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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복 Nov 27. 2021

다시 쓰는 마음 20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법

나름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나 스스로에 대한 위로법을 아니 살면서 그냥저냥 이렇게 하면 괜찮더라 하는 방법들이 몇 가지 있는 데, 그중에 가장 큰 건 < 퇴근 후 맥주> 다.     

맥주 러버로서 말하자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맥주들 중에서 국내에 들어온 맥주들을 나는 거의 다 마셔봤다고  자랑을 해본다.     

뭐, 주량은 세지 않지만, 하루에 한 두 캔 정도면, 귀가 따듯해진다.     

10년이 넘게 쓰는 갈색 밥상에 맥주 한 캔과 그날의 메뉴, 치킨, 닭발, 라면, 어묵 등을 먹고 싶은 것들 중에서 골라서, 단 하나만 올려두고, 1시간이고 2시간이고 그 시간 동안 천천히 먹는다.     

기분이 너무 안 좋을 때는 아주 매운 것과 흑맥주를 마신다. 

술집에 가면 흑맥주에 흑설탕을 두른 술도 있지만, 집에서는 그냥 기네스 흑맥을 마신다.     

술을 시작한 20살 때부터 나에겐 흑맥은 그냥 기네스다.     

기분이 그냥저냥 할 때는 요즘은 곰표 맥주와 제주 위트 에일을 마시는데, 향이 너무 좋아서 나도 모르게 벌컥벌컥 하고 마실 때가 있다.     

안주에 따라서 달라지는 경우도 있는데, 근래에 마셔본 맥주 중에 라오산 맥주를 마셨는데, 미역국 ( 아주 짜게 끓인 – 나는 싱겁게 먹는 편이다)과 함께 먹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랐다.      

처음에 라오산 맥주를 마셨을 때는, 맛이 좀 밋밋해서 별로 였는데, 짠 음식과 만나니, 단맛과 감칠맛이 감돌면서 입안에서 맥주의 풍미가 폭발했다.

그래서 짠 음식을 먹을 땐 근래에는 라오산 맥주를 마신다.     

그리고 이런 날도, 저런 날도 할 때가 있다.

기분이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닌데, 괜히 심술이 났다가 신세를 한탄했다가 나의 선택들에 대한 후회를 했다가, 다시 평정심을 찾았다가 하는...     

한 마디로 말하면, 우왕좌왕하는 날!

그런 날엔 클라우드나 한맥을 마신다. 

특히나 클라우드 황금 캔은, 진짜 시원하게 마시면, 목 끝을 쳐주는 탄산 감 때문에 정신이 번쩍 든다.     

예전엔 주로 카스나 테라를 마셨는데, 내 입맛이 그런지, 기분이 그런지 모르겠지만, 알코올 향이 ( 거의 소주의 알코올 향에 가까운) 이 심해져서, 이제는 더 이상 먹지 않게 되었다. 

이건 단순히 나의 개인 적인 의견이다!     

그 이후 마시게 된 클라우드는 나에게 천국이었는데, 클라우드와 한맥은 어디든 잘 어울린다. 떡볶이도, 치킨도, 그냥 김치와 김에도......     

하긴 맥주가 어디에도 어울리지 않은 자리는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맥주는 어디든 어울린다.

소주 러버들에게 미안하지만.

나는 소주를 26살 이후로 끊다시피 한 사람이라서 이제는 소주가 쓴 게 아니라, 맞지 않을 뿐.     

기분이 진짜 바닥을 쳐서, 저 먼 지하의 핵까지 뚫고 들어갈 때는 가끔가다 어른의 맛이라는 소주를 마셔볼까 하다가도, 맥주에 손을 뻗는다.     

그리고 맥주를 천천히 마시면서 텔레비전을 본다거나 책을 읽는다.

그러다 보면 내가 왜 오늘 하루 끝에 이 맥주를 마셔야 하는 지를 알게 된다.     

잠들기 전에 잠깐 가질 수 있는 편안한 마음을 찾고 싶어서였다.     

요즘엔 마음의 여유를 잃은 지 오래된 것 같다.

통장의 잔고가 마음의 여유인 삶을 살다 보니, 그런 것 같다.     

쫓기는 듯한 기분은 어딜 가도 떨칠 수가 없고, 무언가가 되어보려고 했는데, 아무것도 되지 않은 나의 삶이 조금 불쌍해져서 인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내내 무언가가 되지 못해서 안달 난 나의 조바심 때문 인 것 같기도 하고.     

그럴 때면 일을 해도 제대로 집중을 하지 못하고, 걸을 때도 넘어질 뻔 하기 일수다.

마스크를 끼고 있는 나의 콧구멍 아래로 거친 숨이 슉-슉- 하고 올라오기도 하고, 글을 쓰는 나의 마음에 물결이 계속 일어서, 자판도 제대로 두드리기가 어렵다.     

그러면 나는 얼른 맥주를 생각한다.

퇴근 후에 마실 맥주를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다.

아니면 맥주와 같이 마실 음식들을 만들거나 주문할 생각 때문인지도 모른다.     

주로 만들어 먹으려고 애를 쓰는데, 그런 애쓰는 마음마저도 상실되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

그럴 땐, 배달의 민족을 켜서 먹거리를 찾는다.     

맥주와 어울리는 먹거리를 찾다 보면, 어느새 근심이 사라지고 없다.     

아마도 맥주보다 음식에 더 관심을 두기 때문에 맥주는 핑계인 것처럼, 혹은 내 기분이 안 좋다는, 우울하다는 핑계를 대고 다른 걸 찾으려는 나의 꽁한 마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일단은 마시게 되면 생각을 고이 접어서, 맥주의 탄산 아래 숨긴다.

그리고 꿀꺽꿀꺽 마셔버린다.     

탄산과 함께 목구멍을 타고, 명치끝으로 내려온 고민들은 스르르 하고 녹는다.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는 맥주 한 캔에 내 삶이 위로받는다는 아주 작은 위로법, 이 위로법이 언제까지고 나에게 먹힐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평생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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