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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열음 Oct 2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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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남아라! 개복치 - 라는 게임이 있었다. 먹이를 먹여서 개복치를 크게 키우는 게임이었다. 문제는 이 개복치가 몹시 쉽게 죽는다는 데 있었다. 잘 놀고 잘 먹던 개복치 위로 “돌연사” 문구가 급박하게 떠오른다. 그러면 게임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게임은 친절하게도 돌연사의 이유까지 알려줬다. 기억나는 이유가 딱 하나 있다. 너무 많이 먹어서 죽었다고 했던가. 돌연사 이유를 보고 더 열받았었다.

개복치 게임에는 저장 기능이 없었다. 개복치가 돌연사하면 다시 태어난 어린 개복치를 처음부터 다시 돌봐야 했다. 반복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게임이었던 것이다. 평소 같았다면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아마 백수였던가? 명절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명절날 백수였다면 상상하기도 싫지만, 여하간 한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간 죽이기에 질려서 그때까지 얘기만 들어본 개복치 키우는 게임을 설치했다. 게임은 듣던 대로 단조로웠다. 먹이랑 공기 방울 같은 걸 터치했던 것 같은데. 레벨에 맞춰 작은 물고기, 오징어 순으로 업그레이드되는 먹이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한참 개복치를 배불리 먹여가며 키우고 있을 때였다. 화면 위로 돌연사-라는 문구가 크게 떴다. 처음 한 번이야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었다. 개복치를 키우는 내내 돌연사를 밥 먹듯 본다고 했으니 시작에 불과했다. 나는 별 타격 없이 곧바로 개복치를 다시 키웠다. 그렇게 두 번, 세 번… 여덟 번도 채우지 못했던 것 같다. 마지막 돌연사가 떴을 때 게임을 껐다. 반복되는 게임은 내게 깨달음보다 화병을 준다 - 는 깨달음을 얻었다.



     개복치는 나와 닮은 구석이 있다 - 고 생각했다. 사소한 일에 주저앉고 마는 것이 느닷없이 돌연사하는 개복치와 다를 게 없다고 느껴졌다. 차이점은 개복치는 버튼 하나로 돌연사가 꿈이었던 것처럼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고, 나는 그러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별것 아닌 말 한마디와 손짓에 의미를 부여하고 상처받았다. 그러지 말아야지 결심하고 돌아서면 결심을 잊은 듯 우울해했다. 나의 우울은 개복치의 돌연사만큼 반복됐다. 드물게 깨달았고 자주 화가 났다. 개복치 게임은 중도에 포기하고 끌 수 있었지만, 나는 중간에 끌 수도, 삭제할 수도 없었다.

나는 틈만 나면 내게 한계를 줬다. 돌연사를 막기 위해서였다. 이건 이래서 못하고, 저건 저래서 못한다고 미리 선을 그었다. 나는 어떤 일이든 할 수 없는 이유부터 찾았고,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다며 미뤘다. 할 수 없는 일과 그 이유의 리스트는 날마다 업데이트됐다.

     아주 드물게 내가 생각지 못한 곳에서 내가 그어둔 한계선 이상의 행동을 할 때가 있었다. 시간이 부족하고, 체력이 부족해서 못 할 거라고 생각했던 일을 해낸다던가. 내가 해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을 얼기설기 해낸다던가. 어려울 것 같아서 미뤘던 일이었는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별것 아니었다던가.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자 스스로 그어둔 한계에 의구심이 들었다. 뭐야, 할 수 없다더니 할 수 있네? 선 위로 슬그머니 발을 올렸다. 발을 끌면서 내 쪽으로 가져오자 굳건한 줄 알았던 선이 흐트러졌다. 기분이, 이상했다. 내 주위에는 무수한 선이 있다. 때때로 겹치고, 떨어져 온갖 이유로 나를 둘러싼 선. 그 위로 발을 내딛는 상상을 했다. 입안이 바싹 말랐다.


     개복치를 키울 때 그 주변의 먹이를 계속 먹여서 일정 체중에 다다르면 개복치의 레벨이 올라간다. 레벨에 따라 그가 먹는 먹이도 함께 업그레이드된다. 개복치와 나의 차이를 또 하나 찾았다. 나는 나를 키우면서 다운그레이드만 줄곧 했던 것 같다. 할 수 있는 이유를 찾는 것보다 할 수 없는 이유를 찾는 데 집중했다. 우울과 무기력에 떠밀리는 날에는 그 흐름에 온몸을 맡긴 채 시간을 죽였다. 그게 나를 위한 일이라고 믿었다. 나는 별것 아닌 말 한마디와 손짓 한 번에 벌벌 떠는 데다 다시 일어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니까.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고. 그 생각이 오히려 별것 아닌 말 한마디와 손짓을 오래도록 곱씹게 한다는 것도 모르는 채로.

나는 나를 좀 적당히 돌아볼 필요가 있었다. 언젠가 친구가 내 일기를 보고 너 반성을 참 많이 하더라, 라고 말했다. 그 말이 맞았다. 나는 나만 돌아보느라 내 감정에 매몰돼 있었다. 이제는 개복치 키우기를 완전히 삭제하고 밖으로 나가 걸어야겠다. 해를 보고 구름을 보고 멋대로 내 걸음을 가늠하지 않으면서. 갈 수 있는 데까지 천천히, 꾸준하게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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