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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열음 Oct 01. 2022

문을 열었을 땐 벌이 서 있었다


     공원의 화단 바로 옆에 말벌이 기어 다니고 있었다. 샛노란 색을 보자마자 도망치려 했던 나는 바닥을 기어 다니다가 고꾸라져 버둥거리는 말벌을 보고 멈춰 섰다. 날개를 다쳤나. 배가 고픈가. 목이 마른 걸까. 어째서인지 지나칠 수가 없었다. 최근 며칠 죽은 말벌을 많이 봐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땐 생각나지 않았다. 바닥을 기다가 고꾸라져 다리를 허우적대고 온몸을 동그랗게 말아 흔들다가 다시 엎어져 앞으로 기어가는 말벌에 온 신경이 쏠려있었다. 나는 주변의 화단을 살폈다. 나뭇가지로 말벌을 집어 화단에 옮겨줄 생각이었다. 그게 말벌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딱딱한 고무바닥보다는 흙과 풀 사이에 있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았다. (나을 것 같았다. 누구에게?) 다행히 긴 나뭇가지가 하나 보였다. 화단으로 팔을 최대한 길게 뻗어 나뭇가지를 주웠다. 둘로 나눠도 길이가 적당할 것 같았다. 나는 나뭇가지를 양손으로 잡고 반으로 부러뜨렸다. 어설픈 나무젓가락을 들고 말벌에게 다가갔다. 그는 하늘을 향해 배를 보이고 다리를 부산스럽게 움직이다가 몸을 둥그렇게 말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나뭇가지를 갖다 댔다. 한 번에 잡아서 옮겨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벌이 무서웠고, 벌벌 떨리는 손으로 한 번에 옮기기는 어려웠다. 그는 나뭇가지가 몸에 닿자마자 위협적인 진동음을 냈다. 성을 내는 것 같았다. 분노는 종을 초월해 닿는구나. 그 사실을 손끝으로 느끼면서 다시 그에게 나뭇가지를 가져갔다. 그는 언제 바닥을 기어 다녔냐는 듯 당장이라도 날아올라 나를 쏠 것처럼 성을 냈지만 그게 다였다. 무서운 마음을 억누르면서 그의 몸통을 잡았다. 손끝으로 그의 분노가 느껴졌다. 서둘러 그를 화단에 내려놓았다. 그를 옮기는 동안 괴상한 소리를 냈던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주춤주춤 물러나 그를 바라봤다. 그는 여전히 뒤로 누운 채 다리를 버둥거리며 진동음을 내고 있었다. 무서운 와중에도 고무바닥보다 화단이 더 나은지, 내가 그에게 도움이 된 게 맞는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내 물음은 그에게 닿지 못할 테고, 설사 닿는다 해도 그의 대답이 내게 닿지 못할 터였다. 나는 서둘러 돌아섰다. 여전히 벌이 무서웠다.



     그날 밤 나는 꿈을 꿨다. 꿈속에서 나는 깊이 잠들어 있었다. 그때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비몽사몽 일어나서 문을 바라봤다. 다시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그럴 리 없겠지만 내가 잠에서 깨어난 것을 알고 재촉하는 것 같았다. 나는 최대한 숨을 죽이고 문 앞으로 다가가 현관문 구멍의 렌즈에 눈을 갖다 댔다. 믿을 수 없었다. 나는 잠시 눈을 떼고 눈을 비빈 후에 다시 현관문으로 다가갔다. 내가 말을 잃은 사이 문 앞에 선 그가 깔끔한 동작으로 똑똑 문을 두드렸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문을 열었다. 그곳엔 나보다 한 뼘 정도가 더 큰 말벌이 서 있었다. 나는 그를 올려봤고, 그는 나를 내려봤다. 낮에 공원에서 본 그 말벌일까. 내게 복수하러 온 걸까. 온갖 상상을 하는 내게 음- 음- 음- 음- 하고 그가 말, 했다. 낮에 들었던 진동 소리와 비슷했다.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더욱 난감해졌다. 그가 어떤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낮의 일에 대해 사과해야 하는지, 이곳에 온 이유를 물어야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음- 음- 그가 조금 전보다 강하고 짧은소리를 냈다. 그는 하늘을 올려보고 있었다. 나도 그를 따라 하늘을 올려봤다. 하늘에서 거대한 나무 기둥 두 개가 내려오고 있었다. 나무 기둥은 정확히 나를 목표로 둔 것처럼 다가왔다. 당황스러웠다. 도망쳐야 하는지, 도망친다고 해도 거대한 나무 기둥에게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때 내 앞으로 다가온 두 개의 나무 기둥이 넓게 벌어졌다가 모였다. 신기하게도 두 개의 나무기둥이 다시 맞닿을 때 큰 소리는 나지 않았다. 다만 나는 나무기둥에 떠밀리는 바람에 바닥으로 볼썽사납게 넘어지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다시 나무 기둥이 다가오며 넓게 벌어졌다가 모였다. 그때까지도 나는 바닥에 넘어져 있었기 때문에 나무 기둥 사이에 몸통을 잡히고 말았다.

젓가락질.

벼락처럼 지나간 생각에 주변을 확인했을 때 내 몸은 벌써 허공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비명이 터져 나왔다. 소리를 지르고 악을 썼다. 나무 기둥을 주먹으로 내리치고 다리를 버둥거려도 나무 기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는 바닥으로 고개를 내렸다. 그때 나를 올려보고 있던 말벌과 눈이 마주쳤다. 말벌은 나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그 순간 바닥으로 몸이 훅 꺼지는 느낌과 동시에 눈을 떴다.



     다음날 나는 다시 공원에 가서 말벌을 옮겨준 화단을 찾았다. 그 자리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내가 부러뜨린 나뭇가지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나는 눈으로 주변을 샅샅이 살폈다. 말벌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기어갔는지, 기운을 차려 날아갔는지도 알 수 없었다.

말벌은 어디로 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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