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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지 Sep 15. 2022

모든 미운 오리 새끼에게

비밀을 알려줄게.

아주 오랫동안 난 내가 미운 오리새 끼라 믿었다. 난 언제나 사고를 몰고 다니는 아이라 생각했다. 어딘가 특별하다 생각했는데, 그 특별함이 긍정적인 의미의 특별함이 아닌 별남을 뜻했다. 하지만 왜인걸? 난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니었다. 난 너무나도 예쁘고 소중한 오리였다.


그렇다면 나 자신을 미운 오리라고 생각하게 된 여러 이유를 돌아보자.


첫 번째 이유는 중학교 때까지 내 주변에는 참하고 요조숙녀 같은 친구들 뿐이었다. 6살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귄 수아라는 친구가 있었다. 같은 나이와 비슷하게 생긴 외모에 우리는 함께 무용을 시작했다. 하얀 피부에 초롱초롱한 눈을 가졌던 인형 같았던 수아는 성격도 차분하고 천사 같은 친구였다.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공주님 같았던 수아의 모습이. 그에 비해 나는 그을린 피부에 여기저기 싸돌아다니기 좋아하는 활동적인 아이였다. 달라도 다른 우리가 함께 있으면 비교가 되기 일수였다. 무용학원 선생님들과 언니들은 비교적 조용한 수아를 좋아했고, 왁자지껄 개구쟁이 같은 나는 그들에게 “수아처럼 조신하게 좀 있어봐 현지야~”라는 말을 들었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별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 내가 사고를 몰고 다니는 말괄량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


요조숙녀 같은 친구는 수아에서 그치지 않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급작스러운 이사를 가게 된 수아와는 가슴 아픈 이별을 했다. 그 후에 무용학원에 유정이라는 친구가 들어왔다. 유정이는 발레를 전공하는 친구로 함께 다니면 쌍둥이라는 질문을 받았을 정도로 자매 같은 외모를 가졌다. 유정이도 정말 천사 같은 친구였다. 조용하고 성실하고 착하디 착한 친구. 유정이와 나는 무용학원의 한국무용(나는 한국무용을 전공했다), 발레의 유망주들로 주축을 이뤘다. 하지만 너무도 다른 우리는 비교되기 딱이었다. 수아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유정이와 비교되며 골칫거리가 되었다. 심지어는 “너 유정이 꼬드겨서 나쁜 길로 가지 마”라는 말까지 들었다(어후 아직도 이 말은 화가 난다. 그래 봐야 내가 했던 것은 밖에 나가서 어묵 사 먹는 거였는데). 나는 무용학원의 미운 오리였다. 그리고 이때 확신했다. 나는 사고를 몰고 다니는 사람이구나.


두 번째, 나를 미운 오리라고 낙인찍은 어른들의 낙인들이 큰 역할을 했다. 인생에 용서할 수 없는 사람 중에는 순천에서 내게 처음으로 무용을 알려준 선생님들이 포함되어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선생님들만 포함되어있다. 내 자신을 미운 오리라 생각하게 된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들.

그녀들은 자매로 순천에서 크게 무용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5살에 엄마를 기다리기 위해 시작한 발레 방과 후에서 무용학원 선생님을 만나게 되어 학원까지 가게 되었다. 처음부터 그녀들이 나를 미운 오리라 낙인찍은 것은 아니었다. 한때는 가장 사랑받던 학생이었다. 귀엽고 톡톡 튀는 아이라 예뻐해 줬다. 엄마가 아빠와 이혼을 하고 가정이 전보다는 어려워지자 그녀들은 나를 불쌍해했다. 불쌍하다며 그들은 개인 레슨을 할인도 해주셨다. 이 점은 아직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때부터 그녀들은 나를 가볍게 대했다.

다른 학생들과 내가 같은 잘못을 해도 잘못에 대한 대가는 극명하게 달랐다. 다른 친구들에게는 말로 주의를 주며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었지만, 나는 사물함에 있는 개인용품들을 밖으로 내 던지며 무용복만 입은 체 밖으로 쫓겨나기 일수였다. 그 빈도가 높아질수록 차라리 무용학원 밖이 더 편해질 지경이었다. 차라리 그때 그냥 짐을 챙겨서 집으로 갈 것을… 어렸던 나는 밖에서 벌벌 떨며 다른 학원 친구들의 불쌍하다는 눈빛을 받아가며 죄송하다고 빌었다. 그 일이 14살짜리가 밖에서 무용복만 입은 체 추위에 떨며 죄송하다고 빌어야 할 일인지 아직도 모르겠다만.. 나는 무용학원의 미운 오리 새끼였다. 학원 친구들도 내가 그렇게 취급당하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다. 나는 그들에게도 사고를 치는 문제아였다. 그리고 나 또한 내가 문제아인 줄 알았다. ‘왜 나는 다른 친구들처럼 조용하게 학원을 다닐 수 없는 걸까?’라고 생각하며 나를 자책했고, 나를 미워했다.


세 번째, 나를 제대로 보는 방법을 몰랐다. 무용을 오래 전공했기며 나는 항상 평가의 대상이 되었다. 무대에서 보기에 몸의 신체 비율이 좋은지 좋지 않은지. 저번 달에 비해 살이 많이 쪘는지 찌지 않았는지. 키가 작은지 큰지. 피부가 좋은지 좋지 않은지. 이쁜지 이쁘지 않은지. 계속되는 평가는 나의 장점보다는 단점에 더 집중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일부러 나의 단점을 말하고 다녔다. 나는 허벅지가 두꺼워, 나는 상체가 너무 길어, 나는 팔이 짧아. 그때는 내가 먼저 나의 단점에 대해 이야기해야 다른 사람들이 지적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내 단점을 부각할수록 나는 그 단점만을 가진 사람이 되어갔고, 나 자신조차도 나를 제대로 볼 수없었다.


그렇다면 나를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을까?

언제 나는 예쁘고 소중한 오리가 되었을까?


그 시작은 고등학교를 진학하고 나서부터였다. 순천의 무용학원을 벗어나 서울의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나를 문제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웬걸. 나는 3년 내내 우등생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가장 많은 상장을 받아간 학생으로 기록될 정도로, 선생님들이 가장 사랑하는 모범생. 생각하는 것보다 나는 똑똑했고, 성실했고, 착했으며 정직했다. 왁자지껄한 사람이 아니라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말괄량이가 아니라 도전심이 강했던 것뿐이었다. 순천의 무용선생님들이 문제아로 낙인찍은 ‘낙인’ 때문에 스스로가 발견하지 못한 나를 발견했다.

미운 새끼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14살 무용복을 입은 체 밖에서 벌벌 떨며 울고 있는 나에게 너무 미안해졌다. 우는 순간에도 자신을 자책하고 있는 그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 순간에 자신을 안아주지 않고 자신을 돌보지 못한 어렸던 내가 애틋했다. 남이 정해버린 틀에 나를 맞춰 나 조차도 나를 문제아로만 생각했던 시간들이 얄미웠다. 정신을 차리고 거울을 깨끗하게 닦고 다시 나를 바라봤다. 단점 투성이었던 나에게서 장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름한 얼굴형, 예쁜 상체, 동글하게 생긴 코까지.

나 자신을 완전히 사랑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남이 찍은 낙인에서 벗어나는데 3년,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데 3년. 나를 있는 그대로 보는데 6년이나 걸렸다. 이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니라 너무도 예쁘고 소중한 오리라고. 튼튼한 나의 다리가 좋고, 짧지만 건강한 나의 팔이 좋고 상체가 길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늘씬한 허리가 좋다. 누가 뭐래도 나는 도전심 강하고 마음먹은 것은 이루는 깡을 가진 사람이고, 가진 게 많은 무궁무진한 사람이다.


미운 오리로 살아온 17년을 통해 나가 얻은 교훈은 딱 하나. 나를 지키는 것은 내 자신을 사랑하는 나의 사랑뿐이다. 나를 지킬 수 있는 것은 나뿐이다. 난 너무 오랜 시간 나를 방치했다. 남이 나를 낙인찍도록, 남이 나를 평가하도록. 앞으로 인생은 남의 평가에 좌지우지될 나는 없을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예쁜 오리만 있을 뿐.


혹시 당신이 미운 오리라고 생각하나? 비밀 하나 알려주겠다.

당신은 미운 오리 아니다. 당신 또한 너무도 예쁘고 소중한 오리이다. 당신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은 사람들의 평가는 집어치우고 깨끗하게 닦은 거울 앞으로 가보자.

그렇다면 당신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예쁜 오리가 웃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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