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친구가 있다!
대학 동기들을 만났다.
우리는 99학번이니 알고 지낸 지가 벌써 24년이다! (나 진짜 나이 많구나!!)
일 년에 한 번이나 두 번밖에 만나지 못하지만 오래 알아온 만큼 만나면 늘 편하다.
촌스러웠던 대학 신입생 시절, 함께 갔던 뒤죽박죽 여행, 늘 엉망이었던 과제 발표 등을 함께 겪다 보니 서로 잘 보일 필요도 없고 그런 걸 바라지도 않는다.
오늘은 단출하니 세 명이서 모였다.
가만 보니 우리는 20대 후반 제주도에 함께 갔던 세 명이었다.
그래, 우린 늘 꼬박꼬박 모임에 나오는 아이들이었지.
"난 네가 이렇게 멀쩡하게 밥벌이하고 사는 게 신기해. 너 진짜 학교 안 나왔잖아."
칭찬인지 욕인지 모르겠지만 친구들이 내게 하는 말.
그렇지, 내가 학교를 좀 많이 안 나가긴 했지.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많아서 학교는 늘 뒷전이었는데 그래도 지금까지 잘 살아온 내가 신기할 만도 하다.
"넌 너무 멋지다. 재벌 오너 패밀리들도 만난다니 너무 대단하다!"
"난 그저 월급의 노예일 뿐이야."
명품회사에 다니는 골드미스 친구는 회사 그만 두면 당장 길거리에 나앉아야 한다고 노후를 걱정하며 진지하게 안락사 비용을 알아봤다고 한다. 얘는 원래 대학 때도 좀 엉뚱했다.
"넌 요즘 일은 잘돼? 혼자 독립했다며?"
"지금 보릿고개라서 공통비용 내려면 다른 데서 비용을 줄여야 해. 애도 신경 써야 하고 집안일도 해야 하고 이제는 회사도 관리해야 해서 너무 바쁜데 돈은 안되네. 너무 불안해."
이미 너무 멋진데 항상 잘 안될까 봐 조바심을 내는 회계사 친구도 역시나 대학 때도 걱정이 많았다.
대학 졸업 후 20년 동안 모두 다 각자의 방법대로 살면서 지금까지 왔구나.
경영학 전공이지만 의상학을 복수 전공한 친구는 결국 그 길로 지금까지 왔고, 전공을 살려 회계사가 된 친구도 사실 이렇게 될 거라 예상한 길을 따라왔다. 역시나 경영학 전공인 나는 숫자가 너무 싫어서 회계와 재무를 피해 인사 쪽을 선택한 덕분에 지금에 이르렀다.
우리의 생각과 의도대로, 우리가 원한 결과를 어느 정도 성취한 지금.
그렇다면 앞으로 20년 후는 어떨까?
20년 뒤에 다시 확인해 보기로 하고 한 번 써본다. (확인할지 장담은 할 수 없다.)
명품 골드미스 친구는 아마도 그때쯤에는 평생의 동반자를 만나서 여행 다니고 맛있는 거 먹으며 즐거운 노후를 보내고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면 패션 관련 사업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멋진 회계사 친구는 은퇴를 최대한 미루고 조금씩이라도 일을 할 것 같은데 그래도 만약 현업에서 떠났다면 아들 장가보내고 멋진 남편이랑 골프 치며 살겠지?
나는... 아마도 계속 책 읽고, 글 쓰는 삶을 살지 않을까? 독서모임이 그때는 여행모임이 되어 있을지도.
천방지축 그 시절을 거쳐 이렇게 계속 만남을 이어올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다들 각자 몫을 잘 수행하며 살고 있는 것도 신기하고, 이렇게 훌륭한 사람들이 내 친구인 것도 신기하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무것도 안 하고 여행만 다니는 우리는 조금 상상하기 힘들다. 우리 그냥 계속 열심히 일하며 살자. 그럼 20년 뒤 어느 날 여기가 우리 자리구나 하며 웃게 되겠지.
99학번 친구들아, 2044년에도 만나서 웃고 떠들고 놀자!
(사진을 넣을까 했으나 초상권 보호 차원에서 생략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