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3

비오는 날

by 이순복

삶이라는 게 녹록치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철이 들기도 전, 또래보다 일찍 일어나서 학교 갈 준비를 하고 학교가 끝나면 동생과 같이 집으로 가는 길이 1시간 넘게 걸린다는 사실을 알았을 무렵,


엄마는 새벽에 잠이 들고 아빠는 집에 있는 물건을 무섭게 때려 부순다는 걸 알았을 때,


다른 집 여자 아이들은 첫 생리 날 꽃다발과 케이크를 받았는 데, 나는 그냥 생리대 하나 덜렁 주고 사용법을 알려주는 엄마가 소주를 마신 후 라는 걸 알았을 때,


내 나이는 13살 이었고, 주변에 제대로 된 어른들도, 그렇다고 어디에 물어볼 곳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동생들을 챙기기에 바빴는데.


그렇게 자란 어린 나는 몸만 크고 마음은 제대로 보호받지 않고 어설픈 어른이라는 타이틀만 가지게 되었다고 느낀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비가 오면 그런 생각을 종종 했다.


내가 잘못한 게 뭘까? 아니면 내가 잘못 선택한 건 뭘까?

하고.


실은 그런 건 없었다.


나도 어렸는 게 어른스러움을 강요당한 거고,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하는 주변 어른들의 말에 따라만 할줄 아는 앵무새 같은 아이였고, 유일하게 인정받는 방법 이라는 사실 이었고, 칭찬 한 줄기에 목마른 아이 였다는 걸.


만약 시간을 돌릴 수 있는 장치가 있다면 그 시절의 나를 안아주러 가야지 하고 생각 한 적이 있다.


아무도 안아주지 않은 나를 나 스스로가 안아주러.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던 나를 나 스스로가 인정하고 토닥여주러, 그렇게 가야 겠다고.


스스로가 아니면 안되는 우리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순수하고 아름다운 방법은, 나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가 인정해주고 사랑해주는 것.


유일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조금씩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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