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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열음 Jul 09. 2022

일기 쓰는 방법


     느닷없이 의욕이 샘솟는 날이 있다. 그런 날에는 뭐든 해보고 싶고    있을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날도 그랬다. 게시글 알림용으로 쓰는-하지만 알림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운-인스타 계정을 제대로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처음 떠올린 방법은 포스팅 횟수를 늘리는 것이었다. 매일 포스팅하면 좋을  같았다. 그럼 매일 어떤 이야기를 올리는  좋을까? 우선 매일 하기 위해서는 부담이 적어야 했다. 매일   있되 부담이 적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4월쯤에 멈춘 일기가 떠올랐다. 오른손 엄지와 중지가 부딪쳤다. 서툰 손놀림에 탁한 소리가 났다. 매일 일기를 써서 올리는 거다. 일기 습관도 다시 잡고, 매일 인스타 포스팅도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있었다. 나쁘지 않은  같았다. 당장 오늘부터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순간, 온통 블러 처리된 일기장의 이미지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내 일기를…타인에게…온라인상에…공개할 수 있나…?


아니. 절대. 네버.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죽기 전에 일기를 불태우거나 파쇄기에 갈아버리기로 다짐했다. 그런 주제에 일기를 평생 박제될 위험이 있는 인스타에 올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무서운 상상과 함께 인스타를 활성화하겠다는 의욕이 사그라졌다. 푸쉬식 - 맥 빠지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다른 사람들은 일기를 어떻게 채울까? 나는 가능하면 그날 내 머릿속을 채운 생각이나 내 곁에 머물렀던 영감으로 일기를 가득 채우고 싶었다. 그를 위해서 작년 연말에는 2022년에 쓸 다이어리로 예쁜 연보라색 양장 노트를 새로 샀다. 그러나 현실의 일기는 시간순으로 나열되는 일과, 어제와 같은 빛깔의 불안으로 반쯤 채워졌고, 나머지 반은 그날의 날씨나 말도 안 되는 문장으로 노래를 엮듯 쓸데없는 헛소리로 채워졌다. 주간열음의 소재를 건질 겸 일기를 돌아보면 종이와 펜에 대한 폭력 같은 페이지가 줄줄 이어져서 빈손으로 노트를 덮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매일 똑같은 말이 아니면 종이와 펜에게 미안할 말이나 쓰고 있는데 내가 일기를 쓰는  의미가 있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일기를 쓰지 않게 됐다. 일기를 매일 쓰지 않은지 3개월이 조금 넘었다. 매주 올리는 주간열음이 진짜 주간일기가 되어갈 즈음 지난 3월에 읽었던  하나가 생각났다.


〈일기 쓰는 법〉(조경국, 도서출판 유유)


제목 그대로 일기 쓰는 법에 대한 책이다. 일기 쓰기의 시작부터 일기 처분 여부-죽기 전에 일기를 불태우거나 파쇄해야겠다고 생각하게 해준 것도 이 책이었다-까지 단계별로 다루고 있다. 중간중간 작가님의 일기도 인용돼 있고, 일기를 꾸준히 써온 분들과의 인터뷰도 수록돼 있어서 다른 사람은 일기를 어떻게 쓰는지에 관한 호기심을 해소할 수 있었다. 나는 내 마음이 내키는 대로 일기를 써온 터라 작가님이 제시해준 방법을 적용해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품고 있던 의문과 그에 대한 답 비슷한 것을 찾긴 했다.


“2010년 6월 16일에 메모해 두었던 최광호 선생님의 글.

(...) 사진은 보편적인 아름다움이나 결정적 순간을 찍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느낀 것을 토해내는 것입니다. (...)” (p.101)


내가 일상에서 겪은 일을 글로 엮어내기 위해서는 아름답거나 감동적인 결정적 순간만을 포착하는 게 아니라 그 순간에 내가 느낀 것을 소화해내야 했다. 나는 내가 느낀 것을 토해내 일기장에 옮기는 방법을 배우고 싶었다. 아니, 그러니까 대체 어떻게 하는데요? 답을 내놓으라고 닦달하는 내게 맺음말 속 문장이 묵직하게 와닿았다.


“일기 쓰기에 정답은 없습니다. 그저 몸에 배고 재미를 알 때까진 묵묵히 하루 일을 기록하는 수밖에요.” (p.168)


매일 똑같은 일과를 절반, 남은 절반은 되지도 않는 헛소리로 일기를 채우는 것도 의미가 아주 없진 않았던  같다. 어쨌든 매일 하고 있었으니까.   인내심을 갖고 이어서 썼다면 어떤 날에는 비슷한 하루를 보냈더라도 전날과 다른 일기를 썼을지 모른다. 그러니까 포인트는 “꾸준히였다. 그제야 어떤 순간에 느낀 감각을 오롯이 옮겨내기 위해선 많은 연습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권을 읽고 “!” 혹은 “너무 좋아!” 같은 감상밖에 남기지 못하는데 내가 너무 급하게   같았다. 하지만 전과 같이 관성적으로 일기를 줄줄 쓰는 것만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을  같았다. 다시 쓰기로 마음먹고 펜을 잡는 처음 며칠은 열심히 쓰겠지만  이후엔 전과 같이 흘러갈  뻔했다. 바닥에 누워 책장을 힐끔 올려봤다. 책장의  아래 칸은 수납장이었고, 수납장 바로  칸은 만화책 구간이었다. ,  책도 있었지.


〈도쿄규림일기〉(김규림)


올해 초 기록에 대한 욕심에 어쩔 줄 모르던 시기가 있었다. 그 시기의 도화선이 됐던 책이다. 이 책은 작가님이 15일간 도쿄를 다니면서 본 것과 산 것, 생각한 것을 쓰고 그린 순간순간을 엮은 기록물이었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땐 15일간의 글과 그림만으로 엄지 한 마디 두께의 책이 나온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책을 펼친 후에는 더 놀랐다. 작가님이 일과를 보내는 중에 쓰고 그렸을 시간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소한 것까지 기록돼 있었다.

나는 글을 쓰지만, 메모를 습관으로 둔 사람은 아니었다. 메모를 습관화하겠다는 선언만 이천 번 넘게 했을 것이다. 당연히 지켜지지 못했고, 짧게 짧게 한 메모는 핸드폰 메모장, 에버노트, 베어, 원노트, 수첩, 다이어리 등 다양한 곳에 퍼져 있었다. 약 이천 번-혹은 그 이상-의 시도에도 왜 메모를 습관으로 만들지 못했냐면 몹시 간단했다. 귀찮았기 때문이다. 하던 일을 멈추고 핸드폰에 메모하거나 수첩에 적어야 하는데, 순간 떠오른 생각이 간단하게 정리되지 않아서 말이 길어졌다. 자판-혹은 펜-은 머릿속 생각을 따라오지 못하는 일이 많았다. 그 모든 것이 귀찮았다. 귀찮다는 생각이 한 번 들기 시작하자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메모할 가치가 있는지 가늠하게 됐다. 자연스레 메모가 줄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메모를 하지 않고 있었다.

몇 달 전, 혹은 몇 년 전에 멈춘 기록을 보다 보면 요새는 왜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지 생각하기 멋쩍어졌다. 영감은 내가 바로 영감이라 밝히며 찾아오는 친구가 아닌데. 나는 아주 많은 무언가를 아무렇게나 흘려보내고 나서야 기록이 습관이 된 사람이 부러워 배가 아팠다. 하지만 이번엔 좋은 힌트가 돼줬다. 일과 중에 떠오른 생각과 영감을 잘 기록해두었다가 저녁 일기에 정리하듯 쓰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럼 전날과 같은 일과를 나열하는 날도 줄어들지 않을까?




익숙한 의욕이 샘솟았다. 오늘부터 다시 일기를 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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