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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열음 Mar 05. 2022

생각한 순간에 또 생각하고


 하고 싶은 일이 많다. 해야 된다고 정해둔 일도 많다. 그 모두를 정리해서 계획을 세웠다. 보통 내 하루는 그 계획을 바탕으로 앉아서 쉴 틈도 없이 바쁘게 흘러간다. 회사에 다닐 때보다 더 바쁘다. 그런데 가끔 - 정확히 따지면 한 달의 반 혹은 1/3의 이상 정도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고인 채로 시간만 흘려보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하고 싶은 게 많다고 노래를 부르던 마음이 전부 가짜 같다. 진심으로 하고 싶거나 해야 되는 일은 애초부터 없었고, 어느 곳으로도 향하지 않고 고여있는 것이 죄스러워서 억지로 꾸며낸 것 같다. 본래의 나는 어딘가를 향해 반드시 나아가야 한다는 강박 없이 한곳에 고여 지내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 감정에 이런 표현이 붙는다. 내가 뭘 원하는지 잘 모른다. 내 주변 사람에게 나에 관해 물으면 김열음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사는 사람처럼 보인다는 대답을 들을 것 같은데, 정작 나는 매 순간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게 뭔지 의심하면서 헤매고 있다. 가장 가까운 예로, 나는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는 건지 억지로 붙들고 있는 것에 불과한 건지 잘 모른다. 계속 쓰고 있지만 늘 의심하고 있다. 글이 좋아서 쓰는 건지,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계속 쓰는 건지 잘 모르겠다. 계획을 세우는 내가 진심인 건지, 계획을 부수는 내가 진심인 건지 알지 못해도 계획을 세우고 부수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내 진심을 의심하면서 글을 쓰고 멈추기를 반복하고 있다. 어느 쪽이 맞는지 알지 못한 채로 갈팡질팡하면서 오늘 일기를 쓰고, 소설은 안 쓰고, 누운 채로 하루를 버렸다가 며칠 후에는 포트폴리오에 추가할 작업물을 반쯤 만들고, 다음 날에 자소서를 엎고 있다. 한참 엎고 의심하고 다시 쓰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어느 쪽이 맞는 건지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이번에는 진심이냐, 아니냐, 따져 묻는 행위에 대한 의심이 쓸모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이때쯤이면 애초에 어느 쪽이 맞는지 대답해줄 수 있는 존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그제야 누가 있는지 알 수 없는 동굴에 대고 소리쳐 묻는 것을 관둔다. 어느 쪽이 진짜고, 진심이던 내가 글을 쓰고 계획을 세울 수 있는 동력이 되어준다면 그걸로 됐다고 마무리 짓는다,

다시.

이렇게 생각한 순간에 또 생각한다. 동력이 되어준다면 그걸로 됐다 - 라는 건 계획을 세우는 내게 기우는 결론이니까, 계획을 세워서 의욕적으로 사는 쪽이 진심이라는 증거 아닌가? 그 순간 동굴 깊숙이 숨어있던 무언가 슬그머니 기어 나와 이제 막 또 다른 생각에 잠기려는 내 뒤통수를 후려친다. 정신이 번쩍 든다. 돌아본 자리에는 아무도 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동굴을 기웃거려보지만, 이전과 같이 어떤 소리도 나지 않는다. 뒤통수의 쓰린 감각마저 가짜 같다고 생각하다가 문득,


이제

진짜로

그만하고


그냥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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