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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기쁨 Oct 14. 2019

나와 마주하는 순간.

괜히 슬픈 날도, 아픈 날도, 행복한 날도. 


31.


여행을 하다보면 그런날이 있다. 괜히 지치는날. 괜히 슬픈날. 

제일 서러울 때는 아플 때 인거 같다. 너무 아픈것도 아니고 애매하게 아플때가 더 서럽다.정말 너무 아프면 아무 생각도 없이 약먹고 자면 되지만, 애매하게 아플경우는 아파서 이걸 못하고 저걸 못하고 이런 저런 핑계가 붙으면서 괜히 내 시간이 아까워지는 속이 상하는 이유 때문이었다. 


타지에 있으면서 아픈적이 크게 세번이 있는데, 한 번은 헝가리, 한 번은 탄자니아, 한 번은 태국이다.


그 얘기를 한번 써보려고 한다. 


부다페스트에서 있던 일이다. 

유럽여행중 돈을 아낄려고 남녀가 같이 잘수 있는 호스텔에 머물렀는데 6명인 방에 나를 제외하곤 5명이 다 남자였다. 이날은 잠을 정말 제대로 못잤던 날이었는데, 문제는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밤마다 들리는 코골이 때문에 결국 선잠을 잤던, 아마 채 3시간도 못잤던 그런 날이었다. 그래도 여행이라고, 다음날 점심을 같이 먹을 동행을 구했다. 그러나 잠을 못자서인지 탱탱 부은 얼굴과, 온 몸이, 무거우면서 뻐근했다. 그런 상태에서 여러곳을 걸어다녔으니, 몸이 병날 수 밖에. 

아니나 다를까 저녁이 되니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결국 저녁을 먹지 못하고 호스텔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침대에 누웠는데 또 잠을 설칠 생각을 하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 래서 그날은 그래서 바로 리셉션으로 가서 돈을 더 줄테니 여자방으로 바꿔달라고 했다. 


방을 바꾸고 약을 챙겨먹었다. 그리고 다시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오늘 나의 하루는 어땠는지, 여행이 즐거웠는지, 피곤한 탓에 이내 곧 잠들었지만 

이런것도 경험이며, 교훈을 얻었으니 그걸로 만족해 라는 생각을 하며 잠들었던것 같다. 


'나도 돈을 낸 손님이니 꼭 컴플레인을 할 것.'




해외에 있으면서 죽을만큼 아팠던 나라는 아마 탄자니아가 처음일 것이다. 나는 작년, 탄자니아에서  해외근무를 했었다. 여느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금요일 저녁,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뭔가 아픈거 같은 느낌을 받았다. 불금은 아니지만 소소하게 야식을 만들어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것을 좋아하는 나로선, 이 아픈 느낌이 싫었다. 괜히 나의 소중한 시간이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픈건 더 최악이라는것을 알기에 바로 잠을 청했다. 한 참을 자다 깨서 시계를 보니 새벽 2시쯔음 이었다. 몸이 안좋은것 같아서 한 알을 꺼내 먹었다.그렇게 다시 자고 일어나니 낮 12시. 회복의 기미가 없어, 침대 옆에 둔 알약을 더 먹으려다가 약효가 없다는 사실에 순간 짜증이 나 약을 팽겨치곤 잠이 들었다. 


그날 오후 8시 쯤, 문 두드리는 소리에 깼는데, 직장 동료였다. 

정말 날 부르는 소리에,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타지에서 아프면 개 고생이라는 말을 온몸으로 실감을 했다. 


아픈 탓에 문 잠그는 것도 까먹은채 잠을 잤는데, 그 덕에 문을 열고 들어와서 내가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알고 다들 말라리아가 아니냐며 했지만, 다행히 주말이 지난 검사에서는 말라리아는 아니라는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증상은 정말로 비슷했다. 온몸이 부서지는 아픔이랄까, 지금까지도 잘 설명이 잘 되지않는다.

그렇게 한 5일을 쉬고 나서야 몸이 걸을 만 해졌다. 


아이폰에는 기본 건강앱에 내가 얼마나 걸었는지 알려주는 어플이 있는데, 아팠던 날과, 그 다음날의 걸음 걸이는 0이었다. 




태국, 치앙마이라는 도시에서 한달 살기를 하려고 넘어갔던 나는 2주동안은 에어비엔비에 있고 나머지는 호스텔에 머물며 지냈는데, 그 동안 정말 잘 맞는 동행들을 만나서, 3일동안 모든 시간을 함께했었다. 빡(?)세게 논 탓인지, 체력이 바닥남을 느끼고 그 다음날은 기필코 쉬겠다고 마음 먹고, 하루종일 침대에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를 쉬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벽부터 아프기 시작하더니, 온몸이 불덩이가 되었다. 이렇게 아픈와중에도 어제 놀껄- 이라는 생각이 들어 친구한테 메세지를 보내니, 아직 덜 아팠단다.


친구의 말이 맞았다. 덜 아팠다. 

왜냐면 그 다음날은 정말 미친듯이 아팠으니까, 기억이 나는게 없다. 너무 아파서, 여행을 하며 사귄 친구에게 약을 사달라고 전화를 하고 잠에 들었던것 같다. 얼마나 잤을까,  나를 흔들어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친구는 약을 건내며,  먹고 자라고 했다. 고마워- 라는 한마디를 겨우 뱉고 약을 먹고 나는 잠을 잤다. 다행히도 그 약을 두번을 먹고 나니, 몸이 한결 괜찮아졌는데, 알고 봤더니 댕기열에 걸리면 먹는 약이라고 한다. 말라리아 같은 병을 걸려봤으니, 다른 병은 내성이 생겨 걸리지 않을줄 알았는데- 이런 생각하니 얕은 웃음이 터졌다. 그래도 몸이 한결 나아진 기분이 들어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에 발을 딛였다. 


"Are you feel better? 괜찮은 것 같아? " 

아랫층을 쓰던 친구가 말을 걸었다. 


"a lot better.정말 많이 괜찮아졌어"

"you have a good friend. 너 좋은 친구가 있는것 같아" 


무슨 말인가 하니,  내가 쓰는 방은 호스텔이라 8명이서 같이 쓰는 방이었다. 그러다 보니 에어컨의 온도는 항상 낮게 낮춰져 있었는데,  알고보니 약을 사다준 친구가 같은 방 사람들에게 말을 해서 온도를 높여 놓고 나갔더란다. 3일의 아픔은 끔찍했지만, 이런 배려심이 깊은 친구를 사귀었음에 감사하며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밥 먹자-" 



32.


다른 아팠던 날과는 다르게 오늘은 괜히 지치는 날이다. 이 여행을 끝내고 돌아갈 생각에 속상함이 먼저 올라와 정말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 내지 않고 울었다. 마음이 속상해서. 모두가 여행을 끝내기 싫어하겠지만, 오늘은 나에게 이상하리만큼 시간이 가지 않았으면 하는 날이었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생각하며 창밖을 봤다. 열어논 창밖으로 여름이지만 제법 차가운 공기가 창문으로 들어온다. 내일은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는데, 내일 친구와 클라우슨 패스에 가기로 약속을 했다. 그래 예쁜걸 보면 좋아지겠지. 크게 숨을 쉬었다. 


그리고 

속상한 마음은 묻어두고 잠을 청했다. 



33.

클라우슨 패스에 왔다. 차가있는 친구 덕분에 금방 왔지만, 저멀리 보이는 돌로된 정상까지 올라가자고 해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 오를때마다 솔직히 짜증이 났다. 발 을 한 발 자국 도 때기 싫어서인지,  가방이 괜히 무겁게 느껴져서인지,  뭐 때문에 이렇게까지 속상해 하야 하나 화가 났다. 그렇게 땅만 보고 걸어 올라갔다. 한참을 걸어 올랐을까, 잠깐 쉬려고 고개를 드는 순간, 나의 짜증은 감탄사로 변했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돌산 왼쪽으로 보이는 설산 그리고 내 앞으로 보이는 푸릇푸릇한 산. 그 와중에 시시 때때로 바뀌는 구름은 감히 감탄을 할수 밖에 없었다. 한참을 봤을까, 불현듯 떠오른 짜증의 이유. 돌아갈 생각을 해서였다. 나는 이내 지금 이 시간의 집중을 해보기로 했다. 지금만 생각하자.


'오늘의 목표는 정상을 찍는 것.'



34. 


가파르다. 운동을 좋아하는 나지만, 가파른 산길을 오르려니 절로 땀이 났다. 중간 중간 멈춰 물을 함께 나눠 마시고, 친구가 가져온 에너지 사탕을 먹으며 조금씩 오르다 보니,  첫 번째 중턱을 넘었다. 괜히 뿌듯해 친구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리고 평평한 곳을 찾아 앉아, 어제 삶아놓은 감자를 꺼내 나눠 먹었다. 


산에서 감자 먹어봤는지, 정말로 맛있다. 앞으로 산행을 할때는 꼭 감자를 삶아갈거다. 


35. 


간식을 먹으며 눈앞에 펼처진 그림을 오래오래 감상했다. 그 그림을 오래오래 감상하고 싶어서 음식을 최대한 천천히 씹었다. 아주 천천히.이 순간을 잊고 싶지 않아서.



36. 


카메라를 꺼내들어,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내가 과연 나중에 기억할수 있을까, 내 기억을 미화시키기 싫어 동영상, 사진 상관없이 찍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행복한 표정으로. 그러고 다시 떠올랐다. 나는 분명히 억지로 왔었는데, 누구보다 열심히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오늘의 나를,

 이 시간의 나를 기억할 것. '



37. 


몇일 남지 않은 시간, 벌써 스위스에서 생활이 2주가 넘어갔다. 그렇기에 친구와 함께할 시간도 줄어든다는 뜻이다. 이제는 어디든 가자고 하는 친구와 함께, 아침 일찍  밖으로 나섰다. '여기서 30분이면 가'라는 곳.Briston.

케이블카에 올랐다. 꽤 높은곳이라 올라가는 순간 조금 아찔했지만,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다르게보이는 산들이 마음을 안정시켜 주었다. 케이블카가 멈추고 내려서 천천히 둘러보며 호수가 있는 곳으로 걸었다. 


예쁜 사진 스팟에서 사진도 찍고, 산장에서 시원한 음료도 시켜먹었다. 그리고 다시 걸어 호수에 도착.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냥 이 자연을 만끽했다. 수건을 깔아놓고 누워서 낮잠도 자고, 태닝도 하고, 일기를 쓰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다 배고프면 가져온 감자칩을 꺼내 먹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잘한 선택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38. 


나의 여행의 목적은, 나의 행복이다. 모든 순간, 나를 위해. 

삶을 살아가면서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유일하게 내 마음대로 할수 있는 시간이 여행이기에, 

나는 그래서 더욱 여행을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39. 나는 Uri지역에 있으면서 그 유명한, 인터라켄, 그린델발트 이런곳은 생각에 나지 않았다.

어디가도 예뻤던 스위스.

정말 스윗스.


40.

어디에 있는가- 라는 점이 나에게 정말 중요한 줄 알았다. 

하지만 '어디'라는 장소라기 보단 '지금'의 나의 기분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현재'라는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모든이들 행복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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