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안녕
늘 무모한 도전을 하는 편이다.
묻고 따지기보다는 행동이 조금 더 앞서는 편이다.
역시나 텃밭 가꾸기도 그렇게 생각이 조금 모자란 상태로 시작되었다.
새싹은 어떻게 돋아나는지, 계절에 따라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어떻게 텃밭을 돌봐야 하는지.
농사의 ㄴ도 알지 못한 나는 그저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게다가 주변에 텃밭을 해봤다는 사람들이 많길래 남들도 다들 하는데 난들 못할까 하는 다소 건방진 생각 또한 있었음을 인정한다.
그렇게 시작된 텃밭 농사는 첫해의 우여곡절을 거친 후, 첫 해에 다 쓰지 못한 거름 때문에 두 번째 해에도 연이어 농사를 짓게 되었다. 4,5년씩 대기를 걸어도 당첨이 안 되는 텃밭에 2년 연속 당첨되는 행운도 따라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두 번째는 좀 더 잘할 줄 알았으나 오히려 첫 해의 의욕이 이미 꺾인 상태였고 신기함도 없었다. 첫째 아이를 키울 때와 둘째 아이를 키울 때가 다른 그 느낌이랄까.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처음의 환희와 신비로움은 없는 익숙함과 예상 가능함이라고 봐야겠다.
손이 많이 가는 작물을 빼고 그저 자주 들여다보지 않아도 잘 자라는 아이들로 골라서 씨와 모종을 심고 매주 가긴 하지만 최소한의 잡초만을 뽑고 거름을 줬다. 첫해에 비해 둘째 해는 그래서 엄청난 가성비의 한 해였다. 손을 별로 안 대면서도 수확은 최대로 뽑아내는.
하지만 텃밭 임대료와 씨앗, 모종, 거름 가격을 다 합친 것만큼의 수확에는 한참 못 미친 굉장히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텃밭이긴 했다. 올해 키운 아이들은 상추, 고추, 가지, 부추, 쪽파, 시금치, 무, 감자, 고구마, 들깨 등이었다. 작년처럼 높이 자라는 해바라기나 옥수수는 심지 않았고 배추도 심지 않았다. 배추는 원치 않는 김장을 하게 만들기 때문에 절대로 심어서는 안 되는 위험한 작물이다.
텃밭 임대는 11월 마지막날에 끝나기 때문에 미리 정리하려고 들른 텃밭 농사의 마지막 날.
올해의 거름은 다 사용을 했기에 내년에는 더 이상 텃밭 임대를 신청하지 않기로 했다.
막상 이곳을 떠나려니 왜 이렇게 아쉬운지.
멀리 단풍이 들어서 울긋불긋한 산이 보이고 이미 정리된 밭들 옆으로 마지막까지 뽑지 않은 배추들이 보인다. 어느 집인지 올해 김장은 저걸로 다 하겠구나. 배추 속이 알차게 여물어간다.
매주 일요일 저녁때마다 오는 것이 때로는 귀찮았으나 막상 그 시간에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 있을 생각을 하니 새삼 아쉽다. 집에 있다고 특별한 걸 하지도 않을 텐데. 왜 섭섭한 거지. 왜 발걸음이 안 떨어지는 거지.
그래서 결국!
텃밭의 흙을 조금 담아와서 집에서 상추를 기르기 시작했다!
산 옆의 텃밭과는 이제 헤어질 시간.
아파트 베란다 텃밭과는 이제 막 만났다.
아직 덜 자란 상추들이 내 눈에는 이미 매 끼니 쌈채소를 공급해 줄 거대한 밭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쪼매난 화분 서너 개.
그럼 이제 다시 시작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