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6. 실습: 초록의 요릿집
친구가 오픈하려는 매장의 타일을 깔아 달라는 부탁을 한 건,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는데, 친구는 나보다 2 기수 위에 선배로, 직업학교에서 먼저 타일 자격증을 따고 본업인 요리사로서 다시 시작을 하려는 찰나였다.
타일 자격증도 나오지 않은, 합격 한 건지 안 한 건지, 못한 건지도 모를 내가 18평짜리 가게의 타일을 깔아야 하다니!!
나는 그날 뜬 눈으로 밤을 새우다시피 했는 데, 그것과 다르게 당일의 나의 정신은 또렷하기만 했다. 친구네 매장은 정말 쌩- 말 그대로 날 것의 상태 그대로였다.
실습의 멤버는 나를 포함해서 총 5명.
가장 어린 나를 포함해서 평균 연령 48세인 우리가 처음으로 실습에 임하게 된 곳이, 쌩 날것의 매장이라니!! 감격을 해야 할지, 고마워해야 할지, 아니면 슬퍼해야 할지...
처음부터 한 일은 일단, 매장의 주방을 만드는 일.
나는 거기서부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 선생님들은 대체 못하는 뭐예요?”
진짜였다.
아무것도 없던 곳에 수도 배수관 시설부터 시작해서 깔아야 하는 작업이었고, 조적과 미장도 해야 하는 일. 다행히, 나는 미장을 하면서 어깨너머로 조적을 배웠었고, 다행히, 50대와 60대까지 계셨던 우리의 실습 어벤저스의 선생님들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배워온 느낌으로 주방 바닥의 조적과 미장을 아주 멋지게 설계를 하면서 나아가셨다.
이런 게 짬밥인가?
문득 나는 궁금했다.
아무리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집안 곳곳을 수리하셨다고 해도, 이 정도 수준의, 다른 이의 매장에 와서 공사를 하는 일인데도, 선생님들은 반짝반짝 빛나셨다.
우리의 어벤져서 어셈블은 그때가 시작이었다.
일단 주방이 들어설 자리를 위치를 선점하고 먹물을 튕기고, 시멘트와 흙을 나르고, 거기에 벽돌까지... 쌀 20킬로는 너무 가벼운 것이었다.
시멘트 40킬로를 들어본 적이 있는 가?
이 무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지금 말고 조금 있다가 이야기하는 게 낫다. 나는 그 어느 쪽이든, 이제 40킬로의 무게쯤이야 거뜬한 게 드니까!!
4층짜리 건물에 1층, 그 어중간한 한편에 친구는 자신만의 매장을 만들기로 했고, 원래가 요리가 전공이었던 친구는 어떻게 해서든 공사 비용을 아껴보려 학원생들인 우리의 힘을 빌려야 했지만, 우리는 그냥 단순히, 학원생에 머무를 순 없었다.
“ 실력은 아마추어지만, 마음은 프로로 해야 하는 거야. 알지?”
나에게 가장 힘을 북돋아 주었던, 뽀글 머리에 작은 키, 안경을 쓰신 오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늘 긍정적인 영향을 주셨던 분인데, 시험 보기 전에도 늘 나에게 힘내라며 초코파이며, 커피를 챙겨주셨고, 60이 거의 다 된 나이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아침 일찍 학원에 오셨고, 누구보다 열심히 타일을 붙이셨던 분. 그야말로, 어벤저스 팀의 캡틴 아메리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분이셨다!
아버지가 없는 나에게, 학원에 계신 모든 분들은 아버지나 다름없었고, 명절을 앞둔 어느 날, 나에게 또 한 분의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해주셨던 게 기억이 난다.
“ 추석 동안 아빠 얼굴 잘 기억해놔, 딸”
나는 하마터면 울뻔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아니었지만, 나는 태어나서, 남자 어른에게, 그것도 아버지 또래에게 그런 소리를 들은 건 처음이었다. 온 세상을 통 틀어서!
그래서 나에게 타일과 미장 반의 선생님들은 모두 아버지다.
그분들의 이런 다정하고 따듯한 말 한마디가 없었다면, 아마 그 험하다는 막노동 현장의 실습판에서 내가 과연 1년을 버틸 수 있었을까?를 나는 내내 스스로 자문하곤 한다.
어쩌면 그동안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던 내가 이나마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좀 더 긍정적으로 변할 수 있었던 건, 그분들의 이해관계없는 맑은 마음의 칭찬과 의도 없는 따듯한 말 한마디 때문이었을 거다.
나의 세상은 직업학교를 다니기 전과 다니기 후로 나뉘기까지 하니 말이다.
그래서 누군가 아프고 힘들고 걱정스럽고 험한 일을 하려고 망설일 때 나는 과감하게 말해 줄 수 있다.
“ 할 수 있어요. 할 수 없었으면 애초에 생각도 하지 못했을 거예요.”라고.
진짜다. 그 살아있는 증인이 바로 나니까.
여전히 나는 지질한 삶을 살지만, 내가 똑바로 내 두 다리로 단단하게 걷고, 다른 이의 시선에 졸지 않고 버티는 건, 그때의 경험이 밑바탕이 되어서 나를 스스로의 힘으로 걷게 해 준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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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땅에 먹물 줄을 튕기고 나면, 이제 그 위에 벽돌을 쌓기 시작하고, 그리고 그 벽돌 안에 흙을 붓는다.
후들후들...
딱 그 표현이 적당한 게, 이상하게 하루에 14시간을 일했는 데, 일이 줄어드는 느낌이 들진 않고, 어깨와 허리가 아프고, 심지어 머리가 띵- 하기까지 한 것.
그게 바로 맨 땅에 헤딩이라고 하는 것인가?!!
아침 8시부터 시작해서 밤 10시까지 나는 점심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쉼 없이 친구네 매장에서 살다시피 우리 어벤저스 팀들과 함께 하나씩 차분히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그때의 시간이 정말로 기억에 남는 건, 온몸에서 나던 파스 냄새도 민트향처럼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드는 매력으로 바꾸어 버리기까지 하는 기대감 때문 일 것이다.
주방을 만들기 위해서 조적을 하고, 바닥에 흙을 부어서 미장을 하고, 물길을 만들어 주어서 타일을 붙이고, 다시 페인트 칠을 하고, 또 밖에서는 그와 비슷한 일련의 과정들을 되풀이하면서 나는 그 일이 꼭 나의 성장 모습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모든 게 전문가들이 하는 일에 비하면 허접하고, 시간도 2배 아니 서너 배는 더 많이 들고, 그만큼 힘도 들고,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나는 신나게 뛰어다녔다.
재료를 사러 근처 시장의 철물점에 갈 때도, 또래가 입는 원피스나 청바지가 아닌 선풍기 바지를 입으며 식당에 갈 때도, 온몸에서 하루 종일 시멘트 냄새와 땀냄새가 범벅이어도, 그냥 좋았다.
아무 생각 없이 내가 하는 일만이 전부였던 시간.
아무 생각 없이, 고민 없이, 흙을 날라야 했던 진짜 육체의 시간.
그런 시간을 건너다보면, 가장 큰 고민도, 힘듦도 어느 내 사라진다.
근심이나 걱정거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금전, 건강, 애정, 이성, 가족, 친구 간의 문제들도 해결할 수 있는 부분들은 모두 우리가 걱정할 필요가 없는 부분이고, 해결할 수 없는 상대방의 심리에 관한 것들은 우리가 걱정한다고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기에 그것 또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런 생각에 도달한 나는 그동안 내가 고통스러웠던 시간들에 대해서 곰곰 생각을 해보았다.
모든 문제들이 금전적인 부분과 가족에 관한 부분이었는 데, 모두 다 해결이 되는 부분들이었고, 해결이 되지 않는 다른 부분들은 그대로 두는 게 마음이 편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사실 수양이 조금 필요하다.
당장에 이렇게 해야지!라고 마음먹는 다고 해도, 10초만 지나면 초조하고 걱정들이 나를 잠식하는 시간들로 변하기는 매한가지 이기 때문에, 그보다 더 오래 걸리는 그 인내의 시간조차도 우리는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실습을 하면서 그것들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실습이 끝나고 돌아오는 버스 안, 자리에 한편에 앉아서 깜깜한 하늘을 보면서 이 시간이 끝나면 어떤 시간이 돌아올까를 고민한 적이 있다.
그런데 고민은 그 버스 안에서만 하기로 하고, 버스에서 내리면, 나는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을 기대감에 현관문을 연다. 그리고 문을 열면, 엄마는 언제나 따듯하고 가짓수는 별거 없지만 맛있는 음식을 차려주었다.
밥을 먹고, 다음 날 또 가서 어제 한 일을 다시 이어하고, 다른 날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해나가면서, 친구네 매장은 드디어 2달 반 만에 완성이 되었다.
초록의 요릿집.
정말 상권에서 먼, 요리 하나만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 그리고 인테리어로 부수적인 효과를 노려야 하는 곳이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 초록의 요릿집을 기억한다.
온통 초록색으로 빛나던 친구의 요릿집은 지금은 다른 누군가의 소유가 되었지만, 2년 동안 친구는 그곳에서 열심히 지지고 볶고 자신만의 꿈을 그려나갔고, 친구의 요릿집이 완성된 후, 나는 또 다른 실습의 현장으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또 다른 실습의 현장에서 나는 타일 시험 합격 자격증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