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되지 않아서, 아무거나 될 수 있는 사람
어느 날 문득 궁금해졌다.
이만큼 커버린 내가 다시 무언가에 도전을 하고 어떤 걸 할 수 있는 그런 인간이 될 수 있을까? 하고.
마흔에 가깝고, 서른보다 먼 나이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어떻게 보면 이상한 질문 일 수도 있겠지만, 문득 드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다.
만약에...라는 것들은 항상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찾아온다.
어린 시절부터 꽤나 여러 번 <만약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상상 속에서도 그려오면서 지냈는데, <만약에>가 없었다면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서점을 운영하면서, 많은 시도들을 하는 중인데, 그중 하나가 도서 큐레이션과 부캐 만들기이다.
나는 부캐가 여러 개인데, 나열을 해보자면
요리하는 나, 드라마를 쓰는 나, 웹소설을 쓰는 나, 소설을 쓰는 나, 공부를 하는 나, 독후감을 쓰는 나, 베이킹을 하는 나, 걷는 나, 달리는 나, 그리고 노래를 연습하는 나인데. 여기에 요즘엔 쿠키를 만들어서 파는 나 와 도서를 추천해주는 나가 포함되었다.
하루에 한 번씩 600그램 정도 되는 쿠키 반죽을 굽는 중인데, 하면 할수록 늘어야 하는 데, 하면 할수록 어떻게 실력이 나날이 줄어드는 느낌이다.
만들어봐야 하는 쿠키의 양과 반비례해서, 자신감은 자꾸만 바닥으로 가라앉으니, 이것도 환장할 노릇이고, 책은 또 책대로 읽어서 이 책이 필요한 이들에게 추천을 해주어야 하는 데, 하루에 2권이 넘어가면서 머리가 어질을 넘어서 아찔해 온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열심인 나를 원캐로 삼아놓아서 그런지 아찔하기만 하고 다시 열심히 한다.
늘 나는 열심히 했었다.
단 하루도 진심이 아닌 날이 없었고, 단 한 시간도 진짜가 아닌 적이 없었다.
비록 부캐라고 할 지라도 나에게는 모든 순간이 진심이고 진짜인 것들로 가득하다.
다만, 의심이 조금씩 드는 거였다.
아직 아무것도 되지 못한 내가 그 어떤 게 되려고 이다지도 열심히 사는 걸까? 하는 의문들 말이다.
제주도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하루에 3시간을 자면서 쿠팡 알바를 했던 날은 어떻게 그렇게 살았는가 싶기도 하고, 동생네 커피숍에 딸기 타르트를 납품하기 위해서 새벽에 4시까지 며칠 밤을 꼬박 잠을 못 자고 하면서도 다시 일을 하러 갔던 일이며, 드라마 공모전에 글을 내기 위해서 굴러가지도 않는 맷돌을 열심히 굴리느라 손톱을 자근 자근 씹어 먹으며 고군분투했던 일들도......
뭐든 된 건 아무것도 없다.
제주도 여행에 가서 쓴 돈은 마련하기 위한 경비를 훨씬 웃돌았고, 타르트는 그 한해만 하고 그만했으며, 공모전은 여전히도 당선되지 못한 체, ing다.
진짜로 나는 된 게 하나도 없다.
망했다, 망했어. 망해서 어떡하지가 아니라, 진짜로 망했네.. 하하하로 변했다.
하다 보니 웃게 되는 게 신기했다.
아무것도 된 게 없는데,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 건, 그동안 해 왔던 노력과 과정에 집중하기 때문이었고, 나는 원래 느린 삶을 산다고 여기게 되었다.
곰곰이 돌이켜보니, 나의 20대는 그렇게 치열하지 않음을 나는 인정한다.
다른 친구들이 모두 어떻게 해서든 대학을 다니고 치열하게 취업을 준비하고 공무원 시험을 보기 위해서 뛰어다녔던 것에 비하면 나는 그냥 일만 했다.
학교도 다니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그 세계에 재미를 붙이니 그것 또한 내 인생이라 여겨서 그런지 몰라도, 같은 또래가 겪는 치열함은 나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리고 서른이 되자, 나는 치열하게 다시 살았다.
남들이 20대에 했던 것들을 서른에 하려고 하니, 어렵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니 또 재밌기도 했다.
뛰고 걷고, 다시 뛰고 뛰고 를 반복하다 보니, 강약 중강 약 강강강을 알면서, 아무것도 안된 내가, 이제부터라도 무언가가 되겠다고 생각을 하면서 왠지 뿌듯하고, 왠지 기특해졌다.
무언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나를 좀 재밌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러면서 다른 무언가를 또 하게 만드는 원동력을 만들어 준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살아가면 또 내가 어떤 부캐와 원대로 힘을 합쳐서 괜찮은 시너지를 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