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1. 어느날 갑자기

part 2. 같은벽, 다른 느낌, 미장

by 이순복

5월의 어느 날, 이었다.


하고 있던 쌀국수집이 어정쩡하게 남의 것을 이어 받은 소위 말하는 바지 사장이라는 일을 하게 되었는 데, 할 줄 아는 거라고는 6년동안 해온 쌀국수 와 볶음밥 뿐 이었던 나. 그리고 우리 엄마... ... 모든 게 한 순간에 흘러가지는 않았다. 인생은, 삶은 한 순간에, 영화처럼 파바박- 하고 몰아치듯 가지 않는다. 그랬으면 좋았을 걸... ... 남들에게 쉬운 일들이 항상 나에게는 어려운 일 이었고, 남들에게 안정적이고 평범한 것들이 나에게는 스릴 넘치는 한계점 위의 일들 이었다.

더 빨리 깨달았어야 했는 데... 라는 후회를 할 시간도 없이, 나의 감정은 자살 직전까지 나를 몰고 갔다. 쌀국수집이 10층 건물에 2층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매일 매일 출근할 때마다, 나는 건물의 옥상을 생각했다. 그곳에 가서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낙하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나는 나를 계속해서 아래로, 아래로, 저 땅 속 깊은 곳의 어디쯤으로 뚫고 또 뚫어서 나락으로 가라앉게 만들었다.

덜 영글게 착한 딸 이었던 나는, 그 즈음 엄마와 불화가 심했고, 남동생의 사업자금에 대한 생각으로 전전긍긍했고, 뒤늦은 결혼식을 올리는 여동생에 대한 미안함과 걱정이 극에 달해 있었다.

내가 하지 않아도 될 일 이었는데, 내가 나서서 해야만 하는 대한민국 큰 딸 들의 국룰.

아빠가 2012년 9월에 돌아가시고 난 후, 28살의 나는, 어리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나이가 많지도 않은 애매한 지점에 서 있던 나는 내가 뭐든 해줘야 하는 입장이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있었지만 엄마는 약했다. 아빠의 죽음과 더불어 엄마도 시들 시들 해진 꽃처럼 굴었다. 그래서 내가 강해져야 한다고 여기며 내내 나를 조이고, 또 조이고, 나사가 풀릴 세도 없이, 일하고 또 일하고, 울면 안된다고 다그치면서 살았는데.

그 즈음이 나의 번 아웃 시점 이었던 것 같다.

아무것도 해놓은게 없었고, 아무것도 할 게 없었고, 그저 지치고 또 지쳐서, 옥상의 난간에 대롱 대롱 매달려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나의 마음속의 말을 누군가는 들어 줄 거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 스스로가 나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어야 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방법을 몰랐고, 어떻게 해야만 그렇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우스갯 소리로, 여유는 통장의 잔고에서 나온다는 말에 나는 극공감을 한다.

당시의 내 통장의 여유는 단지 하루 하루를 먹고 살만큼의 여유 뿐 이어서, 나를 돌아볼 여유는 전혀 없었다.

그런 나들의 연속이 되다 보니, 나는 일을 하던 중에 자주 울컥 하고 왈칵 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은데, 울면 안되는데, 그랬다가는 그 공간안에서 나만 바보가 된 것 같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서 서운함에 또 기분이 상할 것 같은 날들...

그렇게 하루 하루 살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는데, 거기 타일 미장 방수 학원이라는 플랭카드가 휘날리고 있었다.


“ 노가다 잖아... ” 라고 생각을 했는데, 엄마가 매일 같이 기름을 뺀다고 모아두었던 사랑방 신문에서 다른 학원의 광고를 또 보게 되었다.

그래서 무작정 그냥 아무 생각없이 전화를 걸었다.


생각해 보면 내 생애에서 가장 무모하고 이상한 일 이었다...!


전화를 걸어서,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고, 실업 급여를 받을 예정이고, 나는 초보다, 아에 그 쪽 일은 해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할 수 있느냐.. 아니면 약간의 경험이 있어야만 가능 한거냐 등등... 시멘트라고는 손에 묻혀보지 않았던, 다만 소기름 냄새와 식용유 냄새만 진득하게 몸에 벤 내가 그렇게 묻자, 직업학교 상담 선생님은 아주 친절히 말씀해주셨다.

“ 그럼요, 가능해요. 내일 오셔서 상담이라도 받아 보세요.” 라고!

하지만 나는 그 ‘내일’에 가지 않았다.

쌀국수 집을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고, 일을 정리하고, 엄마와 집으로 돌아오고 하루 후, 전화를 건지 2주후, 나는 직업 학교에 찾아갔다.

5월의 셋째 주 쯤 된 것 같다.

그 앞에서부터 나던 시멘트 냄새와 멀지 않은 시장에서 나는 비린내, 모든 게 후각을 예민하게 만들었던 건, 나의 긴장 때문 이었다.

복도에 선 나는, 곧장 상담실로 들어갔고, 상담 선생님은 나를 아주 반갑게 맞아 주셨다.

여자 학원생은 몇 명 안된다고, 아니 거의 없다고. 걱정스러운 말들을 하셨지만, 나는 심장이 두근 거리면서 이내 진정이 되는 나를 느꼈다. 아마도 직업학교에서 있을 일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일 이라서 더 진정이 된 것 같았다.


태어나서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일, 하지만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일.


나는 직업 학교를 등록했고, 타일반은 자리가 나오는 대로 들어가기로 하고, 미장반으로 먼저 입학을 했다.

그곳엔 나이가 아주 많은, 한눈에 봐도 동네에서 꼰대 소리를 아주 많이 들을 것 같은, 무엇보다 학원에서 아주 무서울 것 같은 호랑이 선생님이 계셨다.


선생님의 나이는 70초반, 여전히 미장 현역에서 뛰고 계시는 전문가 중에 전문가 셨다.

174인 내 키에서 10센치를 빼면 선생님의 키가 될 듯이 보였고, 69키로인 내 몸무게에서 20키로를 빼면 선생님의 몸무게가 될 것 같은 분... ...


깡마른 체구 와 은테 안경 너머로 보이는 가느다랗고 실눈 같이 빛나는 눈을 지닌 선생님...!!


선생님은 미장 반 에 여자는 처음 이라고 하셨다.


‘ 저도 처음이에요. 선생님... 미장은.’ 이라고 눈빛으로 말했지만, 선생님은 그 말을 하시고는 내가 사야할 물건의 리스트를 말씀해주셨다.


뭐든, 첫 시작엔 초기 비용이 든다. 여지없이.


내가 사야 할 것은, 내 고대, 렝가 고대 이 두 개 였는데, 나중에 나는 미장 자격증도 도전할 목표를 세워서, ㄱ자와 ㄴ자 의 흙손이와 스펀지, 줄자, 톱 등 여러 가지를 다양하게 더 사야 했지만, 처음 미장반에서 선생님이 주신 미션은 고대 2개 와 스펀지 뿐 이었다.

미장반은 내가 들어갈 적만 해도, 미장파 와 타일파 이렇게 두 개의 반이 있었는데, 한달 후 쯤 반이 합반이 되었고, 타일과 미장이 한 반에서 서로 뒤엉키듯이 함께 수업을 들었다. 물론, 이론 수업은 거의 없다.

손으로 하는 직업, 손으로 하는 일에는 무조건!!

손맛이다!!

미장 연습을 하는 곳으로 들어가게 되면, 엄청난 시멘트 가루 때문에 무조건 마스크를 끼지만, 거의 대부분은 마스크를 끼지 않고 한다. 연습이기도 하고, 연습용 시멘트는 일반 공사 현장에서 쓰는 시멘트와 다르다. 그걸 나는 학원에서 처음 알았다.

처음 연습은 각자 맡은 사방 1미터 정도의 너비와 길이를 가진 자리에서 좌우, 상하 이렇게 시멘트를 바르는 연습을 하는데, 그것보다 먼저, 시멘트를 개고, 물 양을 맞추고, 시멘트를 퍼서, 팔레트 같은 넓은 빠데에 시멘트를 올리는 연습부터 시작한다. 자신이 올릴 수 있을 만큼, 바를 수 있을 만큼의 시멘트를 빠데에 올려서, 빠데에 올려진 시멘트를 고대로 스윽- 하고 푸는 연습. 그게 바로 미장의 첫 걸음 이었다.

열심히 빠데에서 고대로 시멘트를 푸는 연습을 하는 데도, 도무지 이 물렁하고 말랑한 시멘트는 절대로 쉽사리 나의 고대로 올라와 주는 법이 없었다. 심지어 턱- 하고 올린 빠데에서도 이 시멘트 녀석은 후루룩- 하고 면발 사라지듯이 바닥으로 떨어지고는 했는데, 그럴 적이면 주변의 시선도 만만치 않았다.

미장반에 처음 들어간 여자 원생, 34살의 나는, 원래 그곳에서 2달을 배운 학원생들, 그보다 먼저 이미 현장에서 한탕씩을 뛰고 있는 아저씨들과 나의 또래들의 눈빛을 열심히 감당해야 했다. 어쩌면 그게 미장의 첫걸음 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시선을 받아내면서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30분까지 미장을 하는 것, 여자가 왜 여기 있지 라는 호기심 과 어떤 사연이 있길래 여기에 온거냐고 묻는 의문과 질문 투성이의 눈빛들 그리고 쟤는 왜 하는 데 안 늘어? 하는 못마땅함이 묻어 나오는 분위기... 6시간 30분을 그렇게 침묵의 시선과 호기심, 의문을 온 몸으로 받아내면 나의 온 몸과 정신은 하루 종일 12시간을 근무했던 시절보다 쉽사리 지쳤을 법도 한데... ...

나는 그렇지 않았다.

이상했다.

아침에 7시면 눈이 떠졌고, 9시까지 가면 되는 학원을 늘 8시 30분에 도착했고, 3시 30분이 아닌 3시까지만 해도 되는 연습 ( 나머지 30분은 청소!!)을 나는 30분까지 꽉꽉 채웠다.

남자들만 드글 거리는 이 공간 안에서 시선으로 사람을 평가 하는, 그 무섭다고, 사람 무시를 잘한다고 하는 그 남자들만의 세계에서 나는 이상하게 더 어깨를 펴고, 허리를 굽히지 않고, 무조건 선생님이 알려주신 방법대로, 하루, 이틀, 그리고 삼일 그보다 더 한 날짜를 연습했다.

단 한번도 지각하지 않았고, 단 한번도 결석하지 않았고, 단 한번도 조퇴를 하지 않았다.

당시에 직업학교는 현역에서 은퇴한 분들이 실업급여 때문에 놀러 온다는 이미지도 있었는 데, 그런 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열심히도 벽에 바르고, 다시 깍아내고, 다시 물을 발라서 청소하고 선풍기로 벽을 말리고, 다시 시멘트를 손으로 척척 개어내면서, 하루를 꽉 꽉 채웠다.

재밌었다.!

시멘트 바르는 일이 이렇게 즐거울 일이야?!

손으로 하는 일은, 몸을 움직여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은 절대로 배신을 하지 않는다.

자전거를 탔던 기억이 머릿속이 아니라, 온 몸에 상처마냥 새겨진 사람들은 안다.

뿐만 아니라, 수영도 마찬가지다.

몸으로 하는 일은, 기억이 사라져도 한 번 두 번, 다시 시도를 하다보면, 그 때의 움직임이 마치 리듬을 타고 온 몸에서 흘러나와서 나를 경쾌하게 박자에 맞춰서 움직이게 하는 마법같은 일이 벌어진다.

미장도 마찬가지였다.

3일 정도 지나고 나니, 나는 그제야 온 벽에 시멘트를 바를 수 있었다. 바르던 벽에만 계속 바르다 보면, 손에 익어서, 그 벽에만 익숙해지면 안되므로, 아침에 더 일찍 나가서 다른 벽을 선점해갔다.

10개의 벽마다, 같은 날 만들어 졌어도, 같지 않았다.

벽도 사람처럼 숨을 쉬고, 같은 재료로 만들어졌어도, 각기 위치에 했는 방향에 따라서 완전 평평한 벽, 덜 평평한 벽, 습기를 많이 머금고 있는 벽, 습기가 없는 벽, 혹은 온도가 높은 벽, 온도가 낮은 벽 등... 똑같은 장소에 있는 벽들이 서로 다른 생김새와 이름을 같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원래 했던 벽이 조금 울퉁 불퉁한 벽 이었던가 하면, 옆의 벽은 좀 더 고르고 맨질 맨질해서, 시멘트를 갤 때도 조금 덜 부드럽게 해야 하는 것들. 이 모든 것들을 나는 알아가고 있었다.

물론, 생초짜인 내가 알 수 있는 방법은, 선생님이 알려주신 비법들 때문이기도 했다!

호랑이같이 무서운 선생님은 의외로 여성에게는 따듯한 면이 계신 분 이었다.

50년 아니 그보다 더, 어쩌면 나의 어머니 나이 만큼 미장일을 하신 선생님은, 업계에서는 아주 유명한 분이였는데, 짱돌처럼 굴러다닌 자신의 미장 인생을 지금은 천천히 손에서 놓고 계시는 분위기 였다.

직업 학교도 그 때의 인연으로 수업을 하게 되신 케이스 였는 데, 다른 선생님과 원생들 한테는 살짝 인기가 없는 편 이었지만, 나는 스승님이라고 여전히 마음속으로 부르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서른 네 살 먹은 계집애를 자신의 반에 넣어주고, 선생님은 열심히도 알려주셨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보는 미장일 이었기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고, 해보지 않은 일은 초짜가 더 빨리 배운다는 기술직들의 지나가는 농담처럼, 나는 미장 수업을 쭉쭉 빨아드렸다. 나중에는 미장이 재밌다면서, 다른 친구들에게까지 설파할 정도가 되었으니까.

같아 보이는 벽면에, 각기 다른 느낌을 가지고, 온전히 시멘트를 개고, 바르고, 다시 까고 하는 일을 하루 종일 하다보면, 어깨가 뻐근하고, 허리가 아프지만, 성취감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있었고, 그와 동시에 미장 시험을 준비하면서, 톱을 잡고, 각목을 썰고, 줄자를 대고, 치수를 맞추고, 각고대로 여기 저기 각을 맞추는 사이, 학원생들 과 함께 나는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6월부터 찌는 듯이 더웠고, 시험은 그해에 8월에 있었던 까닭에, 게다가 내가 있는 지역도 아닌, 대한민국에서 단 2군데 있는 미장 시험 장소는 각각 부산과 안성 이었다. 내가 연습한 모양은 안성에서 시험을 보는 주제였고, 부산은 같은 게 나올 수도 안 나올 수도 있었다. 오랫동안 미장 시험의 출제 문제는 변하지 않았었던 것 같다.

6월말 부터는 미장 시험을 준비하면서, 나는 또 다른 난관과 시련에 부딪혔는 데, 실은 나는 수학을 정말 못한다.

고등학교때 이과를 선택했던 사실을 후회할 정도로, 수학을 못하는 데, 그건 내 절친도 인정을 하는 바였다.

“ 너는 진짜 문과 체질인데. 이과와서 망한 케이스” 라고.

그래도 어쩌랴... 나는 무조건 그때는 이과였는데.

수학을 못하는 나는, 다시금 마주한 치수와 각도를 떠올리면서, 열심히도 모양을 만들고, 이해를 하는 척 하면서, 손으로 익히고, 머리로는 정말 죽어라 외웠다.

사방 1미터 정도 되는 벽에 직사각 모양의 액자 안에 또 다른 직사각 모양의 액자를 만드는 시험 이었는 데, 그게 정말로 쉽지가 않았다.

치수에 오차가 없어야 했고, 실제로 시험장에서는 액자 모양의 사각 막대를 톱으로 직접 자르고 또 다시 그 모양을 대고 그리고 다시 만들어서 안에 작은 모양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더더욱 어렵게 다가왔다.

하지만 연습만으로 어려워서 포기한다면, 내가 여기 온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미장은 타일반에 들어가기 위해서 잠시 들렀다 가는 곳 이었지만, 이제는 미장이 재밌었고, 자격증도 도전할 만큼, 내 미장 실력은 한 달 사이에 조금은 아주 조금은 봐줄만한 성적의 것이 되어 있었다.

물론, 현장에서 나는 시다겠지만... ...

아침 8시30분에 나오던 시간이 8시가 되었고, 7시 30분이 되었다.

집에 오는 시간은 여전히 4시 30분으로 정확했지만, 남들보다 빠르게 나가서 연습을 해야 하루가 길게 느껴졌고, 집에 와서는 모눈 종이를 대고, 열심히 치수를 외우고, 그리고 다시 그리고를 반복했다.


그렇게 결전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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