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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지 Jan 24. 2022

9살 때 친구를 잃어버렸다.

있을 때 잘할게


9살 때부터 함께한 친구를 잃어버렸다.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했다. 더 정확하게는 시를 쓰는 것을 좋아했다. 엄마는 언제 가는 이것이 나의 자산이 될 것이라며, 9살 때부터 내가 쓴 글들을 차곡차곡 모아 하나의 공책에 모아두었다. 난 자연스럽게 기쁠 때면, 슬플 때면 화가 날 때면 그 공책에 내 마음을 적었다. 그 공책 안에는 나의 28년의 모든 마음이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기 쓰기 싫은 9살의 나의 마음.

아침 일찍 일어나기 싫은 초등학생 고학년의 나의 마음.

엄마와 아빠가 각자의 길을 가자고 정했을 때의 12살의 나의 마음.

사춘기 시절 가을 냄새에 취해 자신에 흠뻑 젖은 중2병 걸린 나의 마음.

첫 짝사랑을 시작했을 때의 중3의 나의 마음.

무용대회 무대에서 처음으로 희열을 느낀 15살의 나의 마음 등등..


하지만 이제 그 마음을 다신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어졌다.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정말.. 공책에게 미안하다.

사실 1년 반 동안 임용고시에 몰두하느라 글과 거리를 멀리 둬도 한참을 멀리 뒀다. 그리고 임용고시에 떨어지고, 무기력하고 공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잊고자 공책을 찾았다. 당연히 내 책꽂이 어딘가에 있을 거라 생각했다. 웬걸…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는 것이다. 심지어는 그 공책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더라. 마지막으로 내가 그 공책을 본 곳이 어디인지도. 그리고 내가 어떤 글을 적었는지도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다.


와.. 공책을 잃어버린 걸 알았을 때의 나의 감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첫째, 내가 미웠다.

아니 그렇게 너한테 소중하고 또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 공책의 생김새조차 기억하지 못한다고..?

왜 소중한 것을 알면서 소중하게 대해주지 않았을까?

그래서 밤새 생각했다. 공책의 겉표지, 질감 등... 정말 다행스럽게도 하루가 지나니 공책의 생김새는 떠올랐다. 생김새를 기억하고 더 열심히 공책을 찾기 시작했다. 근데 그게 보일 리 있나..

그래서 다음으로 떠오른 감정은 글로는,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답답함이었다. 아니 공책에 발이 달린 것도 아니고, 내가 근 2년간은 만진 적도 없는 그 공책이 사라졌다는 것이 도저히 납득이 가질 않는다. 우리 집에서 내가 찾을 수 있는 모든 곳은 다 뒤졌다. 심지어 쓰지도 않는 캐리어와 부엌 선반까지. 흔적도 없다. 아무런 흔적도 없이 없어졌다.

마지막으로 나를 지배한 감정은… 서러움이었다. 보고 싶어도 다시는 보지 못하는 친구를 떠나보낸 마음이랄까. 언제나 옆에 있을 줄 알았던 친구를 만나러 갔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사실을 직면한 느낌이랄까. 내 모든 것을 거짓 없이 털어놓은 유일한 그 공책이, 어쩌면 내 과실로 인해 사라졌다는 사실에, 내가 밉고, 답답하고 서러웠다.


공책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지 오늘로 8일째.

하나도 나아진 게 없다. 내 감정은 더 격하게 답답하고 서럽다. 하지만 찾을 기미는 눈곱만치도 보이질 않는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 오랜 친구를 그냥 보내주는 것뿐일까…?


공책아. 네가 어디선가 지금  글을 보고 있다면제발 자연스럽게 내가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눈에 띄어줄래? 있을  잘하라는  나도 알아. 이번에  뼈저르게 느꼈단다. 공책아  번만  내게 기회를 주면,  많은 나의 마음을 너와 함께 눌게공책아.. 친구야제발 내게  번의 기회를    없을까..?


있을 때 잘하라는 말.

19년 친구를 잃고 나서야 깨달았다.


오늘 밤도 난 공책을 그리워하며, 공책을 통해 얻은 교훈을 마음에 새기며 잠에 들 것이다.


지금 나의 반성문을 읽고 있는 어떤 누구가 있다면… 나와 같은 미련한 후회는 하지 않길 바란다.


우리… 공책이던, 가족이던, 애인이던, 친구이던, 있을 때 잘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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