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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열음 Jan 15. 2022

내일은 또 뭐 같은 일이 있겠지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의 전부일 것처럼 굴 때가 있다. 낭만적인 의미는 아니고. 지금 다니는 학교나 직장, 현재 알고 지내는 사람 혹은 눈앞의 상황이 내 인생의 전부일 것 같을 때. 마음이 코너에 몰려 이다음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때 말이다. 그럴 때는 누군가 내게 경주마의 눈가리개를 씌워놓은 것처럼 “지금 이 순간” 밖에 보지 못했다. 먼 미래는 생각할 여유가 없었고, 가까운 미래는 무섭기만 했다.


무서웠다.


아침이 오고, 내일이 오는 게 무서웠다. 잠드는 게 끔찍한 밤을 보내며 “잠 못 드는 밤”이 아니라 “잠 미루는 밤”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지금의 나는 그 당시의 내가 “내일”이 무서워 잠을 미뤘다는 것을 알지만 그 당시의 나는 그조차 몰랐다. 내일이 싫다는 것도, 내일이 왜 싫은 지도.


 여름이 물러난 자리에 가을이 애매하게 한발 걸치고 있었던 어느 일요일 오후에, 그때서야 겨우 마음먹고 몸을 움직여 온몸을 구석구석 씻고 나와 형상기억합금처럼 다시 침대 위에 몸을 누이며 생각했다.


내일 출근하면 또 뭐 같은 일이 있겠지.


당시 내 세계는 회사가 전부였으므로, 생각만으로 숨이 막히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애써 대수롭지 않은 척 넘기기 위해서 스스로 위로할 말을 찾고 있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근데, 뭐. 내년에도 거기에 있을 건 아니잖아.


순간 멍-해졌다.

나는 휴일이라고 집에 누워있을 때조차 회사 사무실 내 자리, 내 책상의 커다란 모니터 앞에 앉아있었구나.

햇빛이 들어와 노랗게 빛나는 천장을 보는데 숨이 탁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천천히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마찬가지로 천천히 길게 내쉬었다.


내년이 있고, 내후년이 있고, 또 그다음 해가 있다.

그때는 지금 이 회사를 생각조차 않을지 모른다.

어쩌면 “아, 거기. 진짜 최악이었지.” 하고 고개를 내저은 다음에 “그래서 뭐 먹을래?”라고 말할 정도로 새까맣게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커다란 모니터 두 대가 시야를 가리는 책상, 그곳이 끝이 아니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이 많고, 그곳은 그저 잠시 스쳐 지나가는 것에 불과하다.

마음이 한결 나아지는 것 같았다.


물론 “마음이 한결 나아지는 것 같았다”로 끝나지는 않았다. 나는 이후에도 출근이 끔찍했고, 사무실이 싫었으며, 밤에 잠들고 싶지 않아 발버둥 쳤다. 이직을 준비해야 되는데 도저히 자소서 쓸 기력이 없다고 울면서 침대 위를 기어 다니기도 했다.

그래도.

여전히 괴롭고 끔찍한 기분에 휩싸이지만 그래도.

적어도 그 순간에 숨통을 틔워주는 말은 알게 됐다.


그곳은 내 끝이 아니다.

내게는 다음이 있다.


 숨 돌리는 연습을 한다. 자꾸만 눈을 가리고 달려나가거나 쭈그려 앉을 때 손을 내리고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천천히 심호흡한다. 지금이 전부가 아니라고, 내게는 다음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정신없이 울며불며 기어가다가도 잠시 멈춰서 그렇게 되뇌이고 나면 신기하게도 전보다 마음이 나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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