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님 환영!
얼마 전 일제강점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읽었다.
소설의 내용 외에 내 눈을 끈 내용은 다른 것이 아닌 그 시대 여인들의 생활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불을 때고 가마솥에 물을 끓이고 밥을 하고. 식재료들을 장에서 사 오거나 밭에서 따와서 끼니를 준비하고 잠시 쉴 틈도 없이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한다. 빨래도 냇가에 가서 하나하나 손빨래를 하고 계절마다 옷을 뜯어서 솜을 넣거나 빼서 바느질을 하고 다림질을 한다.
와,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이렇게 감사할 수가. 그저 끼니를 때우고 옷을 입고 잠을 자는 그 매일의 삶을 위한 노동이 엄청나다.
성인이 되면서부터 부모님의 그늘에서 벗어나 살다 보니 일과 살림의 병행은 그저 특별한 것이 아닌 삶의 일부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둘이니 이제는 그들의 뒤치다꺼리까지 하다 보면 집안살림은 끝이 없다.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어느 정도 타협을 하며 살고 있지만 그래도 기본이란 게 있지 않나.
그래서 이 살림의 수고를 최대한 덜 수 있는 방향을 찾아보았다. 현대는 기술의 시대.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이모님들이 한 분 두 분 늘어난다.
냉장고, 전자레인지, 세탁기, 전기밥솥 등의 가전제품은 이미 붙박이 가구 같이 우리 삶의 일부가 된 지라 이모님의 반열에는 오르지 못한다. 그 정도의 위치에는 비교적 최신식인 3대 이모님이 있다. 요즘흔 흔히 이 분들을 모시고 사는지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고들 말한다.
우선 식세기 이모님.
내 인생은 식세기를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할 정도로 감사한 이모님이다. 밥을 하는 것도 싫은데 설거지까지 할 생각을 하면 한숨이 절로 나왔는데 그걸 대신해 준다. 너무 감사하다. 그리고 살균 소독에 물도 아껴준다니 나보다 훨씬 낫다. 식세기 청소서비스를 별도로 받고 있으니 필터조차 갈아줄 필요 없이 그저 사용만 하면 된다. 돈이 참 좋다.
그 다음은 로봇청소기 이모님.
이모님이라기엔 너무 귀여워서 우리 집 막내정도로 여기고 있다. 혼자서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먼지를 흡입하고 방을 닦고 더 고마운 건 걸레도 빨아주고 말려준다. 혹시 걸레에서 냄새라도 날까 봐 빨아보려고 걸레를 떼 봤는데 아무 냄새도 안 나고 뽀송하게 말라있어서 다시 그대로 장착해 주었다. 먼지통도 자동으로 비워주니 나는 물만 갈아주고 모아둔 먼지만 살짝 비워주면 된다. 진짜 돈이 좋다.
현대인의 이모님 삼총사 중 마지막은 건조기 이모님이긴 한데 아직 이분은 모시지 못했다. 현재 사용하는 세탁기와 사려고 하는 건조기의 브랜드가 달라서 설치의 어려움이 있는지라 일단은 좀 두고 보는 중이다. 아직 건조기가 없다고 하면 모두 다 왜 그 좋은 걸 안 사느냐고 열이면 열 나를 재촉한다. 다른 두 분 이모님들을 들인 경험에 빗대보면 아마 이 건조기 이모님도 나에게 신세계를 열어줄 것 같다. 하지만 멀쩡한 세탁기를 교체하려고 하니 아까워서 아무래도 망설이게 된다. 세탁실을 정리하고 세탁기 교체와 건조기 설치를 하는 수고가 귀찮은지 아니면 건조기를 사용하지 않고 빨래를 너는 수고가 귀찮은지 결국 두 수고 중 어느 쪽 손을 들어줄지 두고 보자.
아이들이 학교에서 과학상상화를 그린다고 하면 항상 살림로봇, 요리로봇을 그려달라고 주문한다. 우리의 삶은 무엇 하나 그냥 되는 것 없이 누군가의 수고가 꼭 필요하다. 집 안에서는 그 누군가가 대부분 엄마인 경우가 많다. 내 가족을 위한 수고이니 전혀 억울한 생각은 없다. 하지만 나는 내가 너무 소중하다. 나를 너무나도 아끼고 싶다. 그래서 앞으로 더 많은 이모님이 생겨나면 좋겠다.
과학기술의 발전, 매우 격하게 찬성하는 바이다.
자꾸 우주로만 나가지 말고 그 기술을 집 안으로도 많이 보내주길.
* 이미지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