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번 응급실

이제는 보내줘야 할 때

by 열음

어제 저녁. 잘 못 먹으면 병원 가야 한다는 말에 할머니는 두유 한 팩을 꼴깍꼴깍 먹었다. 물 한 모금 넘기기도 쉽지 않았는데, 그렇게 병원에 가기 싫었을까. 할머니는 방문을 못 닫게 했다. 방문을 닫지 못하면 잠들지 못하는 나와 완전 반대된다. 우리끼리 거실에서 이야기하는 소리, 밥 하는 소리, 씻는 소리, 정리하는 소리. 그 모든 소리가 듣기 좋다고 했다. 그 전에 혼자 얼마나 적막했을까.


꼴깍꼴깍 삼킨 두유가 탈이었는지, 할머니는 어젯밤 내내 배가 뒤틀리는 듯이 아파 잠을 못잤다. 그걸 새벽 내내 지켜 본 엄마의 눈이 퀭했다. 두유에 괜히 꿀을 타서 줬다며, 지사제를 안 먹여서 그렇다며 엄마는 본인 탓을 하고 또 했다. 두유를 먹고 기력을 차리면 응급실에 가지 않겠다는 다짐이 또 무너지고, 점심 시간 후 누군가 퇴근하면 바로 응급실에 가기로 했다. 나는 괜히.. 방학 때 출근하기로 해서 가보지도 못했다. 진료기록이 있는 첫 번째 응급실에 갔는데, 받아주지 않는단다. 뼈가 부러지거나, 당장 심폐소생술을 해야하거나, 어쨌든 그렇게 긴박한 상황이 아니라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할머니의 숨이 꼴딱 넘어갈 것 같은데도.


두 번째 응급실에 가기 전 전화를 했는데 거기도 자리가 없어서 못 받아준다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엄마의 친구가 대전 한 병원에 간호사로 있다고 해서 세 번째 응급실에 갔다. 다행스럽게도 자리가 남아 있었고 진통제와 수액을 맞을 수 있게 해주어 모두 한 시름 놓았다. 응급실에 들어가는 일만 4시간이나 걸렸으니 할머니가 너무 힘들었겠지? 그 와중에도 "수진이가 나 때문에 고생하네. 고마워."라는 말을 잊지 않고 하는 할머니. 고맙다는 말 좀 그만했으면 좋겠네.


이제는 할머니도 직감하겠지. 몸이 소진되어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걸.


2주 전까지 내가 끓여 준 된장찌개를 싹 비우는 할머니는 어디 갔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좋게 생각하려 한다. 할머니가 우리가 조금만 고생하라고 빨리 가려고 하는지.. 아니면, 할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어 빨리 가려고 하는지.. 그것도 아니면, 우리에게 좋은 기억만 남겨주고 아픈 기억은 짧게 남기고 가려고 하는지.


이제는 할머니를 떠나 보내야 할 때인가보다. 내일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기로 했으니 가족들 여럿이 할머니를 볼 수 있는 건 어쩌면 마지막일 지도 모른다. 할머니 옆에 붙어 울고 이야기를 하던 엄마는 마지막임을 알아 발을 떼지 못하지만,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간다.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든다. 내일은 할머니가 얼마나 더 악화되려나.. 얼마나 더 아파지려나.. 무슨 일이 일어나려나..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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