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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열음 Feb 19. 2022

두 묶음과 여섯 봉지


 요 며칠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던 택배가 있었다. 굿즈 구매 당시 랜덤으로 받은 굿즈를 차애 굿즈로 교환한 택배였다. 얼마나 간절했냐면 C편의점 택배 카톡이 들어오자마자 내용도 보지 않고 겉옷을 걸쳐 입으며 집밖으로 뛰쳐나올 정도였다. C편의점에 도착한 직후 나는 곧바로 카운터로 향하지 않고 초콜릿과 젤리가 가득한 매대 앞에 섰다. C편의점까지 오는 일이 잘 없어서 나온 김에 간식거리를 조금 사서 들어갈 생각이었다. 시간을 들여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초코칩 3개와 초코바 3개를 양손에 들고 카운터로 다가갔다. 간식거리를 내려놓고 카드와 핸드폰을 꺼냈다. 카톡을 켜서 C편의점 택배의 대화방을 눌렀다. 택배 있어요, 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택배가 없다. 있었는데, 없어진 거예요? 아니요, 그냥 없어요… 작은 해명을 덧붙이자면 C편의점 택배를 쓴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보통 G편의점 택배를 썼다. 둘은 택배 알림 문자를 보내주는 방식이 달랐고, 나는 그걸 몰랐다. 내게 온 카톡은 내가 굿즈 교환하기로 한 분께 보낸 택배가 무사히 접수되어 이동 중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내용의 카톡이었다. 나는 핸드폰을 얌전히 집어넣고 카드단말기에 카드를 꽂았다. 안녕히 계세요, 씁쓸한 인사를 건네고 양손에 든 초코 과자를 겉옷 주머니에 쑤셔 넣으면서 편의점 밖으로 나왔다. 차애 굿즈에 눈이 멀어서 그냥 간식 사러 나온 사람이 됐다.

허탈한 마음을 안고 골목을 빠져나가 집으로 곧장 향하던 걸음이 멈췄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슈퍼에 들러서 허니버터칩도 사 가야겠다. 순식간에 허탈한 기분이 증발했다. 마침 집 근처 마트에서는 허니버터칩을 세 봉지씩 묶어서 싸게 팔고 있었다. (늘 그렇게 판다.) 며칠 전 한 묶음을 집에 사다 놓았더니 사 온 당일에 아빠와 언니가 각각 한 봉지씩 가져가서 하루 만에 다 사라졌다. 그때의 경험을 양분으로 삼아 이번에는 두 묶음을 사 갈 생각이었다. 제법 비장한 각오를 안고 슈퍼에 들어섰다. 슈퍼에만 가면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한눈을 팔기 때문에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과자 할인 코너로 직진했다. 라면 코너의 유혹을 간신히 뿌리치고 허니버터칩 두 묶음을 양팔에 안았다. 모든 계산대에 손님이 한 팀씩 있어서 바로 코앞의 계산대에 허니버터칩 두 묶음을 올려놨다. 그리고 가만히 내 순서를 기다리는데, 아래쪽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내려보니 10살, 혹은 그 아래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계산대 위 허니버터칩 두 묶음을 바라보다 나를 힐끗 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작은 마스크 바로 위의 까만 눈동자와 옅은 눈썹이 굉장히 심각한 빛을 띠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그는 나를 올려보며 이렇게 말했다.


너무 많아요.


그의 표정이 몹시 심각했기 때문에 나는 멍청히 그를 바라보다가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어, 엉? 내 반응에 그는 전보다 강한 어조로 너무 많아요! 라고 말했다. 캐셔분의 웃음소리가 배경 음악으로 깔리는 사이 그는 고사리같이 작은 검지로 허니버터칩 봉지를 하나하나 가리키며 하나, 둘, 셋하고 세기 시작했다. 나는 셋을 하나로 묶어 두 개라고 셌는데,


여섯!


그치. 실은 여섯 봉지였지. 여섯까지 센 그는 몹시 놀란 것 같았다. 그는 다시 나를 올려봤다. 여전히 심각했지만 호기심이 잔뜩 묻어나는 말간 눈이었다. 내가 그를 바라보자 그가 내게 말했다.


이건 너무 많아요.


그는 잠시 말을 고르는 듯 한 박자 쉰 다음 이렇게 물었다.


왜 이렇게 많이 사는 거예요?


차마 그 말간 눈에 대고 이틀 만에 다 없어질 수도 있는 양이기 때문에 많지 않다고 설명할 수 없어서 다른 답을 택했다.


어어, 그게,  과자를 - 좋아해서 이만-  가는 거예요.


과자가 실제로 몇 봉지인지 직접 세어가며 논리적으로 설명해준 그에게 내 감정적인 답변은 크게 와닿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조금 심각하고 또 조금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올려봤다. 그는 마치 그래도 너무 많아요, 라고 말하고 싶은 듯했다. 그사이 달랑 과자만 산 내 계산이 끝났다. 나는 캐셔분과 그에게 인사를 건네고 슈퍼를 나왔다. 양팔에 두 묶음의 허니버터칩을 끼고 걷다 보니 웃음이 샜다. 마스크 위로 심각한 분위기를 풍기던 옅은 눈썹과 눈 깜빡할 사이에 사라질 과자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에겐 너무 많은 여섯 봉지의 허니버터칩은 우리 집에서 사흘 내로 사라질 것이다. 전자는 귀엽고, 후자는 귀엽지 않아서 웃음이 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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