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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열음 Nov 12. 2022

기록의 방식


     9 후반부터 일정을 정리하는 방식을 바꿨다. 원래는 다이어리에 그날  일을 기록했다.  1-2월까지만. 3 초에 나가떨어져서 전부  내팽개치면서 그때부터 8 중반까지 할일을 기록하지 않았던  같다. 3월부터 8월까지는 집안일과 산책이 하루의 전부였다. 기록은 주간열음이 전부였고, 일기도  쓰지 않았다.

7월부터 조금씩 회복했는데, 현재 딜리헙과 포스타입에 발행된 단편 소설 《여름의 단면》의 소재를 잡은 덕분이었다. 7월부터 소설의 소재를 정리하고, 설정을 마구잡이로 떠올리면서 초반 줄거리를 짰다. 오랜만에 몹시 신났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작업의 속도는 더뎠다. 8월 중순까지 겨우 초반부의 챕터 두-세 개를 썼다.

그때 다시 할일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할일을 정리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해치우려 들다가 또 지칠까봐 걱정됐다. 많은 시간을 버린 만큼 지금의 회복된 상태를 더 오래 이어나가고 싶었고, 그래야했다. 그래서 일단 안 쓰는 연습장을 꺼내 주간 플래너 양식을 그렸다. 되는대로 선을 긋고 날짜를 적고 내 마음대로 스티커를 붙였다. 그주에 산 로또도 붙였다.


     처음엔 좋았다. 다시 내일을 준비하고, 할 일을 생각하면서 하루가 좀 더 체계적으로 굴러가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쓸 수록 이전과 비슷해졌다. 나는 플래너에 할일을 정리해놓고 자주 들여다보지 않은 탓에 일정을 쉽게 잊었다. 일을 진행함에 있어 막연한 부분도 많았다. 예를 들면, 이번 달 목표를 소설 초고 마감하기-로 정했다고 하자. 그러면 달의 말일에 소설 초고 마감, 이라고만 써둔다. 그게 계획의 끝이었다.

처음에는 매달 같은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는 것만 알았을 뿐 어떤 부분이 문제가 돼서 같은 목표를 몇 달씩 질질 끌고 있는지 몰랐다. 모를 수밖에 없었던 게, 나는 자기계발서에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목표를 쪼개라는 말을 읽고도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게 목표는 먼 자리에서 빛나는 무언가였고, 나는 그곳까지 죽자 살자 달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건 내게 아주 오래된 문제였고, 오래 끌어 안고 있었던 만큼 제대로 보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일단 일정을 정리하는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뭘 바꿔야하는지 모르겠는데, 일단 뭐든 바꿔야할 것 같아서 그랬다.


     내가 바랐던   일을 적을  있고,  달에 설정해  목표도 쉽게   있는 양식이었다. 고민하다가 불렛저널 영상을 보게 됐다. 이거다! 싶었지만, 목차부터 꼼꼼하게 기록하는 불렛저널은 지속하기 어려울  같았다. 그래서 불렛저널에서 필요한 부분만 조금씩 떼오기로 했다. 쉽게   있는 얇고 작은 노트를 꺼냈다. 노트의  장에  달의 목표를 쓰고,  다음에는  일과  일의 진행 상황, 그날 하루의 피드백, 그날 읽은 책에서 좋았던 구절을 매일 썼다.


결과는 생각보다 좋았다. 정말 신기한 게, 목표를 확인하면서 그날 그날 할 일을 정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목표를 쪼개게 됐다. 그게 정말 큰 도움이 됐다. 그 다음부터는 목표의 큰 덩어리를 파악하고 나서 곧바로 쪼갰다. 이를 매일 쓰는 페이지와 목표 페이지 두 군데에 모두 체크하면서 목표가 어디까지 이뤄졌는지도 파악했다. 이 방식이 얼마나 도움이 됐냐면, 이 방식으로 바꾼 9월 22일부터 10월 1일까지, 단 열흘 사이에 《여름의 단면》 초고의 후반부를 다 썼다. 소설을 이렇게 빨리, 체계적으로 써본 기억이 없었다.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때 연초부터 줄곧 미뤄온 포트폴리오도 절반 가량 끝냈다. 이게 되네. 정말이지 충격적이었다.

(사실 이 부분은 아직 내가 하루에 안정적으로 해치울 수 있는 일의 양을 모르기 때문에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한 상태다.)


     며칠 전 10월을 돌아봤다. 10월도 9월 만큼 괜찮았다. 포트폴리오 작업을 끝냈고, 단편 소설의 연재 준비를 끝마쳤다. 책도 제법 읽었고, 일정 기록도 31일 중에 26일을 쓰는 등 제법 성실하게 지냈다. 10월은 9월보다 노트를 덜 열심히 썼는데, 월말에 결과를 보자마자 다시 열심히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10월 중에 노트고 일기고 다 놓고 지낸 기간이 있다. 주간열음도 지난 글에서 다짐한 것처럼 자주 들여다보지 못했다. 거기다 피드백은 같은 말을 반복할 때가 많고, 진행 상황은 적는 걸 잊었다가 몰아서 쓰기도 했고, 책을 읽지 않아서 좋았던 구절을 적지 않는 날도 많았다. 세분화한 목표도 중간중간 많이 수정했고. 그래도. 이전보다 훨씬 좋았다. 일정 정리 방식을 바꾼 덕에 목표를 쪼개는 방법에 관해 배울 수 있었고, 일기와 다른 시선으로 하루를 돌아볼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좀 더 이어가면서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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