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잘못됐다. 뜨겁게 달아오르던 머릿속이 차갑게 식었다. 덕분에 눈앞이 한결 맑아졌다. 당혹스러운 마음을 추스르며 조금 전의 상황을 다시 돌아보기로 했다.
산책에서 돌아오던 길이었다. 오전 시간이었지만 내리쬐는 햇빛으로 몹시 더웠고, 운동 부족인 몸뚱이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다행히 집이 코앞에 있었다. 5분 정도만 더 걸으면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화가 치솟았다. 뱃속에 뜨거운 용암이 뱀처럼 똬리를 튼 것 같았다. 속을 달군 열기가 곧장 머리로 향했다. 나쁜 말이 떠올랐고, 나쁜 생각이 줄줄 이어졌다. 그러던 중 작은 물음표 하나가 떠올랐다. 물음표는 나쁜 말과 나쁜 생각을 가리 듯 둥둥 떠올라 내게 물음을 던졌다. 너무 터무니없는 비약 같은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았다. 빠른 속도로 가지를 치고 자라난 나쁜 말과 나쁜 생각은 이제 와 찬찬히 살펴보니 모두 중심을 비껴나가고 있었다. 알아채지 못한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내가 동의하자 물음표는 또 다른 물음을 던졌다. 그렇게까지 화가 날 일이었어? 침착한 질문에 분노가 자취를 감췄다.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답은 “아니다”였다. 스스로 답을 찾고 나서야 깨달았다. 뭔가 잘못됐다.
앞선 상황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첫 번째는 앞서 이야기했듯 분노할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분노했다는 것이었다. 순간 내 눈을 가린 화는 침착한 질문 하나로 물리칠 수 있는 가짜였다.
두 번째는 가짜 분노를 처치한 상황이 몹시 낯설었다는 데 있었다. 나는 질문 하나에 사그라든 분노가 아주 낯설었다. 왜냐하면 자주 보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두 번째 문제점을 인지했을 때 더 당혹스러웠다. 아주 유명한 말이 떠올랐다. 기분이 태도가 되어선 안 된다. 면목이 없었다. 나는 지금까지 내 기분을 그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더 최악인 점은 행동의 대상이 주로 가족들이었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였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하나 짐작 가는 것은 지금까지 내가 나를 과보호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나를 아주 무른 연두부 대하듯 굴었다. 조금만 기분이 나빠져도 짜증을 냈고, 조금만 힘들어도 무기력하게 자리에 누웠다. 아마 그편이 쉬웠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건 잘못됐다. 정말이지 한참 잘못됐다. 화를 내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 화를 내고, 포기하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 포기해온 덕에 내가 어떻게 됐는지. 이제는 제대로 봐야 했다. 제대로 알고, 제대로 대처해야 했다.
내가 생각한 대처는 다음과 같다.
하나. 기분이 나빠지면 일단 멈춘다. 그리고 기분이 나빠진 원인을 파악해 해결한다. 해결할 수 없다면 기분이 풀릴 수 있는 행동을 한다.
둘. 기분이 나아지는 행동 목록을 작성한다.
셋. 계획은 언제나 틀어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한다. 작은 돌멩이 하나에 모든 것을 내팽개치지 않는다.
당장 정리된 것은 이 정도다.
최악을 인지했지만 그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아. 인지 이후에는 개선 밖에 없다. 알고서도 바꾸지 않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내게 남은 선택지는 개선이 유일했다. 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나를 좀 더 제대로 볼 필요가 있었다.
나는 나를 더 알아야 된다.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떻게 행동을 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