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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열음 Jun 25. 2022

있을 때 잘하라는 말처럼


     초등학생  읽은 책이 생각난다. 제목이 랍비의 지혜 - 비슷한 것이었다. 학급 문고에 비치된 얇은 동화책이었다.  내용은 대충 이렇다.


     한 남자가 좁은 집에 많은 식구가 함께 사는 것이 불편하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느냐고 지혜로운 랍비에게 조언을 구한다. 랍비는 남자에게 밖에서 키우는 닭을, 돼지를, 염소를 집안으로 들이길 권한다. 남자는 랍비의 조언에 의구심을 표하면서도 지혜로운 랍비의 말이니 옳겠거니 하고 따른다. 그러나 랍비의 조언에 따라 집안에 가축을 하나씩 들일수록 집안은 엉망이 되어가고 랍비의 말을 잠자코 따르던 남자의 인내심도 한계에 이른다. 결국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남자가 따지기 위해 랍비를 찾아간다. 씩씩대며 쫓아온 남자에게 랍비는 집안에 들인 가축을 다시 집 밖으로 전부 빼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속는 셈 치고 랍비의 말을 따른 남자는 그날 밤 그 어느 때보다도 고요하고 평화로운 밤을 보내며 랍비의 지혜에 감탄한다.


이 이야기가 전하고 싶은 교훈은 현재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말라는 것이었을 거다. 당장 손에 쥐고 있는 것, 곁을 지켜주는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잊어버리는 것은 아주 쉽다. 그를 깨우쳐주기 위해서 남자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붙인 것일 터였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처럼. 나도 내가 가진 것,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을 자주 잊는다. 사실 “자주”라는 표현도 부족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맞이한 거겠지.



     4 중순, 생전 처음 겪는 허리 통증에 물리 치료를 시작했다. 그로부터  2 후인 5 , 고층 빌딩의 비상계단을 오르내리다 다리 근육통을 얻게 됐다.* 마치 누군가 너는  몸을 소중히 대하지 않았지 - 라고 엄중히 경고하며 멀쩡하던  몸에 남자의 가축과 같은 통증을 하나씩 집어넣은  같았다. 다행히  몸에 들인 통증은 거기서 끝이었다. 하지만 남자가 집에서 가축을 빼고 평온한 밤을 되찾은 것과 달리  몸에 자리 잡은 통증은 깔끔하게 사라지지 않았다. 학생 때만 해도 이틀 내로 풀려 사라지던 다리 근육통은 5 정도 머무르며 발을 내디딜 때마다 고통스러웠다. 허리 통증은 병원에 발길을 끊게   몸이 조금만 피곤해도 허리가 저리는 형태로 아직 남아있다. 문득 억울한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30 가까이 구부정한 자세로 앉거나 편할 대로 몸을 웅크리고 눕는  몸을 엉망진창으로   나지만 억울했다. 앞으로 길면 70, 짧아도 4-50년은   거라고 생각하니 눈앞이 아득해졌다. 만일 그가 존재한다면 인간 명줄이 이렇게 길어질  모르고 신체를 설계했을 테지만 빡쳤다. 지금이라도 A/S 해줘야 하는  아닌지 누군지도 모를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떼를 쓰고 싶었다. 이건 부당하다. 앞서 얘기한 랍비 이야기도 그랬다. 초장부터 어떤 설명도 없이 집안에 가축을 들이라고만 말하는  너무한 처사였다. 조금 부드러운 방법을 써서 알려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그러니까 예를 들면,


-너 또 그렇게 의자에 누워있네. 허리 아프다면서!


슬그머니 허리를 바로 세우고 어깨를 폈다. 곧 사나운 시선이 거둬지고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린다. 애써 모른 척하다 입맛을 다신다. 어쩌면 부드러운 경고는 이미 몇 차례나 주어졌었는지도 모르겠다.







*주간열음 카테고리의 〈근성의 증명과 계단〉에서 해당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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