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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열음 Mar 12. 2022

그럼에도 살아가자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를 봤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드라이브 마이 카〉를 원작으로  영화다. 나는 원래 소설을 기반으로  영화를   원작을 먼저 찾아보는 편이다. 이번에도 영화를 보러 가기 전날 저녁에 꾸역꾸역 원작을 읽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소설보다 영화가 좋다. 나는 소설과 영화를 비교해보고 싶은 마음에 소설을 읽고 갔지만 굳이 읽고 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영화가 훨씬 좋았다. 오히려 영화관을 나서면서 이번에는 소설을 읽지 않은 상태로 보고, 이 영화를 두번째로 보기 전에 소설을 읽을 걸, 하고 슬며시 후회했을 정도다.


 영화에서 뭐가 좋았냐면, 원작의 이야기가 확장되어 나아가는 방향이 좋았다. 원작에서는 가후쿠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엔 또 다른 인물인 미사키는 깊게 다뤄지지 않는다. 반면 영화에서는 미사키의 이야기가 원작보다 훨씬 깊게 나온다. 영화 초반에서 중반까지의 주인공이 가후쿠 한 사람이라면, 후반부의 주인공은 미사키까지 두 사람이라는 게 분명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미사키의 결말이 아주, 아주 좋았다.

가후쿠가 아내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방식도 원작과 다르다. 나는 영화  가후쿠가 택한 방식이 훨씬 좋았다. 미사키의 고향집이 있었던 자리 앞에서 가후쿠는 이전에 상상할  없었던 모습으로 그때 그가 어떻게 했어야 했는지, 아내에 대한 그의 생각은 어떤지 얘기한다. 그리고 이후에 이렇게 말한다. 살아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을 기억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미사키에게 괜찮을 거라고, 틀림없이 괜찮을 거라고 되뇌인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마음속에  자리를 내어준 무언가를 잃거나 말을 잃을 정도로 끔찍한 상처를 받는다. 그리고  자리를 살펴보고 상처를 보듬어볼 새도 없이 시간이 흘러간다.  의지와 무관하게 “그럼에도 살아가는 이다. 두려움을 넘어선 막막함을 안고 살아가는  어떤 것인지, 얼마의 시간이 걸려야 이전처럼 따스한 햇살과 불어오는 바람을 만끽할  있는지   없다. 그럼에도 남겨진 이들은 살아간다. 나는 “그럼에도 살아가는이야기에, 사람에 마음이 저민다. 마음이 저미는 이유는 아직도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저 마음이 저민다고 밖에. 그를 대신해서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이 무엇인지 골라보면 아주 오래 고민하다가  장면을 꼽을 것이다. 내가 아직 말로 다듬어내지 못하는 이유가  장면 속에 있기 때문이다.


 영화 후반부에 음소거된 장면이 나온다. 미사키와 가후쿠가 미사키의 고향으로 향하던 중 눈 덮인 산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갓길에 세워둔 차가 잠시 멈췄다가 다시 출발하는 순간까지 영화는 음소거된다. 영화를 자주 보는 편이 아니라서 영화관 방문 자체가 드물다. 음소거된 장면이 나오는 영화는 분명 또 있을 테지만 나는 이때 처음으로 상영관 전체가 적막에 잠기는 경험을 했다. 화면에 눈이 가득해서 상영관 내부가 제법 환했다. 덕분에 객석을 잠시 살필 수 있었는데, 그 자리의 모두가 하나 같이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하고 영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기침 소리라도 한 번 날 법했는데 상영관의 모두가 함께 적막을 만들고 있었다. 그 순간 차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영화가 소리를 되찾고, 상영관 내부의 공기가 확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정말 신기했다. 그건 분명 영화관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영화는 이런 경험을 주는구나. 그때 영화가 조금 좋아졌다. 상영 시간이 몹시 길어서 허리와 엉덩이가 저리긴 했지만 그럭저럭 참을만했다.

영화관 건물을 나와 한낮의 햇살을 맞으면서 조금 전과 같은 느낌을 또 받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올해는 영화를 조금은 즐길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다음엔 어떤 영화를 볼까.




*영화관에 나온 직후 기억나는대로 메모한 내용이다. 정확한 대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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