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주간열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열음 Sep 24. 2022

취준고백


     면접을 봤다. 마지막 면접이 지난 8월 중순이었으니 근 한 달만의 면접이었다. 커다란 모니터가 있는 회의실에 나와 회사 사람 셋이 마주 보고 앉았다. 그들은 내 이력서와 자소서를 몹시 꼼꼼하게 본 것 같았다. “안온”이라는 단어를 쓰셨네요. 어떻게 알게 된 단어인가요? 나는 책을 통해 알게 됐다고 답했다. 자연스럽게 책 얘기가 짧게 오갔다. 나는 좋아하는 작가님 성함을 둘 정도 댔다.

책 얘기가 마무리되자 직설적인 질문이 이어졌다. 마치 준비 운동은 그 정도면 되지 않았냐고 묻는 것처럼. 직설적인 질문에 나는 이전부터 줄곧 해왔던 대답을 꺼내거나 순간 생각해서 답했다. 그러는 사이에 말이 조금 빨라졌던 것 같다. 많이 긴장하셨나 봐요. 내가 그렇다고 답하자 그는 내 팔뚝에 돋은 닭살과 셔츠 깃 사이의 목덜미가 붉어진 것을 보고 나의 긴장을 알았다고 했다. 반팔 브이넥 셔츠를 입고 온 것을 조금 후회했다.

그들이 두 번의 긴 공백에 관해 물었다. 지난 두 번의 공백을 보내면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 그다음에는 내 작업물을 함께 보면서 작업 의도가 무엇인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물었다. 끊이지 않는 질문은 국가대표 탁구 선수와 탁구를 하는 것과 비슷했다. 경기 내내 상대는 나를 봐주면서 공을 쳤고 나는 그의 공을 받아내는 것만도 벅차서 허둥댔다.

나는 내게 똑바로 꽂히던 여섯 개의 시선이 점차 식어가는 것을 멀거니 지켜봤다. 열기가 식어감에 따라 나도 같이 줄어들었다. 안타깝게도 회의실에는 쥐구멍이 없었다.


     좋은 회사 같았고, 면접 자리에서 만난 세 분도 좋은 사람 같았다. 면접이 끝나고 내 손에 쥐어진 하얀 봉투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었다. 질문의 양과 질만 따져봐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내가 보낸 이력서와 자소서를 몹시 꼼꼼하게 검토하고 성실하게 질문을 준비했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 가장 불성실했던 사람은 나였다.

내가 나의 불성실을 눈치챈 것은 면접이 중반쯤 이르렀을 때였다. 면접 초반에는 대답을 정리해 내놓고 다음 질문을 기다리는 데 집중하느라 긴장했던 탓에 여유가 없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 면접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 나서야 나도 내 대답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그즈음부터 서서히 당혹감이 차올랐다. 보람차고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사람이 그 일을 위해 들인 노력이 0이라는 게 말이 되나?

각각의 대답은 말이 됐는데, 그 대답이 모두 모인 나라는 사람은 모순 그 자체 같았다. 그를 깨닫기 무섭게 면접장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내게서 흥미를 잃어가던 눈빛이 이해됐다. 시간을 빼앗아서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속으로 사죄하면서 질문을 경청했다.

면접이 끝나고, 그들은 내게 면접에 응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나는 늘 그래왔듯 불러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진심을 담은 말이었다.



     지하철이 도착했다. 빈자리를 찾지 못하고 지하철 문 앞에 서서 노트를 펼쳤다.


“내게서 흥미가 식어가는 게 보였다. 근데 그게 말하고 있는 나조차 이해된다는 부분에서 슬펐다. (잠시 앞의 글을 읽어본 후에) 슬프다는 표현도 웃기네. 노력 안 한 건 난데 슬플 이유가 있냐?”


“이유”라는 단어에도 울적해져서(그런 내가 또 싫었지만) 두 개의 획을 더해 “여유”로 고쳐 썼다. 노력하지 않은 건 난데 슬플 여(이)유가 있나? 맞다. 모순이니 뭐니 떠들었지만, 나는 노력하지 않은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런 주제에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들 앞에서 노력하지 않은 내가 까발려지는 게 쪽팔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몹시 싫고 창피했다. 나는 노력하지 않았다. 노력하지 않은 나를 감추기 위해 겉만 번지르르한 말을 늘어놓았을 뿐이다. 누군가 살짝만 두드려도 그 안이 텅 비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텐데.

각기 다른 방향을 향하던 대답이 부딪쳤다. 대답은 얄팍한 껍질을 날리며 부서졌다. 펑! 펑! 멋없는 껍질놀이가 끝나고 나서야 좁쌀만 한 알맹이 하나가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글 쓰고 싶다. 지금의 내겐 바보 같은 말이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서점에 들렀다. 읽고 싶었던 책이 가득 든 종이 가방을 품에 안고 나와 버스에 올랐다. 그제야 바보 같은 말에 답해줄 여유가 생겼다. 나와의 타협은 생각보다 짧고 깔끔했다. 나 스스로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속이 아주 조금(좁쌀만큼) 후련해진 것도 같았다.


     창밖으로 늦은 초록이 지나고 있었다. 시린 바람이 불기 전에 이 긴 공백을 끝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일을 미루고 싶은 너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