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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열음 Jun 04. 2022

어떤 꿈을 위한 주술


     꿈에 차애가 나왔다. 핸드폰 알람 때문에 잠에서 깼을  기분이 몹시 미묘했다. 눈을 뜨기 직전까지 몸담고 있던 꿈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서 억울했는데, 가까이에서  차애의 얼굴만은 몹시 선명하게 떠올라서 억울함이 얼마간 상쇄된 탓이었다.

밥을 먹고 청소하는 동안에도 꿈의 내용은 내 머릿속에 애매하게 남아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꿈의 내용이 몹시 산만했던 탓에 명료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기억이 날아간 탓인지 장면도 드문드문 끊겼던 터라 내용이 더욱 산만하게 느껴졌다. 그럴수록 꿈속에서 마주했던 차애의 얼굴은 또렷하게 떠올랐다. 앞뒤 맥락을 읽어낼 수 없어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차애는 그에게 잘 어울리는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는 왜 웃었을까.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말을 주고받았던 걸까. 차애의 잘생긴 미소가 또렷해질수록 나는 꿈의 내용이 더욱 궁금해졌다. 이젠 얼마 남지 않은 몇몇 개의 장면을 단물이 다 빠지도록 곱씹으면서 낑깡이와 산책에 나섰다.

낑깡이는 사방을 향해 코를 들이밀고 킁킁대며 나를 이끌었다. 나는 낑깡이가 뭐든 주워 먹지 않을까 주의 깊게 살피면서 그를 살며시 불렀다. 낑깡아, 그는 여전히 킁킁 냄새를 맡느라 바빴다. 낑깡이는 산책 중에 평소에 말을 걸듯 이름을 부르면 돌아보지 않았다. 딱히 그가 나를 돌아봐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부른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내 할 말을 이었다. 언니가 오늘 꿈을 꿨는데, 차애가 나왔거든.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어떠한 꿈을 꿨다고 말한 다음에는 으레 꿈의 내용에 관한 얘기가 나와야 했다. 하지만 지금 내 머릿속에 남은 것이라고는,


“차애 진짜 잘생겼더라…”


듣는 이라고는 주변 냄새를 맡느라 바쁜 낑깡이-제대로 듣는 것 같지 않았지만-뿐이었지만 괜히 멋쩍은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말하니까 꼭 실제로 보고 말하는 것 같네. 그러고 보니 차애가 꿈에 나온 건 처음 같았다. 덕질 초기에 최애를 비롯한 다른 멤버들이 꿈에 나온 적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내용도 흐릿하다. 정확한 건 최애가 나왔다는 거고, 차애는 나오지 않았다는 거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서 컴퓨터를 켰다. 검색창에 “좋아하는 사람이 나오는 꿈 꾸는 법”을 쳤다. 잠들기 전 그에 관해 많이 생각하라는 것 외에 재미있는 주술이 몇 보였다. 가령 베개에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을 수 놓는다던가 그의 이름을 종이에 적어 베개 밑에 넣는다던가. 한참 읽어 내려가다가 현대에 가장 알맞은 방법을 발견했다. 잠들기 전 좋아하는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스마트폰의 메모장에 “보고 싶다”라고 타이핑하는 것이었다. 수를 놓거나 종이를 깔고 자는 것보다 간단하고 쉬웠다. 좋아하는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보고 싶다는 글자를 치는 과정에서 그에 관해 오랫동안, 강렬하게 생각할 테니 제일 처음에 언급된 “잠들기 전 그에 관해 많이 생각하는 것”과 통하는 것 같았다.

대충 훑고 나니 한층 모호해진 기분이 들었다. 최근 차애에 관해 많이 생각했던가? 컴퓨터를 끄고 돌아서는 순간 정답에 가까운 물건이 보였다. 책장에 비스듬하게 세워둔 탁상 달력에 차애가 은근한 미소를 띤 채 정면을 보고 있었다. 얼마 전 6월로 넘어오면서 차애의 사진이 책장 위에 자리하게 됐다. 그리고 나는 잘 때 책장 바로 앞에 자리를 펴고 눕기 때문에 자연스레 책장을 머리맡에 두게 돼 있다. 그러니까, 머리맡 책장 위 차애의 사진 - 이것도 어떤 주술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정면을 바라보며 웃는 차애의 얼굴이 꿈속에서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 있던 차애의 얼굴과 겹치는 것 같았다. …겹치는 게 당연했다. 동일 인물이니까.



     복잡한 마음을 안고 자리에 누웠다. 6월 달력의 주인은 차애였지만 5월 달력의 주인은 최애였다. 5월 내내 나는 꿈에서 단 한 번도 최애를 마주한 적이 없었다. 같은 자리에 놓인 사진이었는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으니 주술이라고 보기 어렵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게 믿으면 남은 6월 내내 다시는 꿈에서 차애를 보지 못할 것 같았다. 바보 같은 소리일까. 믿음의 여부와 관계없이 우연히 나타난 것에 가까울 것이다. 그쪽의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을 알면서도 믿음의 끈을 쉬이 놓을 수 없었다. 6월이 끝나면 7월로 넘어가는 대신 다시 5월로 넘겨봐야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눈을 감았다. 그날 밤의 꿈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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