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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열음 May 07. 2022

글 쓰고 싶다는 말


     스물여섯의 시작에 맞춰 강릉에  적이 있다. 정동진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서였다. 길눈이 어둡고 성격이 소심해서 혼자서는 엄두도   일정이었는데 고맙게도 깡이 먼저 제안해줬다. 우리는 칼날처럼 매서운 바람에 맞서 강릉을 돌아다녔다. 여행  무렵에 시간이 남아서 경포해변에 들렸는데, 그곳에서 느린 우체통을 발견했다. 안내문에는 비치해둔 엽서를 작성해서 우체통에 넣으면 1 후에 보내준다고 적혀있었다. 마침 내게 볼펜이   자루 있어서 우리는 번갈아 가면서 서로에게 엽서를 썼다. 그리고 얼마 전에 방을 정리하다가 그때의 엽서를 발견했다. 엽서에는 스물여섯의 깡이 스물일곱의 내게 글쓰기를 통해 성과를 거둘  있을 거라고 응원해주고 있었다. 그를 보고 있으려니 - 마음이 쿡쿡 쑤셨다. 깡의 엽서에 담긴 응원에 부끄럽지 않을 만큼 열심히, 성실히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생각해도 글을   쓴다. 글로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최대한  전달할  있게 매일 연습해도 모자라다. 그런데 나는  쓰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면서 글을 쓰지 않았다. 써야 하는데-라고 생각만 했을 뿐이다.

글 쓰고 싶다-라고 말하면서 정작 글을 쓰지 않는 이유가 뭔지 생각해봤다. 그런 이유를 생각해볼 시간에 글을 쓰는 게 맞지만, 핑계만 대면서 글쓰기를 계속 미루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이유를 알아내서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마음”을 정리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이유를 알아내기는커녕 추측도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게으른 완벽주의자”라는 말을 접하게 됐다.


완벽할 수 없다면 시작조차 하지 않겠다.


그날은 부서져 흩날리는 뼛조각을 주워 다시 조립해야 했다.




     글쓰기를 미루는 이유를 알게 되고 나서 다시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글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고 나를 세뇌하기로 했다. 그를 위해서 나는 내가 쓴 글을 직접 마주할 필요가 있었다. 억지로라도 써서 세상에 내놓기로 결심했다. 다른 이에 대해 글을 쓰기엔 심신이 지친 상태였기 때문에 내 일상에 대해 써보기로 했다. 그렇게 한 편씩 에세이를 썼고, 재작년 연말부터 한 달에 한 편에서 두 편 정도의 글을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다. 한 달에 한 편에서 두 편의 글을 올리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연재는 실상 벼락치기로 이어졌다. 소재를 잡지 못해 헤매다가 겨우 하나를 잡고 내가 정해놓은 마감 직전에 완성하는 식이었다. 미리 쓰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다. 벼락치기가 몸에 밴 탓에 쉽지 않았다. 결국 이때의 연재는 작년 7월 15일을 마지막으로 중단됐다. 대신에 7월 말부터 짧은 소설을 연재해보기로 했다. 오랜만에 소설을 쓴다는 생각에 들떠서 설정을 짰고, 1편이 완성된 시점에 바로 연재에 들어갔다. 비축분도 없이 시작된 연재이니 당연한 전개지만 이때도 벼락치기 연재였다. 마감일은 다가오고, 글은 쓰지 않은 상태에, 연재를 더 해갈수록 소설이 재미없어졌다. 시작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사랑스러운 아이들이었는데 아이들의 면면을 살피지 못한 탓에 캐릭터가 납작해졌고, 긴박감이 더해져야 할 이야기는 자꾸만 늘어졌다. 이 자식 글도 못 쓰면서 무진장 불성실하다고 울면서 연재했다. 소설을 연재하는 동안에 한 번의 휴재가 있었고, 마지막 화는 한 편 분량을 제때 써내지 못해서 두 편으로 나눠 올리는 등 연재는 엉망진창으로 진행됐다. 그래도 끝까지 썼다.




     나는 내 글을 직접 마주하기 위해서 억지로 글을 썼고, 온라인에 게재하기로 했다. 반년 동안 11편의 에세이를 올렸고, 3개월 동안 한 편의 소설을 연재했다. 제대로 따져보면 1년이 채 안 되는 시간인데 연재를 끝내고 보니 얻은 게 많았다. 우선 브런치 작가 신청. 처음 브런치라는 플랫폼 얘기를 들었던 게 3년 전쯤이었다. 깡이 브런치를 소개해주며 그곳에서 글을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알아보니 작가 신청을 넣어서 합격해야만 브런치에서 글을 연재할 수 있었다. 신청과 합격. 두 개의 단어 앞에서 지레 겁부터 먹은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됐다는 핑계로 뒷걸음질 쳤다. 그 후에도 브런치 작가 신청은 늘 신년 목표 중 하나였는데 에세이 한 편 쓰지 않으면서 말로만 해야 한다고 염불을 외웠다. 그러다 작년 5월에 블로그에 올린 8편의 에세이를 재료로 작가 신청서를 작성했다. 다행히 한 번에 합격해서 바로 5월 연재분부터는 브런치와 블로그에서 동시에 연재를 진행하게 됐다. 아마 에세이 연재를 하지 않았다면 브런치 작가 신청은 또 미뤄져서 2022년 신년 목표가 됐을 것이다.

소설을 연재한 덕에 겪은 일도 있다. 연재  무렵 연재 사이트의 메인에 소개됐고, 연재가 끝난 후에는 다른 연재 사이트에서 게재 요청을 받기도 했다. 죄다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지만 그중에 가장 좋았던  하나의 이야기의 끝을 봤다는 것이다.  모든 일은  글을 직접 마주하고, 정해진 날짜에 맞춰 글을 쓰고,   글이나마 밖으로 내놓았던 덕에 겪을  있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2022년에 내가 가야  방향이 떠올랐다. 첫째는 꾸준히 글을 쓰는 것이고, 둘째는 꾸준히  글을 온라인상에 쌓아가는 것이다. 이때 가장 처음 떠올린 것이 매일  일기를 바탕으로 주간 일기를 연재하는 것이었다. 1 중순부터 매주 토요일에 연재 중인 주간열음의 시작점이었다.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의 가벼운 글이 매주  편씩 쌓이면 올해 연말에는 지난날의 내가 상상조차 못했던 양의 글이 쌓이게  것이다. 그를 바탕으로 브런치 작가 신청을 넣었을  그랬듯 다른 무언가에 도전할 수도 있고, 하나로 묶어 개인 소장용 책으로 만들 수도 있다. 꾸준히 글을 쌓아가는 것이 습관으로 자리하게  후에는 어쩌면 깡에게 강릉에서 서로에게 보냈던 엽서를 기억하느냐고, 네가 해낼  있을 거라고 응원해줬던 일을 해냈다고 얘기할  있게  수도 있다.

물론 그날이 언제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당장은 기대와 설렘으로 들떠서 김칫국을 끓이기 시작한 마음을 가라앉히는 게 우선인 듯하다. 머릿속에 드넓게 펼쳐졌던 꿈 같은 장면은 겨울날 이불을 털어내듯 탈탈 털어내고, 다이어리를 펼치고, 구글 문서를 열었다. 다음에 글쓰기에 관한 에세이를 쓰게 된다면 “나는 내가 생각해도 글을 잘 안 쓴다.” 같은 문장을 걸러낼 수 있게 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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