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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윈플레임 Feb 06. 2023

아름다운 피부를 원하십니까?

제2의 인생을 피부관리실에서 시작하고파

청춘의 상징. 여드름.


고1 초반까지도 괜찮던 피부가 고 1 후반부터 여드름성 피부로 바뀌기 시작했다.

한창 외모에 민감할 사춘기 시기에 일어난 변화이니 얼마나 신경이 쓰이던지.

그때부터 피부관리는 늘 나의 주 관심사항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피부관리실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엄마를 따라서 여기저기 피부관리실을 많이 다녔고, 다니다 보니 관심이 더 생기고 좋아졌다.

뜨끈한 침대에 누워서 한잠 자고 일어나면 없던 피로도 다 풀렸다

향긋한 화장품 냄새도 좋았고 관리가 끝나고 나면 왠지 더 예뻐 보이는 느낌도 좋았다.




직장 생활을 몇 년 정도 했을 무렵이었다.

문득 집 앞 피부미용 학원이 눈에 들어왔다.

피부미용사가 국가자격증으로 바뀐 즈음이었다.


그래, 내가 자격증을 따면 되겠다.

직장생활 언제까지 할지 모르고, 자격증은 배신을 하지 않으니 괜찮은 투자로 느껴졌다.

카봇에 나오는 어린이 차탄의 엄마처럼 자격증을 자랑할 수 있으면 멋지겠다 생각했다.


바로 학원에 등록한 후 수업에 갔다.

정말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수업에서 만날 수 있었다.

나 같은 사무직 직장인도 있고, 화장품 판매원, 헬스장 트레이너, 간호조무사, 추나 치료사, 학생 등 각기 다른 분야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수업에 임했다.


수업을 들으면서 나는 이미 자격증 딴 이후에 어떻게 할 것인가를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바로 관리실을 차리는 건 힘들 테니 어디 가서 주말에 알바라도 해야 하나.

아니면 이걸 시작으로 다른 미용자격증을 좀 더 따서 토탈 미용숍을 차려야 하나.

뭘 생각해도 다 즐거운 상상이었다.


노후에 피부관리실 원장을 하면서 세탁한 수건을 열심히 개는 것이 그 당시 나의 꿈이었다.

피부, 네일, 두피관리도 같이 하면서 나이가 좀 있는 아줌마들을 대상으로 하면 장사가 잘되지 않을까 즐거운 상상을 하면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곤 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필기시험에 똑떨어졌다.


분명히 모의고사 점수는 커트라인을 훌쩍 뛰어넘는 높은 점수여서 시험에 대한 걱정을 안 했는데 솔직히 말해서 진짜 자존심이 상했다.

시험운이 있는 편이어서 평소에 잘 못해도 시험만 치면 늘 합격이었다.

심지어 시험 전날 문제집을 스르륵 넘겨만 보고 갔던 운전면허 필기시험도 한 번에 합격했는데.

수업을 몇 시간이나 듣고 모의고사까지 쳤던 시험에서 낙방이라니.

같이 수업 듣는 아줌마 수강생들도 모두 합격인데 내가 불합격이라니.


많이 부끄러웠지만 애써 그럴 수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날 뭔가 컨디션이 안 좋아서 찍기가 잘 안 됐을 거야.

다음엔 합격해야지.


하지만 한번 불합격을 보고 나니 김이 팍 샜다.

나의 원대한 사업구상에 뭔가 걸림돌이 생긴 것 같고 또 막상 피부관리실을 차려도 잘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일단 하기로 한 거 끝까지 해보기로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시 한번 시험을 쳤다.

다행히 두 번째 필기시험은 합격을 했고 남은 관문은 실기시험이었다.




실기는 학원을 다니면서 열심히 준비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시험 당일 모델을 해주기로 한 친구와 함께 관리도구를 여행 캐리어에 바리바리 싸들고 시험장으로 갔다.

이때까지도 나는 꽤 자신이 있었다.


실기 시험이 시작되고 그날의 시험 문제가 나왔다.

자세한 피부타입 설명이 제시되고 그에 맞춘 관리를 하게 되었다.

설명이 살짝 애매했지만 피부에 유분기가 많다고 해서 자신 있게 지성피부로 관리차트를 쓰고 관리를 시작했다.

실기 시험은 장장 3교시까지였고 반나절 꼬박 시험장에서 시간을 보낸 후 시험을 마무리했다.


그런데 두둥!

철석같이 지성피부라고 믿었던 제시 상황이 사실은 건성피부였다!

왜! 도대체 왜! 

일부러 질문을 꼬아서 낸 건지.

아무리 관리를 잘했어도 차트를 엉망으로 쓴 내가 붙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김이 새도 이렇게 확실히 샐 수가 없다.

이제 노후대비고 새로운 사업이고 뭐고 더 이상 하고 싶지가 않다.

아마 미용은 나의 길이 아닌가 보다.


한번 더 실기시험을 보러 갈 수도 있었으나 이미 나는 너무나 모든 것이 귀찮아진 상태였고 내 안의 반짝이던 스파크는 빛이 사라진 적이 오래라 더 이상 이를 지속시킬 힘이 없었다.


앞으로 피부관리는 내돈내산으로 받기로 결심했다.

큰돈 들여 샀던 피부미용사 실기시험 재료를 중고나라에 헐값에 내다 팔며 제2의 인생 계획 중 하나를 야무지게 접었다.


그런데 피부관리를 배우고 난 이후 관리실 갈 때마다 마음에 안 드는 점이 눈에 띄어서 오히려 잘 못 가고 있다는 슬픈 이야기의 끝이다.



*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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