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사람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무너지지 않은, 상처받지 않는, 나만의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을 대하는 단단한 어른이 되고 싶다.
20대 초반 다른 사람이 쉽게 던지는 한마디에 무너지는 내가 너무 싫었다. 다른 사람의 평가로 나를 규정짓는 내가 미웠다. 줏대 없이 다른 사람의 의견에 휘둘리는 내가 너무 가볍게 느껴졌다. 그렇게 20대 후반이 된 지금까지 난 단단한 사람이 되기 위해 꽤 오랜 시간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약간은 자부했다. 나 이제 좀 단단해진 것 같다며.
내가 단단해졌다고 느끼면 느낄수록 점점 어른이 되어 가고 있다 생각했다. 또한, 단단해지면 단단해질수록 내 몸의 감각들이 무뎌져 감을 느꼈다. 이상하지 않나? 정신이 단단해지는데 신체의 감각들 까지 단단해지는 것이.
이점이 슬프기도 했다. 강해진만큼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수많은 감정들을, 피부 살결 위로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없는 어른이 되어버린 것만 같아서. 하지만 어쩌겠는가? 단단한 사람이 되는 것이 나의 소원인 것을.
이제 나름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고, 오만한 생각으로 사회에 나갔다. 더 단단해진 몸과 정신으로 사람들을 만났다. 나만의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봤고 사람을 대했다. 그래서 나는 단단한 사람이 되었을까?
난 여전히 무너진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무심코 던지는 말에 무너지고, 연인의 작은 변화에 상처받는다. 아직도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의식하고 가끔은 정치질에 휘말려 내 의지와는 다른 결과를 낸다. 20대 초반과 20대 후반 달라졌다면 달라졌겠지만, 난 여전히 상처받고 아파한다.
한평생 어른이 되기는 할까? 언제쯤 상처받지 않고 무너지지 않을까? 언제쯤 모든 것을 그저 관망하는 단단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여기에 아주 모순적인 감정이 몰려왔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그런 안도의 감정이.
단단해지면 단단해질수록 어른이 되어갔지만, 그럴수록 내 감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순수한 아이 같은 나는 사라져 갔기 때문이다. 단단해지는 게 좋으면서도 무서웠다.
여전히 상처받고 무너지는 나를 보며,
라며 나를 나무랐다. 하지만 저 깊은 마음속에서 순수한 아이는 환호를 질렀다.
저 깊은 마음속 순수한 아이가 환호하면 환호할수록 단단해진 나의 몸의 감각들은 다시 약해졌고, 20대 초반처럼 상처받고 슬펐다. 그리고 그때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를 느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흔들리지 않는 어른이 되고 싶다. 아마 난 계속 노력할 것이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상처받지 않기 위해.
그런데 내 주변에 상처받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어른을 아직 보지 못했다. 때문에 이런 나의 다짐에 좌절하고 있을 저 깊은 마음속의 순수한 아이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단단해져도 여전히 무너지고 상처받고 슬퍼하는 어른이 될 것 같기에.
어쩌면 단단한 어른이 되고자 하는 소원 자체가 잘 못 되었을 수도 있다. 아니 단단한 어른의 정의가 잘 못 된 걸 수도.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무너지지 않는 어른이 아니라 쉽게 무너지지 않는, 상처받지 않는 어른이 아니라 쉽게 상처받지 않는, 나만의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을 대하는 단단한 어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