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를 말해줄 테니 더 이상 묻지 마세요.
2004년 1월 1일.
첫 직장 발령일이다. 공식적인 첫 사회생활의 시작.
그 이후로 지금까지 출산휴가 두 번 각 90일.
그리고 육아휴직 3개월을 제외하고는 쉼 없이 일을 했다.
나는 왜 일을 하는 것인가.
예전 김미경 강사의 티브이 강연에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워킹맘처럼 매일매일 내가 왜 일하는지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고.
맞는 말이다.
누가 남자직원에게 왜 일하냐고 물어볼까. 그런 질문은 하지 않는다.
사회초년생에게 왜 일하냐고 묻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결혼하고 특히 아이가 있는 워킹맘에게는 물어본다.
왜 일을 하냐고.
집에서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아이들 잘 키우지 왜 나오냐고.
그래. 나는 왜 일을 하나.
이유를 생각해 본다.
1) 현실적인 이유: 돈
돈을 벌어야 한다. 남편이 벌어오는 돈만으로도 살기야 하겠지만 그보다 조금 더 편안하고 여유롭게 살고 싶다. 더 정확히는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는 내 돈이 가지고 싶다. 경제적 독립은 나의 정신적 독립에도 영향을 미치니까. 그리고 요즘 같은 고령화 시대에 조금이라도 더 노후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있다.
결국 돈 벌러 나온다.
2) 사회적인 이유: 내 이름
엄마로만 아내로만 살면 누가 내 이름을 불러줄까.
나는 누구 엄마, 누구 아내가 아닌 나로 살고 싶다.
회사에서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회사가 아니었으면 저 나이 지긋하신 임원이 이렇게 내 이름을 불러가며 옆에 앉아서 본인 이야기를 할까.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여기저기서 나를 불러줄까. 내 이름으로 서명을 하고 내 이름으로 의견을 낸다. 회사 안이 아니면 어디에서 이렇게 마음 놓고 내 의견을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돈도 좋지만 온전히 나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 이것이 내가 일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3) 롤 모델
나의 첫 직장은 국내 대기업 중 한 곳이었고 결혼한 여직원은 있어도 결혼하고 아이가 있는 아줌마 직원은 없었다. 나의 미래를 보여줄 사람이 없다는 것. 그건 내가 입사 6개월 만에 이직을 했던 큰 이유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그 롤 모델이 되고 싶다.
결혼을 하고서도, 아이 둘을 낳고서도 커리어를 유지하는 사람.
후배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
회사 생활을 하면서 만났던 여러 선배들이 나에게 주었던 그런 좋은 영향을 나도 선배가 되어서 후배에게 주고 싶다. 특히 내 딸이 나중에 사회생활을 할 때 고민을 들어줄 수 있는 선배가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이것이 내가 일하는 세 번째 이유이다.
이 외에도 이유는 더 있겠지만 이 세 가지가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비록 멋진 임원이 되거나 내 사업을 운영하는 성공이 아닌 현실에 존버하는 나일지라도 나에게는 일을 하는 이유가 있다.
그저 관성에 따라 출퇴근하는 사람이 아닌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왜 일하는지 생각하는 사람들, 일하는 엄마.
일하는 아빠란 말은 잘 안 하면서 일하는 엄마는 왜 그렇게 나눌까.
이제 애는 어쩌고 일하냐고 그만 물어보세요.
이유가 다 있다니까요?
* 이미지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