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로움과 조급함, 막막함과 무한함의 사이
나는 내 존재를 증명하지 않고 사는 법을 몰랐다. 어떤 성취고 증명되지 않는 나는 무가치한 쓰레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 믿음은 나를 절망하게 했고, 그래서 과도하게 노력하게 만들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의미나 가치가 있는 사람들은 자기 존재를 증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소설 <밝은 밤> 156pg
2022년 임용고시에 떨어지고 처음으로 읽은 책 ‘밝은 밤’ 중 한 구절이다. 이 구절은 순간 작가가 나를 창조한 신은 아닐까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만큼 나의 삶을 너무나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부터 체육 임용고시 준비를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초수 합격은 어렵다는 소리를 하도 주변에서 많이 들었기에,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기 1년 전부터 공부를 시작해 재수로 합격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공부를 했다. 재수 없는 소리겠지만 난 내가 합격할 줄 알았다. 피아제의 인지발달이론 중 형식적 조작기 특징 중 개인적 우화에 대해 아는가? 마치 자신이 세상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더 나아가 ‘신’이라고까지 생각하는 11세 자기 과신이 넘치는 상태을 의미한다. 나는 아마 개인적 우화에 빠져있었던 듯하다. 임용 그거 원래 내가 하던 대로 죽을힘을 다해 열심히 하면 되는, 수능 또는 입시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라 쉽게 여겼나 보다.
2021년 1월 4일부터 모든 인간관계를 끊고, 아침 8시부터 밤 10-11시까지 공부했다. 5월까지는 일요일 하루 휴식 시간을 가졌으며, 나의 계획을 하루도 미루지 않고 공부했다. 이동시간, 화장실에 앉아 있는 순간에도 서브노트를 놓지 않았다. 목표를 잡았고, 난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목표를 향해 달렸다. 사실 이 전까지 죽을힘을 다해 노력했을 때, 항상 그에 걸맞은 결과를 받아왔다. 그렇기에 나는 노력의 노예였고, 원래와 같이 노예처럼 노력했다. 하지만, 임용고시는 수능과 입시와는 다른 수준의 시험이었던 걸까? 아니면 수능과 입시를 했을 때에 비해 나이를 먹은 나의 신체가 문제였던 걸까?
5월부터 나의 몸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평소와 같이 행복하게 저녁을 먹는 중 팔과 다리까지 피가 전달되지 않는 느낌과 함께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옆에 있던 오빠에게 바로 119를 불러 달라 부탁하고 무작정 밖으로 나가 숨을 쉬기 위해 노력했다. ‘아 지금 정신 조금 놓는다면, 까딱하다가 나 여기서 죽겠다’라는 생각으로 필사적으로 숨을 쉬었다.
이소리를 내가 앰뷸런스 차 안에서 듣게 될 줄이야… 삐용삐용을 배경음악 삼아 오랫동안 찾지 않았던 하나님께 기도했다.
‘나 다른 거 안 바랍니다. 살 게만 해주세요. 임용 필요 없고, 욕심도 부리지 않을 테니 제발 살 게만 해주세요’
나의 기도가 민망해질 만큼 검사 결과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갑자기 찾아온 과호흡이라며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의사의 소견이었다. 신체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기에 놀랐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고, 1주일간 본가로 내려가 휴식을 취했다. 1주일 동안 다시 숨이 쉬어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몇 번 찾아왔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대응해 별것 아닌 것처럼 넘길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서울로 가 임고생 모드로 돌아가, 1주일 동안 하지 못한 공부를 위해 영혼을 갈아 공부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1달 뒤에 나타났다. 갑자기 온몸의 근육이 뛰기 시작했다. 규칙성도 없이 정말 말 그대로 온몸이 툭, 툭, 툭 뛰었다. 심지어는 혀까지 뛰는 것이다. 루게릭과 같이 큰 병의 증상과 같아 여러 병원을 다니면서 검사를 해봤지만 원인은 찾지 못했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인한 증상인 것 같다는 의사들의 견해를 들었다.
공부에만 집중해도 바빠 죽겠는 시간에 몸이, 그것도 너무나도 특이하게 아프니 모든 것을 놓고 싶었다. 하지만 목표가 있었기에 매일 밤(솔직히 매일 밤은 아니지만… 거짓말 아주 조금 보태서) 울면서 공부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나 임용 다시는 안 해. 그냥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 하자. 대단한 사람 되려 하지 말자. 욕심부리지 말자. 하루 벌어 하루 살면 어때? 건강만 하면 그만이지’
이 생각으로 남은 기간을 버텼고 시험을 끝냈다.
결과는 알다시피 불합격이었다. 불합격을 눈으로 확인했을 때 별로 슬프지 않았다. 불합격했다는 사실보다 12월에 되었음에도 좋아지지 않는 나의 몸이 더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2022년 1월 다이어리를 펼쳐 나의 목표를 적었다.
1. 대단한 사림이 되려 하지 말자, 행복한 사람이 되자
2.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자
3.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자.
4. 적어도 120만 원 정도의 생활비는 벌 것! (엄마와 오빠에게 조금 덜 기대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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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부리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여유롭게 내 인생 설계를 해보기로 했다. 임용의 탈락이 어떤 이에게는 막막함으로 다가갈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어떤 것이든 다시 시작해 볼 수 있는 무한함이라 믿었다. 무한함을 헛으로 쓰지 않기 위해 공부하면서 그동안 내가 하고 싶었던 글공부, 연기와 운동을 하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보며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또한, 내 꿈만을 좇을 순 없기에 2월까지 수입원을 확실히 하고자 했다. 그중 가장 쉬울 것이라 생각한 것은 학교로 무용강사를 나가는 것이었고, 여러 학교에 지원서를 넣었다. 나름 내 계획에 맞는 멋진 1월을 보냈다. 하지만 그 많은 원서들에 대한 결과는 너무도 조용했다. 몇 번의 면접도 봤지만 결과는 항상… 불. 합. 격!!!!!!!!!!!
내가 불합격을 받을 동안 같이 임용고시를 준비했던 친구들은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대학 동기들은 회사를 다니며 자신의 밥벌이를 시작하고 있었다. 순간이었다. 1월의 여유로움이 조급함으로 바뀌는, 무한함이 막막함으로 바뀌는 것이. 나의 계획들은 무력해졌고, 취업사이트의 공개채용을 찾아보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또, 열심히 자기소개서를 썼다.
그러다 지금의 내 상황을 설명하는 노래 가사가 생각났다.
난 무엇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난 또, 왜 이렇게 열심히일까?
대단한 사람이 되지 않기로 했으면서, 왜 또 무엇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일까?
난 노력에 대한 결과가 나의 가치를 증명하는 수단이라 생각했다.
“나 이만큼 노력했어요. 나 이만큼 뛰어나요. 나 진짜 열심히 살아요. 나 잘했죠?”
날 증명하기에 너무도 바빠, 나를 돌아볼 시간이 없었다. 이 사실을 알았고 1월에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 그렇게 분명 1월에 10개의 목표를 썼음에도, 또다시 무의미한 목표를 위한 노력의 노예가 되고 있다.
난 지금 길을 잃었다.
난 여유로움과 조급함 사이에, 막막함과 무한함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
내 존재 자체로 내가 의미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대단한 사람 말고 건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난 어떤 욕심을 버려야 할까?
인생에 답이 없다는 것을 안다. 결국 선택 아닌가?
그럼 난 이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28살의 나,
난 여유로움을 선택해야 할까 조급함에 합류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