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옥 Dec 26. 2019

사랑해선 안되는 널 사랑해서.

백지의 2020

2019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고로 나의 불행도 얼마 남지 않았다. 고 믿고 싶다.

2년 전 우연히 들른 양재역 근처에 있던 사주집에서 역술가 아저씨가 말했다. 2019년 12월까진 힘들거야.

그러곤 내 손을 꼬옥 잡아주었다. 뭐 이런 이야기를 맹신하진 않지만, 그동안 지독하게도 힘이 들었던 건 사실이다. 그때마다 그놈의 2019년 12월이 오기를 누구보다 손꼽아 기다렸다. 아저씨, 아저씨 말 틀리기만 해봐요. 나 이제 조금은 덜 힘들고 싶어요.




2017년 부터 2019년.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회사에서 인정받기 위해,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사랑받기 위해 부던히도 노력했더랬다. 하지만 그 노력의 결과는... 입봉은 했지만 임금은 오르지 않았고, 좋아하는 사람마저도 좋아해선 안되는 사람이었다. 바보가 된 기분이다. 그들에게 난 얼마나 쉬운 사람이었을까.


나는 왜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을까.
사실 나는 누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란 생각에 몰두해있었다.
내가 너를 기다린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나는 내가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노을의 집, 배문성

 

그래도 어쩌겠나. 그 뒷수습은 내몫인걸. 이제 새로운 둥지에서 다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해야하고 무엇보다, 그 사람도 잊어야한다. 사실 그 사람을 끊어내는 일은 이미 몇번의 시도를 해본 경험이 있다. 바로 그 2년의 시간동안. 그때마다 번번히 실패했던 건 이 말 때문이었다. '너가 힘들때라도 연락줘. 같이 있어줄게.' 그렇게 그 사람은 늘 내가 힘들기를 바라는 건지, 늘 내곁을 서성였고 지금의 이지경에 이르렀다. 난...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나의 구차한 변명이다. 


사랑을 하고 싶다. 제대로 된 사랑을 하고 싶다. 그동안 난 너무 소비되기만 했다. 사랑해선 안되는 널 사랑해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는 널 사랑해버려서, 난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힘들게 쌓아온 시간이 무(無)로 돌아갈까 너무 두렵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려운 건 우습게도 너를 내쳐버린 나를, 너가 잊어버리는 일이다. 이 글의 끝을 어떻게 맺어야할지 잘 모르겠다. 기다리던 2019년의 12월은 어느덧 끝자락에 다달았고 이젠 그 누구의 예언도 없는, 백지의 2020년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당장 지금의 상황을 바꿀 순 없더라고, 딱 한가지. 사랑해선 안되는 너만큼은,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혼자가 아닌 둘이서 여행한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