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회사 직원에게 영어란

멀고 먼 영어 정복의 길

by 트윈플레임

외국계회사 직원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까?


비즈니스 캐주얼. 손에는 아메리카노.

출장도 잦을 거 같고. 회사에도 외국사람이 많을 거 같고.

하지만 그런 상상은 금물. 한국에 있는 외국계회사는 그냥 한국 회사이다.


흔히 외국계 회사에 다닌다고 하면 자주 듣는 말 중에 하나가 '영어 잘하시겠네요.'인데

이게 틀린 말도 아니고 또 막상 맞는 말도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영어에 대한 기준이 높다.

잘하는 건 정말 원어민처럼 해야 잘한다고 한다. 네이티브처럼 쏼라쏼라.

하지만 다들 잘 알듯이 외국에서 살다 오지 않고서야 어디 원어민처럼 말하기가 쉽나.

어쨌거나 나 같은 토종 한국인은 열심히 배워도 그냥 한국사람 영어다.




외국계 회사는 회사마다 영어 사용빈도가 굉장히 다른데 내 첫 회사는 딱히 영어를 쓸 기회가 많이 없었다. 여러 나라 직원이 같이 들어가서 듣기만 하는 콜이 대부분이라 말할 기회가 많지 않았고 적어도 매니저급 이상 되어야 외국 직원들이랑 말이라도 한번 섞어볼 수 있었다.

그래도 가끔 출장 오는 사람들을 만나서 영어를 쓸 일이 있을 때마다 영어를 좀 더 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슴 깊숙한 곳부터 차올랐다.


내가 좀 더 말을 잘했다면 설명을 더 잘할 텐데. 나도 돋보이고 우리 팀도 돋보일 텐데.

사실 다른 나라보다 우리나라가 잘하는 것들이 더 많은 거 같은데 왠지 인정은 영어 잘하는 싱가포르 호주 애들만 받는 거 같다.


그때부터 열심히 영어학원을 찾아다녔다.

대학교 때 6개월 어학연수를 다녀왔지만 그걸로는 여행이나 잘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일하고 설득하는 영어로는 아직 부족했다.


어차피 한순간에 실력이 오르는 것이 아니므로 거의 취미 수준으로 동네방네 영어학원마다 안 가본 데가 없다.

그 옛날 종로의 영어학원들을 숱하게 기웃거렸고 나중에는 장소를 옮겨 강남역에도 좀 가봤었다.

그리고 커리큘럼이 빡빡하다는 SDA는 6단계까지 올라갔는데 막판 뒷심 부족으로 졸업은 못했다.

전화영어도 해봤고 토플 수업도 들어봤다.


그래도 내 영어는 늘 제자리였는데 어느 날 나에게 새로운 회사로의 이직 기회가 찾아왔다.

다른 조건들보다 상사가 외국인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영어공부에 제일 좋은 게 외국인을 연인으로 만나는 거라 들었는데 어차피 그건 못하니 대신 외국인 상사와 함께 일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되면 좋든 싫든 영어를 써야 하니까.

그래, 일단 부딪혀보자.


내 첫 외국인 상사는 싱가포르 여성분.

내 짧은 영어가 힘드셨을 수도 있는데 인내심을 가지고 잘 견뎌주셨다.

상사가 외국인이 되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말을 해야 한다. 내가 한국에 혼자 있는 팀원인지라 팀 미팅에서는 영어로 발표도 해야 하고, 설득도 해야 하고, 설명도 해야 한다. 원하는 걸 얻어내야 하니까.

와. 미친다.

등에 식은땀 한줄기가 흐른다.

정신 차려야지.


이제부터 난 모르겠고 듣는 네가 알아들어라.

그냥 얼굴에 철판을 깔고 말한다. 영어회화는 자신감이 반 이상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누가 말했던지 그건 참으로 맞는 말이라는 것을 느꼈다.


내 영어의 8할은 회사에서 배운 영어다.

매일 영어로 읽고 쓰고 말하고 듣고.

외국어 공부 4대 영역을 이렇게 골고루 사용할 줄이야.

그렇지만 성인이 되어서 배운 내 영어가 네이티브가 될리는 만무하고 또 아무리 철판을 깔아도 여전히 영어발표는 너무나 힘들고 두렵다.


그래도 내가 이쪽 세계에 있는 한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굴레니 같이 가야지 어쩌겠는가.


오늘도 생각해본다.

내가 영어를 조금만 더 잘했어도 여기 안 있지. 이 정도에서 내가 참는다.


영어정복의 길은 멀고도 험하지만 나는 어차피 영어가 아닌 내 업무를 통해 평가받는 직장인이니 본질에 충실해야지.

그 본질을 빛내기 위해 이제 나는 매일 아침 영어책을 읽고 있다.

매일 아침 6시. 애엄마들과 함께 읽는 영어책.

아이들보다는 아직은 내 영어가 더 우선이다.


* 이미지 출처 : Pixabay & 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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