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덜 여문 나’에 심취해 있던 날들을 떠올리면 부끄럽기만 하다. 이십 대 초반의 나는 나 자신이 누구보다 역량을 지녔다고, 대기만성형 인간이라고 믿었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성취가 따라올 것이라고 믿었다. 게임처럼 하나의 단계를 마무리하면 다음 단계가 펼쳐져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나를 내 세계의 밖으로 꺼내 준 사람이 있다. 글을 무척이나 잘 쓰던 그 사람은 내 짤막한 글을 읽고 내게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려보라고 권했다.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의 응원. 나는 그것이 일종의 신호라고 생각했다. 드디어 기다리던 때가 온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기대감으로, 호기롭게 세상 밖으로 나선 나는 그것이 그토록 미뤄왔던 시작에 불과함을 깨닫고야 말았다. ‘가능성을 지닌 나’에 취해서 한바탕 꿈속에서만 앓고 있던 나는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가장 오랜 시간 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물음은 ‘이미 글 쓰는 분들이 많은데 굳이 내가 왜 글을 써야 하는가’였다.
어렸을 땐 그저 좋아하니까 썼고, 그다음엔 내 상처를 똑바로 알고 치유하기 위해서 썼다. 내가 원하듯 글로 누군가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다른 답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답은 나에게서 찾아야 했다. 나를 아는 일이 선행되어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나의 부족함을 여실히 느낄수록 나아갈 길이 선명해졌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다시 정리했다. 버킷리스트와 계획의 사이 어디쯤 위치할 법한 항목을 만들었다.
그리고 나서야 현실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처음에는 계획을 세우는 일이 하루 일과에 녹아들지 못해서 따로 알람을 맞춰놓을 정도로 서툴렀지만, 이제는 제법 다양한 주제의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됐다. 주변의 계획적인 사람에게 조언도 구했다. 현실적인 계획을 세우고, 하루 밀린 일은 다음 날에 꼭 해야 하며, 너무 부담을 갖지는 않아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하루를 잘 살았는지 점검하는 테스트보다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여기면 좋다는 의견이었다.
이렇게 계획적인 생활 습관을 기른 것이 최근의 가장 큰 변화다. 앞으로도 왜곡 없이 투명한 나의 모습 그대로를 보고, 여러 가지 변화를 시도할 것이다. 내 부족함을 바로 알고 빈 부분을 채우려 노력하고 있기에, 나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는 아마 여러 가지 주제로 공유할 수 있을 듯하다.
브런치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님들의 계정을 둘러보다 보면 시간의 밀도가 남다른 분들을 발견하곤 한다. 분명한 목표를 바탕으로 꿈꾸는 모습이 되어가는 분들을 보며 자극을 얻는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 더 좋은 글을 쓰고, 이렇게 잘 마련된 공간에서 이렇게 소소하지만 확신에 찬 선언을 하며, 또 한 번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