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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윈플레임 Dec 26. 2023

아무 준비할 것이 없다고 하셔서

대안학교 지원 후기 3

찬바람이 쌩쌩 불던 12월의 어느 날.

비장한 마음.. 은 아니고 그저 늦지 말아야겠다는 일념으로 남편과 나 그리고 큰아이 이렇게 셋은 택시를 탔다.

토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택시를 탄 지 정확히 11분 만에 학교에 도착했다.


분명 학교 설명회 시간에 교장 선생님은 면접과 시험에 아무것도 준비할 것이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정말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다.

준비물로 컴퓨터용 사인펜을 챙기라고 해서 그것만 한 자루 아이에게 들려 보냈다.


남편과 나는 학부모 대기실에 자리를 잡았고 아직 우리 면접시간인 11시 20분까지는 한 시간여의 시간이 남아있는 상황. 느긋하게 책이나 읽어볼까 싶어 가져온 책을 폈다.

남편은 평소 보던 성경 앱을 꺼내 성경을 읽었다.

그러면서 지난번에 설정해 준 내 성경 읽기 계획표를 체크해 보더니 진도가 너무 밀렸다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구약은 좀 어려운데, 그냥 신약부터 읽으면 안 될까."

"그래, 그럼 내가 설정해 줄 테니까 오늘 분량은 지금 읽어."


열심히 마태복음 1장부터 5장까지를 읽었지만 마음은 앞으로 곧 봐야 할 면접에 쏠려 있었다.

도대체 뭘 물어보길래 엄마, 아빠 둘 다 필참일까.

아이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영어수업은 잘 알아들을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면접시간이 다가왔다.


'오늘 아침 읽은 성경구절과 묵상 내용은 무엇이었나요.'

그리고 질문 옆에 정확히 적혀있었다. '어머님이 대답해 주세요.'

이런.. 남편이 성경 좀 읽고 있으라고 말을 안 했다면 진짜 할 말이 없었겠다.

하지만 아주 만족스럽게 답하지는 못했다. 뭐라고 말을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야말로 선데이 크리스천인 나는 뭔가 유려한 말로 답변을 하고 싶었으나 도무지 멋진 말이 생각이 안 나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다.


이런저런 질문에 대답을 하고 난 후 추가 질문을 하던 중.

"아이는 핸드폰을 가지고 있나요?"

"네, 가지고 있어요."

"스마트폰인가요? 인터넷이 되는?"

"네..(약간 의아함.)"

"유튜브 같은 것도 보나요?"

"네..(많이 본다고는 차마 이야기 못함.)"


질문하는 선생님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아이는 처음 본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셔서 나 또한 이 분위기는 무엇일까 머리를 굴리며 대답했다.

면접이 끝나고 남편에게 물었다.

"핸드폰이 없다고 했어야 하나?"

"에이, 그래도 어떻게 있는 걸 없다고 해."

"그치? 내가 뭐 이상하게 말한 건 없지?"

면접이 끝난 후 뭔가 개운치 못한 느낌과 그래도 끝났다는 후련함이 섞여 기분이 이상했다.


곧 점심시간이라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아이를 기다렸다가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어땠어?"

"필기도구를 사인펜만 가져가서 글 쓰기가 좀 힘들었어."

"잉? 준비물에 분명히 컴퓨터용 사인펜만 있었는데?"

"근데 다른 애들은 다 연필, 볼펜 가지고 왔던데. 사인펜 쓰기 힘들어서 옆에 있는 애한테 연필 빌려서 쓰긴 했어."

"그래, 잘했어. 걔들은 어떻게 알고 그런 걸 다 가져왔다니."


아이는 국어, 영어 그리고 체육수업을 했고, 실제 수업에 참여하는 것을 보면서 입학시험 점수를 매긴다고 했다. 수업 시간 중 작문도 점수에 들어간다고 들었다.


"영어는 어땠어?"

"그게... 내가 한 번도 영어로 기도를 해본 적이 없잖아. 그런데 영어로 기도를 쓰라고 해서 좀 어려웠어."


아.. 그렇지.

영어로 기도할 일은 한 번도 없었지.


점심으로 학교 급식실에서 삼계탕을 먹고 학교 뒤 공터에서 초등학생 아이들이 공차기하는 걸 지켜보다가 다시 시간이 되어 아이를 마지막 수업시간에 들여보냈다.

우리 아이가 이 학교를 다니게 될 것인가 싶어 학교 곳곳을 여기저기 둘러보는데 여전히 이 길이 맞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종일 수업과 면접을 치른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에게 이야기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엄마가 면접에서 대답을 잘 못한 것 같아. 그래서 혹시라도 떨어지면 그건 엄마 때문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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