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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열음 Jul 30. 2022

내 통장을 노리는 당신에게


     문자를 알리는 진동음에 잠이 깼다.  시인지 속으로 가늠하며 머리맡을 더듬었다. 손가락에 걸린 핸드폰을 코앞으로 가져왔다. 오전 10 23.  알람을 끄고 계속 잤던  같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래도 오후가 되기 전에 눈을 떴으니 다행이라고 자조하며 눈을 내렸다. 흐린 글씨 사이로 대략 90만원 정도가 결제됐다는 문구가 보였다. 순간 통장 잔액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등이 서늘해지고 손이 잘게 떨렸다. 급하게 손을 뻗어 아무렇게나 던져둔 안경을 가져와 썼다. 국제 발신, 으로 시작한 문자는 다시 읽어봐도 90만원 정도가 결제됐다고 적혀 있었다. 당장 문자창을 내리고 은행 앱을 열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잔액은 내가 알던 그대로였다. 혹시 몰라 하나 있는 신용카드의 결제 내역도 확인했다.  역시 내가 알고 있는 내역 그대로였다. 급작스러운 문자와 달리  상황은 전날과 다를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자 소란하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그제야 스미싱에 생각이 미쳤다. 당장 초록창을 열었다. 검색창에 “국제 발신까지만 입력했는데도 “결제 완료라는 문구가 자동으로 완성돼 나왔다. 허허, 안도인지 빡침인지 모를 것에서 헛헛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벼룩의 간을  먹어라,  새끼들아



     작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겨울이었고, 내가 아직 직장에 다니고 있을 때였다. 점심시간 직전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평소 070이나 02로 시작하는 번호가 아니고서야 대부분의 전화를 받는 편이었기 때문에 그때도 별생각 없이 덜컥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가볍게 건넨 말에 경찰이라는 말이 돌아왔다. 이어서 상대는 내가 뭐라 물을 틈도 없이 대뜸 이**씨를 아느냐 물었다.


-어?


아는 대상을 만났을 때 터져 나오는 탄성이 전화 너머에도 닿았는지 스스로 경찰이라 소개한 남자가 아는 사람이냐고 재차 물어왔다. 알 리가 있나. 이**과 비슷한 이름의 유명 셰프를 떠올렸을 뿐이었다. 난감했다. 있는 그대로 얘기하기엔 전화 너머의 목소리가 심각했기 때문이었다.


-아, 그게…

-네.


단호한 목소리에 얼버무리며 넘기기도 어려웠다. 결국 생각한 것을 그대로 말했다. 아는 사람은 아니고, 그 왜, 유명한 셰프 있잖아요, 이**... 그 사람이 생각나서요.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제야 대충 아는 사람하고 이름이 비슷해서 놀랐다고 얘기할 걸 싶었지만 이미 모든 얘기가 끝난 후였다.


-...며칠 전 **근처에서 이**씨를 체포했습니다.


남자는 아무것도 듣지 못 한 사람처럼 본인 얘기를 이어갔다. 괜히 했다. 아 - 진짜 괜히 했다. 멋쩍은 기분을 털어내며 남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대충 요약하면 이**이라는 사람을 체포한 현장에서 내 명의의 **은행 통장이 발견됐다는 얘기였다. 나는 **은행에서 단 한 번도 통장을 만든 적이 없었다. 남자의 전화가 보이스피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에서 자주 봤던 수법이었는데 나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알면서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를 깨닫자 기분이 묘해졌다. 나는 한창 얘기 중인 남자의 말을 끊었다.


-저는 **은행을 안 쓰는데요.

-네?

-제가 지금 업무 중이라서요. 끊겠습니다.


곧장 통화를 종료했다. 핸드폰을 책상에 올려놓고 나서야 내 명의가 도용된 거라면 **은행과의 실제 거래 여부는 상관이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만약에 그가 진짜 경찰이고, 내 명의가 도용된 것도 사실이라면 다시 연락이 올 것이었다. 나는 책상 위에 잠잠한 핸드폰을 쳐다보다가 점심을 먹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화는 오지 않았다.



     지금이야 우스갯소리하듯 스미싱이나 보이스 피싱 경험을 줄줄 써놨지만 두 건 모두 소름 돋는 일이다. 잘 아는 수법이던 처음 겪어본 수법이던 상대의 페이스에 말려 순간적으로 감쪽같이 속았기 때문이다. 하마터면 한 줌 있는 재산을 몽땅 털릴 뻔했다.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돋고 열이 뻗쳤다. 현재 내 통장 잔액을 보여주면 사기꾼도 애잔한 표정으로 혀를 찰 줄 알았건만. “빈 곳간 터는 재미도 쏠쏠하지!”하고 구석의 먼지 하나까지 싹 털어가려 할 줄은 몰랐다. 악마, 귀신, 괴물 - 최악의 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불려 나오는 모든 존재들이 고개를 내저을만한 범죄 아닌가?

이런. 잃은 적 없는 돈을 생각하다 보니 흥분했다.


     오늘도 다시 되새긴다. 모르는 전화는 받지 않기. 급작스레 날아온 문자는 가능한 한 침착하게 확인하기.

그리고 내 통장을 노리는 당신에게, 남의 곳간을 탐낸 죗값을 반드시 치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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