만 맡겨야 할 것 같다.

아무래도 시대의 변화에 더디 따라가는 이 아줌마는 그것이 마음이 편할 것 같구나.

작가가 될 이 아줌마는 아직은 생각이란 걸 조금 더 해보고 싶거든.


ChatGPT를 시험해 보겠다던 나의 야심 찬 시도는 내 마음만을 시험에 빠트리고 말았다.

짧은 시간 안에 벌어진 내 마음의 3단 변화.

이런 나, 좀 많이 촌스러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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