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염기쁨 Oct 01. 2019

스위스의 시간은 느리게 간다.

나와 마주하는 순간

11.

오늘은 친구와 함께 집 근처에 있는 호수에 다녀왔다. 어제 점심을 준비하면서 우연히 본 냉장고에 붙여진 사진. "너무 예뻐서 여긴 어디야? 너무 예쁘다."라는 나의 한마디에 내일 가자고 하는 그녀. 산 위에 있는 호수가 엄청 예쁘다고 내가 좋아할 거라고 했다. 나는 흔쾌히 그러자 했고, 그녀가 운전하는 차에 올랐다.


차를 탄지 몇 분 이내로 깨달았다. 여기는 한국이 아니라는 것. 한국에서도 차멀미가 심한 나는, 되도록이면 지하철(전철)을 이용한다.  아니나 다를까, 30분 후 나는 차를 멈춰 세워야 했고 차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차로 돌아온 나에게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너 기억나? 3년 전에도 버스를 타고 올라가서 너 토 했잖아."


그렇다. 나는 오늘도..(이하 생략)


+스위스에서 유심 없이 살기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어디에 도착을 해서도 그곳이 어딘지 알기가 어려운 그런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이런 나를 위해, 친구는 나중에 지역 이름을 다 적어준다고 했다.

+스위스에서 차로 여행을 할 때, 멀미가 심하신 분들은 꼭 멀미약을 미리 드시기를 추천합니다.

3년 전 올라갔던 clausesn pass


12.


오늘 나는 이름 모를 곳에 다녀왔다. 스위스에 있으면서 느끼는 건, 날씨만 좋으면 어디든 다 그린델발트고, 피르스트고, 융프라우 같다는 생각이다.  주위가 다 산으로 둘러 쌓여 있는 이곳은 다른 색의 하늘로 항상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하지만 오늘의 색은 회색이었다. 약간의 먹구름과 구름들 사이로 보이는 파란색. 색이 파랗지 않으면 어떤가, 그 만의 색으로 풍경을 뽐내고 있었다. 산 아래로는 캠핑카가 놓여져 있고, 소 들이 자연에 그냥 풀어져 있었다. 풀냄새에 비 냄새가 섞인, 흔히 시골냄새라고 부르는 그 냄새를 맡고, 구름 사이로 잠깐 뜨는 해를 보며, 그 찰나의 순간이 너무 아름다우며 지금의 내가 정망 행복하다는 걸 느꼈다.



13.


트레킹 코스가 펼쳐 저 있는 이곳에서 나는 카메라를 둘러 매고 서둘러 내려갔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코스, 저 멀리서 걸어오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나 또한 설렜다. 서로 오가며 인사를 건네고 길을 따라가니 만나는 시냇물, 그리고 가까이 보이는 소들, 워낭소리가 울리며 또 다른 풍경을 만들어 내는데, 오늘 길은 멀미 때문에 힘들었지만 이곳에 오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삼각대를 세워놓고 사진과, 영상을 마음껏 찍으며, 그 그림에 내가 일 부가된다는 것은 정말 짜릿할 수가 없다. 나의 시간은 이렇게 또 느려지고, 친구들은 저 멀리 나를 앞서 걸어갔다. 그러다 쏟아지는 비, 서둘러 카메라를 챙겨 뛰어갔다. 이렇게 비를 맞고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되었지만 이 순간마저 오래 기억의 남을 이름 모르는 곳에서의 한 순간.



14.


스위스는 날씨가 좋지 않으면 사람들이 그렇게 실망한다는데, 나는 비 오는 스위스 또한 너무 좋았다.

흐리면 흐린 데로, 구름이 산 사이로 낮게 깔리며 비가 쏟아지는데 그 소리와 보이는 풍경은 정말 운치 있었다.

하지만 식당까지 거리가 꽤 있었기에 비가 오기 시작하기에 나의 발걸음은 빨라졌다. 친구와 걸으면서 나는 다시 한번 생각했다. 나는 왜 여행을 시작했을까, 그리고 여행을 통해 얻는 것은 뭐였을까,


생각해보니 배우는 게 꽤 있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조금 더 여유를 느낄 수 있으며,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도 사소한 행복을 찾게 해 준다. 오늘의 행복은 식당에 도착해서 따듯한 차를 한 잔 마실 수 있었던 것.




15.

쭉 펼쳐진 들판과, 양 옆으로 보이는 산들을 보며 나는 다시 한번 생각했다. 이곳에 오길 잘했다고. 자연이 유독 깨끗한 것 같은 스위스는 나의 얼룩진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게 도와준다. 문득 작년의 내 모습이 생각났다.


대학을 졸업하고 가르치는 일을 계속했던 나는, 작년에는 아프리카에 있는 탄자니아에 파견교사로 일을 했었다. 그때는 나에게 꽤나 큰 도전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나를 조금 더 성장시켜준 시기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해외에서 혼자서 일을 하다 보면, (또는 살다 보면) 어려움을 겪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다. 특히나 친구를 만들 수 없는 환경에서는 말이다. 나 같은 경우는 다소 생소한 아프리카 대륙이었다 보니, 한국인이 많이 없을뿐더러, 영어를 쓸 수 있는 사람도 많이 없었기에, 친구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없었다.  같이 일하는 동료와, 같은 베이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전부일뿐, 그리고 또래라고 해도 각자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고, 다른 환경에서 자랐기에 대게는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사람에 대해서 호불호가 굉장히 큰 편이다. 그래서 별로 안 맞을 것 같다거나, 나와 다를 것 같은 사람은 피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같이 지내야 하는 환경 때문에 , 어려운 상황이 생겼을 때 피할 수 없고 부딪혀야 했고, 그 덕에 내가 마주할 수 있는 사람의 범위가 넓어졌다.


여행을 하면서, 이런 부분에서도 큰 장점이 있는 것 같다. 인종, 언어, 문화들과는 상관없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으니 내가 가지고 있던 딱딱했던 부분의 가치관도 점점 말랑말랑 해지고, 넓이가 넓혀져 가는 것. 앞으로의 여행에서도 나의 넓이와 깊이가 더 넓고 깊어지기를.


16.


오늘의 날씨는 참으로 괴이했다. 이런 표현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다가도 이내 해가 떠올랐고, 떠오르자마자 맑은 하늘에 비가 오고, 또 갑자기 바람이 불며 춥다가 한 순간 더워지기도 했다. 가끔은 이런 날씨가 나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다. 오늘이 바로 그랬던 날. 그런 날씨를 바라보다 보니, 왠지 위로를 받는 것 같기도?


17.


꿉꿉한 날씨를 싫어하지만, 비 오는 날씨는 굉장히 좋아한다. 비 오는 날 조용한 이곳에서 가만히 있다 보면, 창밖으로 들리는 기차소리와, 빗방울이 창문을 건드리는 소리, 그리고 바람 때문에 빠르게 지나가는 구름을 보면 내 마음도 괜히 편해진다. 한참을 창밖을 바라보다, 이 순간을 최대한 만끽해야겠다 생각했다.


기분 좋은 오후 2시 23분이다.



18.


나는 책을 읽을 때 문체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뭐 딱 히 특별한 문체는 아니다. 그냥 초반 몇 페이지 읽었을 때, 나의 마음에 쏙 드는 문체들이 있다. 설명할 수 만 있다면 설명하고 싶지만, 내 필력이 딸리기에 생략하겠다. 굳이 장르를 고르자면 대게는 고전이 그렇다.


그렇지만 책을 읽지 않은지 꽤 됐다. 해외에서 한글로 된 책을 구하기가 퍽이나 어렵고, 나는 이북(E-book)보단, 아날로그 식인 종이로 된 책을 선호하기 때문. 좋아하는 문장이 생기면 펜을 꺼내 들고 공책에 여러 번 적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 좋아하는 짓을 하지 않은지 꽤 되었다는 게 약간은 슬펐다. 그래서 핸드폰으로 책을 읽어볼까 하며, 이리저리 책을 검색했지만, 작은 화면에 들어오지 않는 글들을 핑계로 핸드폰을 껐다. 


이런 뷰를 보며 책을 읽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책이 없는 것을 한탄하며 앞으로의 여행에서는 좋아하는 책을 한 권 꼭 들고 다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실은 이 다짐만 백만 번

(책의 무게가 무겁다며, 부피를 많이 차지한다며 매번 안 들고 나온다. 하하)



19.


저녁을 배부르게 먹었다. 그러고 나서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 잔, 카페인이 잘 안 받는 나인데 이곳에서는 이상하게 더 많은 커피를 마시게 된다. 노오란 조명 아래 은은한 커피 향기와 웃음소리로 가득한 이 곳에서 말이다.

 



20.


오늘은 밤이 깊도록 친구들과 대화를 했다. 의식의 흐름 순이라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즐거운 기억만 가득한 오늘 밤. 오늘은 잠을 아주 잘 잘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여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