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순이는 아무나 하나
늘 그런 로망이 있었다.
관리가 되는 삶.
무엇보다 돈관리가 되는 삶.
가계부를 쓰면 도움이 될까?
그래봐야 푼돈에 연연하게 되어 티끌 모아 티끌이 될 뿐일 텐데.
아니야, 자산가들도 푼돈을 소중히 여긴다는데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아닐까.
상반되는 내용의 두 가지 갈림길에서 늘 갈팡질팡이다.
근데 사실 아무것도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이런 고민을 하다니 좀 우습다.
에잇, 그냥 해보자.
할까 말까 고민일 때 나의 선택은 늘 '한다'이다.
가계부 쓰기는 사실 이전에 수도 없이 시도했었다.
고사리손으로 용돈기입장을 써봤으나 실패.
월급을 받게 된 이후로는 여성잡지, 은행에서 준 가계부 쓰기를 시도했으나 실패.
간편하게 자동으로 내용을 입력해 준다는 모바일앱 사용도 실패.
예쁜 가계부도 여러 권 샀지만 실패.
엑셀로 관리하기도 실패.
실패. 실패. 실패.
그러다 가계부 쓰는 법을 알려주고 함께 쓰면서 공유한다는 강의를 알게 되었다.
이거다! 돈을 투자하고 강제성을 부여한다면 가능하겠지.
하지만 가계부를 쓰기 위해 또 돈을 써야 하는 이 아이러니라니.
새로운 시작을 위해 또 새로운 가계부를 샀다.
매일매일 가계부를 쓰고 카카오톡 오픈채팅으로 인증을 보내야 한다.
인증의 의무가 생기니까 일단은 쓰게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쓰는 걸 보니 자극도 받는다.
좋아, 좋아. 나도 이제 가계부 쓰는 여자야.
가계부의 장점.
지출이 한눈에 보인다.
지출이 보이기 때문에 불필요한 지출이 통제가 된다.
매월 고정적인 지출을 알게 되므로 정확한 예산을 세울 수 있고 그 안에서 관리를 할 수 있게 된다.
예산 이외의 부분을 투자로 연결하는 전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다.
이상이 내가 가계부를 쓰면서 느낀 장점이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그리고 미처 다 적지 못한 다른 많은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계속 쓰지를 못하겠다.
돈 쓸 때마다 스트레스받고, 까먹고 안 적어서 스트레스받고, 나중에 적을래니 기억이 안 나서 또 스트레스를 받는다.
남들은 그렇게 몇 년씩이고 쓰던데 나는 고작 한두 달 쓰고 이러다니.
나는 부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인가 보다.
이런 나를 어찌할꼬?
하지만 마음을 곧 고쳐먹는다.
진짜 부자는 자신이 얼마를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고 하지 않는가.
물론 다른 의미이긴 하지만 이 측면에선 나도 부자의 조건에 부합한다고 스스로 위로해 본다.
이러다 또 갑자기 바람이 불어 가계부를 쓴다고 푸드덕거릴지 모르겠으나 일단 잠시 소비기록은 쉬어가기로 한다.
포기는 아니다. 잠시 쉴 뿐이다.
* 이미지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