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염기쁨 Oct 22. 2019

행복한 날의 끄적임.

스위스에서

 41.


저번 스위스를 여행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체르마트에 가지 못했던 것인데 그렇기에 이번만큼은 체르마트에 오래 머물고 싶었다. 그러던 도중 인터넷으로 발견한 우연한 기회에 좋은 숙소에서 비교적 싼값으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떠나게 된 체르마트(Zermatt) 여행, 우리(Uri)라는 지역을 벗어나 가고 싶었던 곳에 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하게 해 주었던 어느 하루, 끄적임


42.


체르마트에 있던 순간은 스위스에서도 단연 기억에 오래 남는 순간이다. 야크 트립을 신청해 다녀오게 된 체르마트, 전에도 스위스를 왔었지만 마터호른을 보지 못했었기에 기대하고 기대했던 여행. 대략 5시간을 걸쳐 도착했지만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설렘이 앞서서일까.


그렇게 몇 분을 걸어서 도착한 숙소, 하우스 지기분들은 어떤 분들일까, 혹여나 맞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하나, 잠깐 생각하고 있던 찰나에 마중 나왔던 인 오빠. 첫 만남이 어색하긴 했지만 서로의 어색함을 풀기 위해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어쩌면 식상했던 몇 마디가 대화할 수 있는 물꼬를 터 주었고, 잠깐 했던 걱정들은 이내 사라졌다. 오빠의 아내 미희, 같은 날 도착한 친구 상현이(곤돌라를 타고 올라오지 않은 유일한 게스트일 것이다) , 그리고 마지막 게스트 진우와, 현우 까지. 이렇게 모든 게스트가 모였다.

우리의 첫 만남은 이러했다. 각자 장을 봐왔지만 저녁을 같이 만들고, 같은 식탁에 둘러앉아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서로의 관심사와 공통사를 찾으며 삶을 나누며 웃던 시간이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식구가 되었다.


이 중, 누구는 여전히 여행 중이고, 누구는 여전히 스위스에서 게스트를 받고 있으며, 누구는 처음으로 혼자 하는 여행을 떠났다. 누구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을 하고 있을 것이고, 누구는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 제자리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함께했던 그 시간이 참으로 그립다. -(인 오빠, 미희, 상현이, 진우, 현우를 생각하며)


43.


트레킹을 하는 날이었다. 같이 체크인을 한 상현이와 진우, 현우를 꼬셔 다 같이 산행길에 올랐다. (원래 상현이는 다섯 개의 호수를 다 돌 예정이었고, 진우와 현우는 고르너그라트를 가려고 했다.) 그렇게 출발한 길, 그리 힘들지 않은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이즈가 맞지 않았던 신발 때문에 발이 너무 아팠고, 생각보다 더 멀었던 길이라 꽤나 힘들었다. 그렇지만 쉴 때면 서로 음식을 나눠 먹고, 뒤쳐지는 사람을 기다려주고 끌어주며 그렇게 오른 끝에 슈 틀리 호수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해서 보이는 호수에 풍경에 우리들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고 가져온 백패킹 용품들을 꺼내고 앉아 한참을 바라봤다. 가만히 바라만 보아도 좋았던 마테호른, 그리고 좋았던 사람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서로 웃고 떠드느라 내려오는 곤돌라마저 놓칠 뻔했지만 단연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은 날이 아니었나 싶다.  

.

그날의 분위기를 기억하고 싶어 남기는 글.


44.

서로가 새벽 5시 반부터 졸린 눈을 비비며 해가 마테호른에 비추기를 소망했다. 우리의 바램을 들었을까, 그렇게 마주한 황금 마테호른, 모두가 예쁘다는 감탄사를 뱉고는 아무 말 없이 한참을 봤다. 하지만 이내 졸음이 쏟아졌다. 어쩔 수 없다. 카메라를 세워 놓고는  “카메라가 우리 대신 다 봐줄 거야” 하며 각자의 방에 들어가 잠을 청했던, 그런 날.


45.


서로 아쉬움을 고하는 체르 마트에서의 마지막 날이 왔다.

오늘만큼은 푹 잘 수 있겠구나, 싶었던, 눈을 뜬 지금 시각 9시 22분.

이제 느긋하고 늘어지게 아침을 먹어볼까


내가 좋아하는 커피, 그리고 멋있는 뷰, 정말 최고가 아닐 수 없다.


46.


다시 돌아온 uri. 기차로 5시간이었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창밖의 풍경이 아름다웠기 때문. 


엄마는 한 번은 그랬다. 시골에서 자란 엄마는,

그 풍경이 뭐가 그렇게 좋냐며, 시골 같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기차로 지나가는 구간 중

우리가 좋아하는 지역은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는 시골인 경우가 많다.


나는 도시에서 자라서 그런지, 

시골이, 자연이, 훨씬 더 좋다.  


스위스에서의 하루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생각하니 아쉬운 밤.

이 아쉬운 감정을 잊지 않게 펜과 노트를 꺼내는 밤.

노트북을 키는 밤.




47.


다들 잠든 밤, 1층으로 내려와 소파에 앉아 나는 노트북을 꺼내 들었다.

아무 생각하지 않았다. 고양이 섈리가 창 밖 너머로 보인다. 들어오고 싶어 보여 문을 열어주니 냉큼 들어온다. 그러고 나서는 소파로 폴짝 올라간다. 개냥이라는 별명이 찰떡인 섈리는, 내 옆자리에 앉아 애교를 한껏 부렸다. 그르렁 되는 이소리. 이 자리, 이 분위기가 그립겠지.

정말로 그립겠지.


48.


따듯한 커피를 끓였다. 커피 끓는 소리를 한 참 들으며

순간의 공기에 한껏 집중했다.


장기여행이 되고 나니, 솔직히 한국이 그립기도 했다.

돌아가면 현실을 마주하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현실에서 벗어나 자유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위로가 되는 밤이었다.


49.


오늘은 마지막 밤이다.

내일 아침이면 아침 7시 기차를 타고 공항으로 간다.

그래서 친구인 스타 샤와, 이반, 그리고 밍꼬 (별명인데, 진짜 이름이 뭔지 아직도 모른다), 그리고 고리나 까지 함께했다. 고추장과, 쌈장을 사 온 덕분에, 양념치킨과, 삼겹살을 구우며 한국의 맛을 보여줄 수 있었다.

양념치킨은 너무 맛있다고 더 만들어 달라는 요청에,  한번 더 치킨을 구웠고 웃고 떠드는 밤이었다.

정말 아쉬웠지만,  이제는 새로움이 필요할 때라고 느낄 즈음에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터라, 다음 만남을 기쁘게 기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시간이 너무 즐거워 마지막 밤의 끝을 붙잡는다.



50.

아침 기차를 타고 도착한 공항, 체크인을 끝내고 나니 이제야 실감이 난다.

한 달이란 시간이 어떻게 간지도 모르게 빠르게 지났던 스위스.

여행이 항상 그런 것 같다. 느린 것 같으면서 빠른, 아니 시간이란 게 그렇겠지.

이제는 새로운 나라, 새로운 도시에 가서 또 다른 분위기를 느낄 시간.

안녕 스위스.

공항 가는 길에 먹은 아침. 소세지,초콜렛 그리고 물


작가의 이전글 글로 돈 벌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