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오빠, 할머니, 할아버지, 큰 이모부와 큰 이모, 작은 삼촌과 숙모. 대부분 가족에게서 마음 저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무한한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이런 감정은 가족에게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나의 편견을 완벽하게 깨준 3명의 여자들이 있다.
그녀들은 17살 때부터 10년간 꾸준히 내 옆에서 증명해주고 있다.
가족이 아닌 '남'에게도 무한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2019년의 내새끼들
그녀들은 나의 고등학교 친구들이다. 철없고 여리고 맑기만 할 때 우리는 서로를 만났다. 우리의 만남을 생각해보면 운명이라도 되는 듯 서로를 알아봤다. 학기 초반에는 각자 다른 무리에 섞여 지냈었다. 그러다 정확히 어떤 계기로 친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신을 차려보고 나니 마치 자석처럼 항상 함께했다.
2012년의 내새끼들
처음부터 그녀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느꼈던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엄마 나는 평생 내 친구들과 함께 할 거야'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러면 엄마는 '평생 갈 것 같지? 나중에 대학 가고 바빠지면 다들 연락도 뜸해져 멀어질 수도 있어'라고 답했다. 엄마의 이런 답을 들을 때 항상 다짐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몸이 멀어지더라도 매일매일 연락해야지!'
엄마의 예언은 나를 향한 충고였을지도 모른다. 나의 다짐의 배신자는 바로 '나'였다. 핫^^
대학에 진학해 새로운 환경에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느라 그녀들에게 소홀했다. 매일 연락하겠다는 다짐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녀들이 먼저 연락해야만 생사를 알려주는 정도였다. 말과 다르게 행동하는 나에게 그녀들은 서운한 마음을 몇 번이고 전했지만, 나는 몇 번이고 무시했다. 말하지 않아도 엄마만큼 나의 생일을 잘 챙겨주는 그녀들이었지만, 나는 남보다 못하게 매번 그녀들의 생일을 까먹었다. 그때의 난 좋은 친구는 아니었다. 더 정확하게 이기적인 친구였다.
하지만 그녀들은 그 자리 그대로 나를 기다려 줬다. 연락이 뜸하면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해줬다. 갑자기 연락하면 마치 어제 만났던 것처럼 반갑게 받아줬다. 만약 그때 그녀들이 나를 포기했다면 지금의 난 정말 불완전한 인간이었을 것이다.
2014년의 내새끼들
그녀들의 존재 덕분에 현재의 나 자신이 행운아라 느껴진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인간관계에 집착하지 않는 쿨한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살아가다 보면 모든 것을 함께 나눴던 사람과 남이 되기도 한다. 제일 친했던 사람이 어느 순간 제일 불편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만약, 내게 그녀들이 없었더라면 난 위 같은 상황을 마주 할 때마다 세상을 잃어버린 사람 마냥 힘들어했을 것이다. 모든 인간관계에 집착했을 것이고, 아닌 인연을 나주지 못한 체 불행을 안고 살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난 위 같은 상황을 마주할 때면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용감하게 상황을 마주한다. 아닌 관계에 집착하지 않고 놓아줄 줄 아는 건강한 인간관계를 쌓는다. 왜냐하면 나의 뒤에는 항상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는 그녀들이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우리는 10년 동안 함께하면서 '쟤는 왜 그럴까?'라는 의문을 가져 본 적이 없다. 어떤 갈등 상황이 생기면 '넌 왜 그래'가 아닌 '쟤는 원래 저런 애야'라는 태도로 인정하고 만다. 우리는 어떠한 한 행동으로 서로를 판단하지 않는다. 아니 절대로 판단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우리는 10년 동안 단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다. 나 또한 그녀들 앞에서는 가장 본연의 나로 돌아갈 수 있다. 술을 못 마시면 술을 못 마시는 대로. 독실한 기독교인 친구를 위해 일요일은 절대로 약속 잡지 않기로. 사진 찍기 좋아하는 친구들 위해 이쁜 카페 가면 그 친구가 만족할 때까지 같이 사진 찍어주기로. 12시면 땡 하고 자야 하는 친구는 12시면 자게 내버려 두기로.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든든하고 행복한 일 인지 요즘에서야 더 절실히 느낀다.
화성, 안성, 신림, 신설동에 사는 우리는 자주 만나지 못한다. 기껏해야 1년에 5번 정도 만난다. 하지만 매일 보는 어떤 사람보다도 깊고 단단하다.
2019년의 내새끼들
난 이제 그녀들이 나의 가족만큼 소중하다. 그녀들이 슬프거나 속상하거나 아프면 눈물이 난다. 그녀들의 고민이 마치 내 고민인 마냥 고민하게 되고, 좋은 곳을 보면 그녀들과 함께 하고 싶다. 그녀들의 성공을 누구보다 진심을 다해 축하해줄 수 있고, 그녀들의 행복을 누구보다도 바란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그녀들이 다경이 이고,혜정이 이고,선민이 이기 때문이다. 무한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해 준 그녀들에게 너무나도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