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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열음 Mar 26. 2022

그림을 그리자



     마음이 덜그럭대며 소음을 낸다. 모든 일이 최악의 사건을 위해 준비된 씨앗 같고, 모든 말이 가시처럼 박혀 빠지지 않는다. 마음이 소란하게 덜그럭거린다. 어디가 잘못된 건지, 혹은 없는 잘못을 파헤치고 있는  아닌지 마음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모든 소음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진다. 간신히 펼친 이부자리에 누워서 생각한다. 책을 읽을까. 아니면 넷플릭스를 켤까. 이야기 속으로 도망칠 궁리를 하다가 관둔다. 이야기를 읽고 이해하는 것마저 버겁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이미 아주 오랫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지냈기 때문이다. 누운  눈만 깜빡이다가 겨우 하나 떠올린다. 그림을 그리자.


     그림 그리는 게 좋다. 못 그리지만, 예전부터 좋아한다. 그렇지만 그림을 못 그리는 나를 미워하지 않게 된 건 오래되지 않았다. 그림을 언제부터 그렸더라. 아마 아주 어릴 적부터 그렸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건 7살이다. 그 무렵 나는 모종의 이유로 다니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고모와 고모부께서 운영하시는 미술 학원에 다녔다. 그때는 그림을 좋아했던가? 잘 모르겠다. 당일 수업에서 그림 하나를 완성해야 학원 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내게 그림은 숙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좋아하지 않았지만, 숙제라고 여긴 것 치고는 다행히 싫어하지도 않았다.

그림을 정말로 좋아하게 된 건 중학생 때다. 하지만 단순히 좋아한다고 말하기에 이때는 좀 복잡했다. 그림 그리는 게 좋았지만 잘 그리고 싶었던 나머지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는 내가 아주 아주 미웠다. 좋아하는 만화가 있었다. 내가 몹시도 아끼던 캐릭터를 잘 그리고 싶었다. 쉬는 시간마다 연습장을 꺼내서 그림을 그렸는데 뜻대로 그리지 못했다. 그때의 나도 알고 있었겠지만 그건 당연했다. 나는 늘 내가 그리고 싶은 구도로만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다양한 자세를 시도해보지 않았다. 늘 그리던 자세에 늘 그리던 방식으로만 그렸다. 실력이 늘 리가 없었다. 그러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만화에 대한 애정이 식었다. 그리고 싶은 대상이 사라지면서 자연히 그림을 그리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나중에 대학에 가서 글도 쓰고, 그림도 그려야지. 택도 없는 소리였다. 그림도 글도 잊은 것처럼 지냈다.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된 건 내 생에 가장 긴 백수 기간을 보내고 있을 때다. 유튜브에서 글을 쓸 동안 틀어놓을 영상을 찾다가 이연님의 영상을 보게 됐다. 백지 위를 유려하게 가로지르는 선을 쫓다 보면 어느새 눈빛이 근사한 인물이 나타났다. 마법 같았다. 채널을 구독했고, 크로키를 알게 됐다. 나는 몇 년 만에 글쓰기가 아니라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연습장을 펼쳤다.


     텅 빈 종이를 채우는 건 무섭다. 어떻게 채워야 할지 몰라서 무섭고, 처음 긋는 선부터 삐끗해서 그림을 망치게 될까 봐 무섭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안다. 그리고 싶은 대상을 앞에 놓고 연필을 든 다음 텅 비어서 막막하게 느껴졌던 백지 위로 일단 선을 긋는다. 선을 긋고 나면 백지는 더 이상 백지가 아니다. 긴장했던 숨을 놓으며 이어서 손을 움직인다. 그렇게 하나의 선을 시작으로 조금씩 천천히 종이를 채워나간다. 잘 그리지 않아도 된다. 그리는 대상과 연필에서 시작되는 선에 집중한다. 선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멀리 뻗어 나가거나 내 의도와 다른 곳에서 시작되고 끝난다. 그래도 계속 그린다. 눈앞의 대상에 오롯이 집중한다. 집중하는 순간에는 대상을 쫓는 데 온 신경이 쏠려서 그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매 순간 시끄럽던 마음이 적막에 잠기고 딱 하나, 눈앞의 대상만이 남는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이 순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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