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14분이었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러갔는지. 속절없이 지나간 시간을 원망하고, 재미도 없으면서 시선을 빼앗은 릴스를 원망하다가 시간 맞춰 이부자리에 누워놓고 눈을 감지 않은 나를 생각했다. 자정에, 늦어도 1시에 눈 감고 잠을 청하지 않은 것을 두고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내 잘못이다. 15분. 또다시 쏜살같이 흘러가 버린 60초에 눈이 흐려졌다.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흐르며, 핸드폰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지 - 다시, 16분. 베개에 얼굴을 박고 흐느끼듯이 어깨를 떨었다. 나는 어이없는 상황에 웃음을 터뜨리는 습관이 있다. 얕게 화가 날 때도 웃음이 나왔다. 나는 지금 왜 웃고 있는 걸까. 밝은 자리에 뿌리를 두지 못한 웃음은 오래 가지 못했다. 나는 다시 고개를 옆으로 하고 누웠다. 내가 희망하는 기상 시간을 기준으로 했을 때 지금 눈을 감아도 4시간을 채 자지 못할 게 뻔했다. 이른 아침 제발 일어나라고 우는 알람을 끄고 안대를 더 깊게 눌러 쓸 내가 선연했다.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알람을 무시하고 잠으로 도망쳐 버린 수많은 아침을 다시 쓸 수 있다면 새 인생을 살 수 있을 텐데.
이는 잠들기 전, 잠들기 싫은 마음에 메모를 켜 말도 안 되는 글을 써 내려가는 것으로 도주를 시도한 흔적이다. 글은 한 문단이 좀 안 되게 더 이어지는데, 글의 말미에 나는 이렇게 써놨다.
하루를 엉망으로 망치지 말아야지.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잠드는 게 싫다. 자려고 누워놓고 핸드폰을 켰다. 인스타 릴스를 봤고, 가끔 유튜브 숏츠를 봤고, 트위터를 새로 고침했다. 졸려 미칠 지경일 때도 감기는 눈꺼풀에 힘을 줘가면서 화면을 넘겼다. 그렇게 몇 분 견디다 보면 잠이 깼다. 그 상태로 1-2시간을 더 버티다가 눈을 감았다.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을 내일이 무서워서 그랬던가. 직장에 다닐 땐 출근하는 게 싫어서 잠을 미뤘는데, 어디에도 가지 않는 지금은 어디에도 가지 않는 나의 내일이 무서워서 잠을 미루는 것 같다.
얼마간 나의 일과가 집안일과 산책으로만 이루어졌던 적이 있다. 집안일과 산책이 끝나면 바닥에 누워서 핸드폰을 봤다. 아스팔트 위에 들러붙은 껌처럼 방바닥에 전신을 붙이고 핸드폰만 봤다. 집안일과 산책을 끝낸 오후부터 새벽까지. 내일도, 그다음 날에도, 그다음 다음 날에도, 그다음 다음 다음 날에도. 똑같이 반복되는 화면을 들여다보면서 이러면 안 되는데, 라고 생각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더는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데.
그 생각 직후에 무언가 달라졌나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 결심은 충동적이었고, 충동은 재채기 같았다. 나는 금세 다시 누웠다. 아주 가끔 재채기 같은 결심을 먹었다. 그러는 사이에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던 것 같다. 늘 그랬듯 잠깐 반짝이는 변덕에 가깝긴 했다. 이유야 뭐가 됐든 좋은 방향이었다.
시작은 일기였다. 3월 중순까지만 해도 매일 썼던 일기를 다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제일 먼저 한 일은 다이어리의 페이지를 4분할하는 것이었다. 한 페이지를 꼬박 채우고 싶어 하는 강박을 버리기 위해서였다. 나는 4칸으로 나눈 페이지에 쓰고 싶은 만큼만 일기를 썼다. 할 말이 없는 날은 한 칸을 채우지 못했고, 할 말이 많은 날은 2칸을 넘겨서 채우기도 했다. 그렇게 써도 다음 날 일기를 바로 다음 줄에 이어서 썼기 때문에 페이지에 공백이 생기는 일이 없었다. 부담 없이 페이지를 꽉 채우는 것, 내가 바라던 바였다. 아껴 쓰던 스티커도 내 마음대로 왕창 붙였다. 며칠에 걸쳐 꽉 채운 페이지는 몹시 만족스러웠다.
다음으로 나는 “어디에도 가지 않는 지금”을 바꾸기로 했다. 나는 집안일과 산책이 끝내고 나서 곧장 집 근처 카페로 갔다. 그날 마시고 싶은 커피를 곁에 두고 패드를 켜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글을 썼다. 하루는 주간열음이 될 일기를 썼고, 다른 하루는 이전부터 진도를 빼지 못했던 소설을 썼다. 머리를 쥐어짜면서 글을 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일은 카페에 가서 이걸 쓰고 저걸 해야지, 생각했다. 카페에서 뭘 쓰고, 뭘 할지 생각하다 보니 그를 정리해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카페에 출근 도장을 찍은 지 3일째 된 날 밤부터 집에서 굴러다니던 얇은 연습장에 다음 날 할 일을 정리해서 썼다. 첫날에는 몇 줄 쓰지 못했다. 어떤 것부터,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했던 탓이었다. 마음대로 적었다. 한 번 써보고 나서야 예전에 쓰던 할일 목록을 떠올렸다. 그다음부터는 아침부터 잠드는 시간까지 내가 하는 일을 모두 기록했다. 시간순으로 정리하니 쓰기에도, 보기에도 훨씬 수월했다. 다만 모두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자주 들여다봐야 했다.
이를 반복하다 보니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 자연스럽게 책상 앞에 앉게 됐다. 일정을 체크해야 했기 때문이다. 일기도 잊지 않고 쓰게 됐다.
잠드는 건 여전히 싫다. 자려고 누워서 릴스를 보고 숏츠를 보고 책장을 넘긴다. 그래도 1시 전후로 스탠드 불을 끄고 있다. 3-4시에 잠들던 때에 비하면 대단한 발전이었다. 오전 9시에서 10시 사이에 일어나 움직이는 것도 내게는 대단한 변화였다. 산책을 일찍 다녀오고, 집안일을 빨리 끝내려고 한다. 카페에 가기 위해서였다.
요즘의 나는 내가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오늘이 며칠인지 잘 알고 있다. 내도록 누워서 핸드폰만 보던 때에는 꼭 죽어있는 것 같았는데, 이제야 좀 사는 것 같다. 언제든 다시 바닥에 몸을 붙이고 시간을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늘 무기력과 보통의 상태를 오락가락하니까. 며칠이고 일정을 정리하지 않고 일기를 쓰지 않는 날도 올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언제 살고 있다고 느꼈는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를 위해 이 글을 다시 읽어줬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오늘이 며칠인지 인지하면서 매일 일기를 쓰고, 글을 쓸 때 살아있다고 느껴.
잊었다면 다시 펜을 들어줘. 이 글은 오늘의 너를 위해 쓴 글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