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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지 Aug 19. 2020

여자도 골프 친다.

나 때는 말이야를 영접하다.

긴 장마가 가고 뜨거웠던 이번 주말, 고향에 내려갔다 다시 서울로 올라가려고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도 청주에서 골프 라운딩이 있어 골프채를 들고 역으로 가기 위해 함께했다. 콜택시가 도착했고, 나는 바로 차에 탔고 엄마는 트렁크에 골프채를 실은 후 '아이고 덥다'라고 말하면서 뒷 자석에 몸을 실었다. 그러자 기사분이 매우 불쾌하다는 듯 엄마의 혼잣말에 대답했다.


"더운데 골프는 왜 치러가?!"


엄마는 상황을 유연하게 넘기기 위해 하하 웃으면서 자연스럽게 넘기려 했다.

그러자 기사분이 그 웃음을 자기 말에 동조라 알아 들었는지 한마디 더 보탰다.


"정부에서 코로나라고 돈 같은 거 지원할 필요도 없어. 감사한 마음도 없이 훌훌 쓰는데. 어?

나 때는 말이야~ 어디서 감히 여자가 골프채에 손을 대?!"


네? 할아버지? 뭐라고요?


그 기사분의 터무니없는 소리는 역에 도착할 때까지 이어졌다.


                                                                                                                                                                                                                                                                                                                                                                                                            



택시 안에서 '어디서 감히 여자가'라는 정말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문장에 주체할 수 없는 화가 났다. 여자를 무시하는 말을 직접적으로 들어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만난 지 1분도 채 되지 않은 쌩판 처음 본 60대 후반의 아저씨에게서 말이다. 가장 화가 났던 것은, 택시에 남자와 함께 탔었어도 저 할아버지가 엄마와 나에게 보랏 듯이 저런 낡아빠진 말들을 할 수 있었을까라 생각했을 때 대답이 'NO'일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남자와 여자를 이분법적으로 나눠 따지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


'여자니깐 조신해야지' '여자니깐 요리를 잘해야지' '남자는 남자다워야지' '남자는 가정을 책임져야지'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조신하게 태어나길 태어난 사람은 조신하게 사는 것이고 왈가닥 하게 태어난 사람은 왈가닥 하게 살면 그만이다.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요리를 하면 되는 것이고 경제적 능력이 되는 사람이 가정에 더 큰 보탬이 되면 그만 아닌가.


어떤 사람은 나이 드신 어르신이 옛날에 헤어 나오지 못하고 하는 소리라 생각하고 가볍게 무시하지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냐고 할 수 있다. 그들 말처럼 그냥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많고도 많은 사람 중에 고작 한 명이 말한 쓰잘 떼기 없는 헛소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어느 순간 날이 서기 시작했고, 불편한 상황을 마주하게 하는 사회가 나를 민감하게 만들었다.


나는 요리하는 것을 무지 좋아한다. 또한, 작고 소중한 것들을 보면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예를 들어 강아지, 고양이 그리고 아가들을 보면 너무 귀여워 꽉 안아주고 싶어 진다. 하지만 내가 예민해지기 시작하면서부터 내가 좋아하는 것들 조차 의심하기 시작했다. 과연 정말 내가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걸까? 사회에 학습된 것은 아닐까? 초등학생 때부터 오빠도 함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만 칼질을 가르친 어른들의 편견의 영향은 아녔을까? 내가 아가를 좋아하는 것도 사회에 학습된 모성애는 아닐까? 물론 다수의 남자는 어렸을 때 자기 의지와는 별개로 요리 칼 대신 공구를 들었을 것이다. 또한, 항상 단단하길 강요받기도 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자 염현지' '남자 김민석'이 아니라 각 개인을 '인간 염현지' '인간 김민석'으로 바라보아줬으면 한다. 여자 남자라는 틀 때문에 상처 받는 사람이 너무도 많은 세상인 것 같다.

주변 남자 친구들에게 '너 다시 태어나도 남자로 태어나고 싶어?'라고 물으면 10명 중 9명은 '응'이라 대답한다. 하지만 주변 여자 친구들에게 '너 다시 태어나도 여자로 태어나고 싶어?'라고 물으면 10명 중 6명은 '아니'라고 대답한다. 나 또한 다음 생에는 꼭 남자로 태어나 보고 싶다. 밤늦게 타는 택시를 편안하게 타보고 싶고, 혼자 있는 자취방에서 편안하게 음식을 배달시켜 먹고 싶다. 공중 화장실에서 편안하게 볼일을 보고 싶고, 친구들과 기쁜 마음으로 놀러 간 숙소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몰카 탐지기를 작동시키고 싶지 않다.

소수의 집단의 답이기 때문에 일반화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내 주변의 다수의 여자들은 '여성'으로 살면서 만족감보다는 불편함을 더 많이 느끼고 있다.


제발 내가 아이를 낳아 내 자식이 크는 세상은 내 아이에게 '여자' '남자'로의 역할을 강요하지 않는 사회로 발전되었으면 한다. 내 아이가 태어난 모습 그대로, 타고난 성향 그대로를 실현시키며 살 수 있는 지금 보다는 모두가 살기 편한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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