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아이를 가르치지 않는 선생님

확언의 힘을 믿어본다.

by 트윈플레임

초등학교 4학년이 될 때까지 엄마와 같은 학교를 다녔다.

그전 병설유치원 1년까지 합치면 총 5년을 같이 등교했다.


엄마는 집에서 나에게 공부를 가르친 적이 없다.

그저 심심해서 혼자 책을 보다 학교 입학하기 전에 글을 깨쳤고, 그 이후로도 문제집 한 권 가져다 준 적이 없었다.


내가 어릴 때는 아이들이 늘 밖에서 놀던 시절이어서 집에서 뭘 특별히 공부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하지만 개중에도 문제집을 집에서 푸는 아이들이 있었고 구몬수학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어린 마음에 친구들이 하던 구몬수학이 엄청 하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 어떤 공부도 시켜주지 않았다. 꾸준히 다닌 건 피아노 학원이었는데 그것도 초등학교 5학년때 갑자기 이론공부를 하는 게 너무 어려워서 그만두고 싶다고 하니 두 번 묻지도 않고 쿨하게 그만두게 해 주셨다.


친구들이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초등학교 앞에 새로 생긴 보습학원에 너도나도 등록을 하길래 나도 학원에 보내달라고 졸랐다. 그 학원을 중3까지 다녔다.


공부는 학교와 학원에서 했고 그때는 인터넷 강의도 없던 시절이라서 그냥 그 방법밖에 없었던 것 같다.




비록 나를 가르치지는 않았지만 손주는 좀 다르지 않을까.

초등학생 아이들을 좀 가르쳐주시면 어떨까 이야기해 보았다.

하다 못해 중간중간 모르는 것만 좀 알려줘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얄짤없다.

내 자식은 못 가르친단다.


내가 직접 아이들을 가르쳐볼까 시도해 보았다.

초등학교 공부 정도야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수업의 난이도와 상관없이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

책상에 앉기까지 한 시간이 걸린다.


이 방법은 아닌가 보다.

나는 아이와의 관계를 택하고 공부를 포기했다. 그럼에도 자꾸 뭔가 해주고 싶은 이 마음은 뭘까.

조금만 알려주면 쉽게 갈 수 있을 듯한데 아이들은 엄마의 말에는 관심이 없다.


내가 자꾸 가르치려고 해서 그런지 아이들은 자꾸 튕겨져 나간다.

나를 가르치지 않았던 엄마처럼 초연해야 아이들이 따라올 것인지 방법론에 있어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무엇보다 초연하기가 참 어렵다.


아이와 함께 밀당하기를 이제는 좀 그만하고 싶다.

자꾸 나는 알아서 했는데 너희는 왜 못하냐고 물어보고 싶다.

라떼는 위험한 것. 나의 어린 시절에 비추어 아이들을 돌아보지 말아야 하는데 자꾸 그렇게 된다.

아이들은 내가 아닌데.




엄마가 존경받는 선생님이었던 것이 자랑스러웠다.

집에 내 장난감은 없고 아이들 수업자료만 창고 한가득이었어도 전혀 섭섭하지 않았다.

세월이 한참 지나서도 선생님을 찾아오는 제자들이 있다는 것이 존경스러웠다.


어쩌면 가르치기보다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가장 큰 교육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오늘도 확언노트에 이 문구를 적어 넣는다.

'나는 아이들이 존경하는 롤모델이다.'


이루어져라. 이루어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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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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