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아침, 옷을 두껍게 껴입고 집을 나섰다. 자격증 시험 때문이었다. 진작 따뒀어야 했는데, 하나 마나 한 자책을 털어내면서 버스에 올라탔다. 오전의 버스는 한산했다. 크리스마스 당일인데도 그랬다. 나는 빈 좌석에 앉아 곧바로 핸드폰을 꺼냈다. 듣고 싶은 노래가 있었다. 세븐틴의 “Power of love”다. 지난 11월에 발매된 일본 앨범의 타이틀곡인데, 세븐틴이 크리스마스 자정에 맞춰 선물처럼 한국어 버전을 유튜브에 올려줬다. 영상이 올라온 당시엔 자격증 시험을 마지막으로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가사를 제대로 곱씹으면서 듣는 건 처음이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영상을 재생했다. 언어는 대체 뭘까. 번역된 가사를 읽어본 적이 있는데도 실제로 내게 와닿는 언어로 노래를 들으니 기분이 색달랐다. 솔직하게 말하면 한산한 버스 뒤편에서 혼자 눈물을 찔끔 삼켰을 만큼 감동했다. 듣고, 또 들어도 좋아서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듣다가 후렴의 가사 때문에 코끝이 시큰해졌다.
추운 겨울이 지날 때쯤에 우린 비로소 알게 되겠죠
차가움 속에서도 피어나는 마음의 온기와 가녀린 우릴 지켜준 것은
쌓이는 쌓이는 쌓이는 마음을 소중히 모은 사랑의 힘이죠
20대 초반의 나는 사랑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때는 모든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지루했고, 진부했다. 사랑이 뭔지도 모르면서 그게 뭐 그렇게까지 중요한가 싶었다.
어쩌면 사랑은 확대 해석되고 있는 건지도 몰라.
끊이지 않고 쏟아져 나오는 사랑 이야기가 그 증거 같았다. 사랑 부정기는 2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끝을 맞이했다. 그즈음에야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랑이 존재하는지 알게 됐다. 가족이나 친구와 주고받았던 애정은 물론, 누군가 따스한 선행을 베푼 소식에 감동하게 되는 것도 모두 사랑이었다. 깨닫지 못하고 스쳐 지나왔을 뿐, 사랑은 내가 지나온 모든 곳에 있었는데. 나는 사랑을 아주 좁게 봤다. 도처에 깔린 사랑을 모르고 오만하게 굴었다. 사랑은 진부하다며 코웃음 치던 내가 오늘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것도 내 마음속에 쌓이고 쌓여 나를 단단하게 지탱해준 사랑의 힘 덕분이었을 텐데. 서로를 돕고, 걱정하고, 기억하고, 챙기는 그 모두를 사랑이라 부르고, 그 모두가 넓고 얇게 쌓여서 내가 일상을 버틸 수 있게 나를 단단히 받쳐주고 있었다. “쌓이는 마음을 소중히 모은 사랑의 힘이죠”라는 가사를 듣고 코끝이 매워졌던 건 그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