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염지 Aug 03. 2020

직관적인 내가 좋다.

직관적인 사람의 득과 실에 관하여




  나를 논할 때

 ‘직관적인 사람’ ‘자유로운 사람’ ‘즉흥적인 사람’ ‘실천력이 강한 사람’

이라는 설명을 뺀다면 나는 아마 한낮 시체일 뿐일 것이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은 위의 4가지로 전부 설명 가능하다.

 



'직관'의 의미에 대해 자세하게 알게 된 시점은 저번 학기 대학원 교육공학 강의를 수강할 때였다. 그전까지  지 내가 알고 있던 대략적인 직관의 의미는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사람'  '흐름을 읽는 사람'이었다. 직관의 의미에 대해 이 두 가지 이상도 이하도 고민해보지 않았고 다양한 뜻이 있을 것이라곤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다. 나의 이런 편견은 대학원 교육공학 강의를 통해 완전히 바사삭 깨지게 됐다. 교수님이 직관에 관해서만 4시간 강의를 진행할 만큼 직관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대략적으로 설명하면 직관적인 사람은 합리적인 사람과 반대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인간은 완전히 합리적일 수 없다는 전제로 시작하여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원인을 과거에서 찾지 않고 현재에 집중하며,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즉흥적이며인 사람이라는 설명이었다. 직관에 관한 수업을 들으면서 '어..? 이거 완전 나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 배우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이 생기면 극도로 흥분하고 설레 하며 행복해하는 사람이다. 더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꿈이라는 환상에 빠져서 살아야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하루빨리 이루고 싶어 최대한 빠르게 시작하다 보니 실천력이 강한 사람이 되었다. 예를 들어 대학을 졸업하고 백수의 삶을 살고 있을 무렵 난 침대에 누워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었다. (이 당시는 유튜브가 레드오션이 되기 전이었다) 그 영상은 영국에서 사는 20대 후반 여성이 실버 버튼을 개봉하는 영상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영상을 보던 나는 갑자기 영상 속 크리에이터처럼 멋진 영상을 만들고, 많은 구독자 수를 얻어 실버 버튼을 개봉하는 리뷰 영상을 찍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이 시기의 나는 인생에 있어서 가장 암울하고 적적한 삶을 살고 있었다. 대학교 내내 하고 싶은 것, 원하는 것, 목표한 것들을 이루기 위해 누구보다 활기 넘치게 살아오다 대학을 딱 졸업하고 나니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무기력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생긴 꿈은 다시 나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줬다. 마음을 먹은 지 1시간 만에 영상 편집기를 다운로드하고 유튜브를 보며 편집 방법을 배웠다. 그리고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실천력이 좋다고 한들 결과가 항상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2년 반전부터 시작했지만…. 아직도 구독자는 78명뿐이다. 힛^^:

ㅎㅎㅎㅎㅎ나의 소중한 78명의 구독자분들


 즉흥적인 나의 면모를 볼 수 있는 또 다른 예는 대학교 때 캠퍼스의 자유로움을 느끼고자 예쁜 테이크아웃 컵에 담아주는 맥주를 사 들고 강의를 들어가기도 했고, 새벽에 갑자기 바다를 보며 조개를 먹고 싶어 을왕리로 떠나기도 했다. 유럽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유럽이 너무 좋아 계획에도 없던 교환학생을 떠났고,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에 갑자기 컴퓨터를 켜 소설을 작성하기도 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을 좋아하고,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생기면 불도저처럼 달려드는 나의 성향 덕분에 실천력이 강한 사람이 되었고, 많은 것을 경험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나의 성향이 꼭 좋은 결과만을 내었던 것은 아니다.






시작은 창대하지만, 그 끝은 미미하리라.

 

 나는 많은 것에 무모하게 도전하고 시작한다. 처음에는 창대한 꿈을 가지고 호기롭게 시작하지만, 그 호기로움이 그리 오래가지는 못한다. 위에서 잠깐 언급했듯 유튜브도 처음에는 모든 열과 성을 다했지만, 구독자가 오르는 속도가 더뎌지자 흥미가 급격하게 낮아졌다. 유튜브와 권태기를 보내고 있을 무렵 친한 대학 선배가 ‘브런치’에 자신이 쓴 글을 소개해줬다. 선배에 글을 읽자 내 안에 잠자던, 한때 작가가 되고 싶었던 나의 꿈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더니 또다시 무모한 도전 정신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선배와 헤어지고 집에 돌아와서 바로 노트북을 꺼내 밤새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나씩 두 개씩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 처음에 불타던 나의 열정은 점점 흐려졌고, 글을 쓰는 빈도가 많이 느려졌다..^^

이 외에도 블로그 운영, 시를 써서 올리는 인스타 계정 등 많은 것들을 시작했지만, 유지되지 못한 채 남아있다. 이렇듯 나는 도전에는 두려움이 없지만, 항상 그 마무리가 미약하다. 결과가 내가 기대했던 것만큼 나오지 못한 것은 아무런 상관없다. 도전해 봤기에 온전한 나의 경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경험이 되기 전에 놓아버리는 허약한 끈기다. 내가 직관 모델을 더 긍정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런 끈기를 더 다지고 다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시작만큼 끝도 창대해질 수 있도록 말이다.



계획 없는 자는 두 배로 고생할 지어다.

 대학교 시절 네덜란드로 교환학생을 떠났을 때 일이다. 학교가 봄 학기를 마치고 10일 정도의 방학에 들어갔다. 원래는 아무런 계획 없이 네덜란드 국내를 여행할 생각이었다. 그러던 중 학교 현장체험 학습으로 간 사진 전시회에서 사막 사진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죽기 전에 아프리카 한 번은 가봐야지. 아 갈 수 있다면 해외에 나와 있는 지금 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가기는 무서워서 영국에서 교환학생 중인 대학교 친구에게 연락해 아프리카 여행을 제안했다. 친구도 나만큼 자유로운 영혼이었기에 제안을 받아들이고 떠나기 3일 전에 유럽과 비교적 가까운 모로코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나, 그 친구 그리고 그 친구의 친구가 함께 가게 되었고, 방학이 일찍 끝나는 두 친구를 위해 모로코 여행은 4일로 잡았다. 남은 6일은 모로코와 가깝게 있는 스페인까지 겸사겸사 여행하면 좋을 것 같아 모로코에서 스페인으로 가는 비행기까지 예약했다. 그렇게 나의 여행 계획은 끝이 났고 3일 후 모로코로 떠났다.



낙타 최고
아름다웠던 모로코



 모로코에서는 환상적인 시간을 보냈다. 사막도 아름다웠고, 사막에 누워서 보는 별들은 더할 나위 없이 환상적이었다. 가이드가 있어서 최대한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었고, 우리 셋은 완벽한 모로코 여행을 했다. 서로 헤어질 시간이 되어 각자 예약한 비행기 시간에 맞춰 우린 헤어졌다. 나 또한 행복한 마음으로 스페인으로 향하는 티켓을 발급받기 위해 공항 수속 창구에 갔다. 여권을 승무원에게 건네고 티켓이 발급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지체되는 것 같아 승무원에게 물어봤다. “무슨 문제 있나요?” 이 질문을 할 때까지 나는 아직도 행복한 상태였다. 하지만 승무원의 대답은 한순간 나의 기분을 망가트렸다. “당신에게 티켓을 발급할 수 없습니다. 스페인에서 당신 입국을 제한하고 있어요.” 네?! 이게 무슨 말이죠?!


문제의 거주증

               


 어떻게 된 건지 자세히 들어보니 내가 네덜란드 임시 거주증을 가지고 오지 않아 생긴 문제였다. 모로코로 여행 전 나는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여행을 다녔다. 유럽은 하나의 연합국가이기 때문에 거주증을 지참하지 않아도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아무런 계획 없이 모로코로 떠난 나는 모로코도 유럽 국가인 스페인과 붙어 있으니 다른 유럽 국가와 다를 바 없을 것이라 착각했다. 그래서 네덜란드를 나설 때 맨몸으로 나섰던 것이다. 하지만 모로코는 엄연히 유럽이 아닌 아프리카였고, 해외에서 거주한 지 3달이 넘은 난 거주증이 없다면 불법 입국자가 되는 것이었다. 결국의 나는 모로코 공항에서 미아가 되었고 무서움에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공항을 방황했다.

 다시 정신을 부여잡고 승무원을 찾아가 울먹이며 물어봤다. “그러면 저는 어떻게 하면 되나요?” 승무원은 대답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던지 다시 네덜란드로 돌아가세요.”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기에 나는 네덜란드로 가는 당일 티켓을 알아봤다. 당일 비행은 다 떠난 상태였기에 다음 날 떠나는 티켓을 정가로 구매했다. 그렇게 나는 스페인으로 떠나는 당일 티켓을 날렸다. 또 사도 되지 않았던  네덜란드로 향하는 티켓을 구매하고, 심지어 다음날 네덜란드에 도착해 스페인으로 떠나는 비행기 티켓까지 다시 샀다.


 만약 내가 조금이라도 모로코라는 나라에 대해 검색해 보고 계획을 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문제였다. 네이버에 ‘네덜란드에서 모로코 여행’이라고만 치면 ‘네덜란드 장기 체류자는 꼭! 거주증 챙기세요’라는 조언이 여기저기 뜨는데... 계획하지 않은 나. 즉흥에 목숨 건 나. 결국 돈을 두 배나 쓰고, 또 엄마에게 욕은 욕대로 먹었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처음으로 돈 걱정하지 않고 COOL하게 티켓을 사볼 수 있었다. 또한, 하루 동안 지낼 곳이 필요해 급하게 호텔을 예약했는데, 내 인생에서 최고급의 호텔이었다. 무계획은 뜻하지 않은 경험을 내게 선물해 주었지만... 무계획으로 인해 내가 치른 대가를 생각하면, 인생에 있어서 약간의 계획과 조사는 필요하다는 사실을 되뇌게 된다.


 나는 직관적인, 자유롭고 즉흥적인 내가 좋다. 이런 성향은 나를 재미있고 다양한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줬고, 이를 통해 취득한 성공과 경험은 또 다른 도전을 하게끔 해주었다. 이번 에세이를 쓰는 도중에도 당시에 내가 너무 가엽고 웃겨서 낄낄낄 깔깔깔 거리면서 작성했다. 나의 성향이 앞에서 말했듯 항상 좋은 결과만을 가져왔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정확하게 알고 있으니, 실보다는 득이 더 커질 수 있도록 더 조심하고 신경 써보도록 노력 중이다.

나의 끝이 시만큼 창대해지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행복의 기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