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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열음 Jun 18. 2022

아주 오랫동안 미워했어


     나는 아주 오랫동안 나를 싫어했다. 14살에서 15살쯤부터였을 것이다. 나는 내가 싫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틈만 나면  모자란 부분을 들춰봤고, 흠을 잡고 깎아내렸다. 이건 이래서 싫었고, 저건 저래서 싫었다. 그러다 보면 이렇게 못나고 부족한 나를 어느 누가 좋아해 줄까 싶어서 무서웠다. 나조차 내가 싫어서 견딜  없는데 남이 나를 견뎌줄 리가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몹시 외로웠고, 그럴수록 나는 내가  싫었다. 나는 나를 싫어하면서, 나를 싫어하는 나도 싫어했다. 싫고, 싫어서, 싫은  투성이가   같았다. 끓어오르는 자기혐오를 누르지 못하고 성인이 됐다. 그즈음 웹툰 〈즐거우리 우리네 인생〉(현이씨) 보게 됐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일상툰인데 보고 있으면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술을 좋아하고, 웃기는 얘기를 하고, 강아지 뽀뿌를 사랑하는 작가님의 만화를 보고 있으면 어느샌가 나도 같이 킬킬거리고 있었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 나는 혼자 방에 틀어박혀서 만화  현이씨를 보면서 맥주를 마셨다. 현이씨의 일상을 보다가 알딸딸해진 기분으로 잠드는   당시 나의 가장  낙이었다.


그날 본 만화는 현이씨가 자기 자신을 똑바로 마주하고 나서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회차도 가물가물하고 앞선 상황도 떠오르지 않는데 딱 하나만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현이씨가 현이씨를 마주 안는 장면이었다. 술기운이 올라왔던지 그 장면을 보자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소리를 죽이려 이불에 얼굴을 박고 엉엉 울었다. 처음엔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울었던 것 같은데 나중에는 어떤 마음으로 울었는지 잘 모르겠다.

한참을 울고 나서 나도 나를 사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현이씨처럼 자신을 마주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인정하는 거다. 그러니까, 어떻게? 순간 생각이 막혔다.

어떻게 해야 내가 나를 온전히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지?



     나는 아주 오랫동안 고민했다. 내가 나를 온전히 인정하는 방법에 대해, 내가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해,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이다. 인정은 말 그대로 인정인데 나는 자꾸만 어떻게? 어떻게?? 하고 되물었다. 그 뒤에는 아마 어떻게 나 같은 인간을 사랑할 수 있을까? 라는 말이 생략됐을 것이다. 시작부터 부정했으니 순탄할 리가 없었다. 나는 계속 고민했다. 고민만 했다.

그러다 고민 자체를 잊었을 즈음 내가 전만큼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특별히 내가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싫지는 않다 - 였다. 물론 지금도 종종 내가 싫을 때가 있지만 눈에 불을 켜고 단점만 찾고, 나를 바꿀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던 때보다는 나았다. 적어도 대부분은 “싫지 않다”의 상태였다. 반가운 변화였지만 이유가 궁금했다. 이유를 알아야만 더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결국 시간이다. 서른을 코앞에 둔 지금의 나는 여전히 불안정하지만 열넷, 열다섯의 나 혹은 스물, 스물하나의 나보다는 훨씬 여유롭고 안정적이다. 생각하는 방식에 변화가 생겼고, 받아들이는 것 또한 달라졌다. 그렇기 때문에 죽어라 싫어하고 미워하던 나의 단점을 그때와 다른 방향에서 보게 됐을 것이고, 백 퍼센트는 아니더라도 적당히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개중엔 인정이 아니라 체념도 섞여 있을 테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덕에 “싫어 죽겠다”에서 “싫지 않다”까지 올 수 있었다.

나는 내 평생 나를 사랑하게 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직도 성공하지 못했으니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요새는 자그마한 희망이 생겼다.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적어도 할머니가 되기 전에는 나를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싫어 죽겠다”에서 “싫지 않다”까지 15년 정도 걸렸으니 가능할지도 모른다. 현이씨처럼 나를 똑바로 마주하고 안아줄 수 있는 날이 꼭 왔으면 좋겠다. 그때가 되면 오래 묵은 미움을 완전히 털어내고 나를 온전히 인정하고 사랑한다고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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